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애국이란 개념이 희미해진 요즘이다. 현충일 등 각종 기념일에 태극기 건 집들을 찾아보기 어렵고 역사란 것은 이력서에 한 줄 더 채워 넣기 위해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는 국민들이 늘면서 의식은 죽어가고 있다. 역사적 가치가 큰 구국의 현장들도 조상의 호국정신을 담아낸다는 본래적 취지를 벗어나 영리 추구의 관광지로 전락한지 오래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에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투영시키고 해답을 찾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는데 의미가 있다. 문득 호국의 얼을 본연 그대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임진왜란 당시 역사의 중심지였던 한산도로 향했다.

한산도 충무공 유적지와 거북 등대 ©조요섭

수많은 섬들을 품고 있는 한려수도, 그 중심에 통영이 있다. 충청, 전라, 경상 3도의 수군을 이끄는 통제영이 있었던 것에서 그 명칭이 통영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통영에서 배로 약 30분 거리에 한산도가 있다. 본래 한산도는 왜란 발발 당시 무인도였지만 한산대첩 이후 충무공의 통제 아래 전략적 요충지로 거듭난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란 중 한산도에서만 무려 4년 가까이 시간을 보냈고 난중일기도 대부분 이곳에 머물던 때에 쓰인 것이라 하니 그 의의가 더욱 크고 무겁게 다가왔다. 뱃길 중간 충무공이 갑옷을 벗고 쉬어갔다는 해갑도와 함께 거북선을 작게 구현해 낸 거북등대를 반갑게 마주하고 한산 앞바다에서 홀로 학익진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덧 선착장에 도착했다.

‘넓은 바다에 가을 햇빛 저무는데 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 하늘높이 날아간다. 근심스러운 마음에 잠 못 드는 밤 새벽달은 무심코 활과 칼을 비추네.’

그 유명한 한산도야음의 배경이 된 곳, 한산도에 드디어 첫 발을 디뎠다. 고층건물이 밀집돼 온통 위로만 뻗어 있던 도심에서 벗어나 마주한 한산도는 무한한 횡(橫)을 이룬 생태의 연속이었다. 그 광경에 답답함을 풀어헤치고 많은 것을 담아가고자 가슴을 열었다.

선착장에서 길을 따라 10분 정도 이동하면 제승당(制勝堂)이 나온다.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승리를 만드는 곳이 된다. 검은 현판에 새겨진 이름을 마주하고 뜻을 알게 되니 순간 숙연해졌다. 당시 왜란이 발발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못한 시점이었고, 조정은 나뉘고 무너졌으며 조선 수군은 수적 열세에 있었다. 그런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던 충무공. 그 상황을 되짚어 보니 제승당의 의미는 한 장수의 호연지기가 아니라 구국의 염원을 담은 애끓는 절실함으로 다시 다가왔다.

제승당 뒤편에는 한산정이라는 활터가 있었다. 무려 15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과녁이 설치되어 있었고 활터와 과녁 사이 아래로는 바닷물이 흐르는 독특한 광경이었다. 난중일기를 보면 충무공이 다른 장수들과 활쏘기를 겨루었다는 글이 많이 나온다. 문득 그가 활을 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이곳에서 시위를 당기며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무너진 나라에 대한 우국지심, 피난 간 왕에 대한 한탄,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인 수천의 군사들을 책임진다는 부담감. 그 모든 것들이 화살이 되어 이미 당신의 가슴에 수없이 박혔을 것이다. 한산정에 선 그가 박힌 화살들을 다시 뽑아내어 저 너머 과녁으로 토해내듯 쏜 것은 아니었을지, 그가 그런 식으로 전장을 버텨온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수루 현판에 담겨 있는 충무공의 한산도가, 한산정 활터

한산정에서 나와 옆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수루가 나온다. 한산도가의 배경이 된 곳이자 과거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직을 맡던 시절 왜군의 동태를 살피러 수시로 들던 곳이다. 수루 안을 들어서면 한산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인다. 아까 뱃길에서 만났던 해갑도와 거북등대 또한 눈에 선명하게 담긴다. 이 거북등대 아래는 거대한 암초가 있다고 한다. 한산해전 당시 이 암초로 왜적의 배를 유인하여 좌초시키는 전술도 구사했다고 하니 그 또한 수루에서 빚어낸 호국의 전술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더듬어보는 충무공의 흔적들. 점점 해가 져가는 수루 앞의 바다는 붉은 빛이 물들어가고 있다. 그만큼이나 내 가슴도 붉게 뜨거워진다. 수루 안쪽 현판에 담겨 있는 충무공의 한산도가(閑山島歌)가 한 구절 한 구절 묵직하게 아려온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그간 충무공의 영웅적인 면모만 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난중일기를 찾아보면 그의 인간적인 생활 이야기도 많았다. 영웅이기 이전에 그 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비록 감추었겠지만 그도 두려움을 느끼고 무너질 때도 있지 않았겠는가. 한산도는 그런 인간 이순신의 얼이 담겨 있는 곳이다. 제승당, 한산정, 수루 곳곳에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우국충정 그리고 호국정신의 결이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되돌아오는 길에 배 위에서 마주한 해질 무렵의 한산도는 절경이었다. 과거 큰 전쟁이 치러졌던 곳이라 하기에는 지금의 한산도 앞바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아름다움을 당연히 여기어선 안 될 것이다. 이곳이 지켜져 우리나라 우리 땅에 자리할 수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어선 안 될 것이다. 충무공 또한 나라의 땅과 바다를 당연히 여기지 않은 우국지사가 아니었던가.

배 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붉은 해가 사라져 가며 어둠을 준비한다. 이제 제법 떨어진 한산도, 그 근처 어딘가에서 그 옛날의 피리소리가 나에게도 들려오는 것만 같다.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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