[이성훈의 쑈사이어티]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두 달 만에 찾은 고향은 아늑했다. 그리웠던 부모님과 함께 등산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동안 서로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빠와 엄마의 순조로운 인생2모작 이야기, 그리고 스타트업 창업 준비를 착착 해나가는 나의 이야기가 오가며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데 서울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 문제였다. ‘꽃중년’ 엄마가 갑자기 ‘아침드라마’ 속 낡은 어머니로 돌변했다. 혼자 사는 아들이 걱정된다며 새벽3시까지 반찬을 한가득 요리하고, 그 고단한 가사노동 속에서도 틈틈이 ‘차 조심 하라’, ‘여름에는 습하니 빨래를 신경 써라’, ‘잘 씻고 다녀라’는 둥 시시콜콜 훈계를 했다. 황당했다. <나혼자산다> 속 자식들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는 내일모레 서른답게 제법 싱글라이프를 꾸려가고 있다. 차라리 치맥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발동 걸린 ‘어머니의 사랑’은 막을 수 없었다.

엄마는 어떠한 도움도 거부한 채 밤새 반찬을 요리했다. 그녀의 눈에는 잠을 못 잔 탓에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사랑이 가득 담긴 반찬꾸러미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엄마의 건강이 상했다. “얘, 엄마란 다 이런 거야.” 손은 묵직했지만 서울로 떠나는 발걸음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나는 속상한 마음에 짜증을 부리며 고향집을 나섰다.

‘어머니다움’이란 무엇일까. 우선은 애틋하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엄청난 돌봄노동에 시달린다. 특히 자식의 초중고교 10년은 어머니들에겐 고행의 시간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면서 ‘맞벌이’부부의 비율이 급증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성의 가사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녹색어머니회/급식봉사단 등 맞벌이 엄마들의 품앗이를 강요하는 학(부)모활동이 기승을 부린다. 특히 나의 어머니는 2000년대 초반, 주6일 직장생활에 바쁜 와중에도 소중한 휴가를 써가며 학교 급식밥상을 차리거나 아침 등굣길 교통정리를 했다. 가히 ‘원더우먼’에 가까운 엄마의 과거 활약을 생각하면 지금도 뭉클해진다.

동시에 ‘어머니다움’은 불편하다. 아무리 시대가 지나고 자식이 성장해도 어머니다움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마치 달리는 기관차 같은 묵직한 관성이 있어서, 모두가 그것을 멈추고 싶어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도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다. <미운우리새끼> 속 엄마들이 나는 싫다. 그들은 다 큰 자식들을 초등학생 보듯 행동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습관적인 잔소리를 퍼부으며 진부한 쾌감을 느낀다. ‘엄마가 너를 사랑해서’라는 말은, 실은 이어질 행위가 불필요한 간섭임을 예고하는 신호탄과도 같다. 결혼은 언제 하냐는 물음, ‘청소 좀 하고 살아라’는 한 마디를 하려고 이미 깨끗한 자식 방에 괜히 보태는 걸레질 한 번, 삼시세끼 챙겨먹는 자식에게 ‘밥 굶지 말라’며 무리해서 조리한 반찬들. 이렇듯 습관이 된 모성은 부모 혹은 자식, 그 누구의 행복에도 기여하지 못한다.

픽사베이

엄마들의 해방을 바란다. OO의 엄마가 아닌, 그녀 자신의 이름인 OO씨로 불러드리고 싶다. 가족은 아낌없이 챙기면서 본인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OO엄마’가 아니라, 자식의 삶은 굴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대신 예쁜 옷을 사 입고, 좋아하는 여행을 마음껏 다니는 그런 OO씨들이 보고 싶다. 그러자면 자식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 ‘반찬받이’ 혹은 ‘잔소리받이’였던 자식은 이제 함께 기쁨을 나누는 친구나 애인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식이 시혜적 대상에서 동반자로 역할이 바뀌는 것만으로도 부모-자식의 행복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부모-자식 간의 100년 전쟁도 끝난다. 그래서 ‘엄마의 해방’은 ‘아들과 딸의 해방’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마무리할 때 즈음, 버스가 서울에 도착했다. 미안한 마음에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도착했어요.’ 엄마도 아쉬운 마음을 전한다. ‘우리 다음에는 아예 집 나와서 같이 숙박여행을 떠나자.’ ‘성훈엄마’가 아닌 ‘정숙씨’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사랑스러웠다. 정숙씨와의 다음 만남이 몹시 기다려진다.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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