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진의 민낯칼럼]

[오피니언타임스=안희진] 우리에게는 IMF 구제금용으로 끔찍했던 1997년. 그해 늦여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두 여성이 일주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 사람은 ‘빈민굴의 성녀’ 테레사 수녀(1910-1997.9.5)였고 또 한사람은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1961-1997.8.31)였다. 이 두 여인의 삶은 여러 관점에서 비교가 되며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빈민굴의 성녀’ 테레사 수녀 ©픽사베이

두 여인은 말할 것도 없는 유명인사였으며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 애를 썼다는 염원에서는 같았지만, 그들의 삶과 실천방식은 사뭇 대조적이었다. 당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두 여인을 비교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두 여인, 즉 멋쟁이 왕세자비와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수녀의 죽음”이라고만 간단히 말했다.

다이애나는 부자 중의 부자로 왕궁에서 지낸 반면, 테레사 수녀는 빈자 중의 빈자로 빈민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한사람은 보잘 것 없는 수녀의 신분으로 늙고 병든 몸을 이끌고 전 세계의 참사현장을 찾아다니며 고통받는 영혼을 어루만졌다. 낮이든 밤이든 그는 푸른 띠가 쳐진 하얀 수녀복만 입었고 고결한 정신의 희생과 봉사의 일생을 마쳤다.

다른 한 사람인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화려한 지위와 뛰어난 미모를 활용, 에이즈환자를 위한 치료기금 마련과 지뢰반대운동 등을 벌였다. 낮에는 병자와 죽어가는 사람을 찾아 위로하기도 했지만 밤이면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디너쇼에 참석하는 상류사회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남성 편력도 심했다. 다이애나는 테레사 수녀가 이끄는 <사랑의 선교회> 등 각종 자선단체를 후원했을 뿐만 아니라 테레사 수녀를 어머니처럼 따랐고, 테레사도 다이애나를 ‘나의 딸’이라고 말할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나는 다이애나에게서 두마음의 갈등을 보게 됐다.

다이애나는 미모, 부, 명성 등 사람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추었고 또한 왕실로 상징되는 권위에 도전하는 등 ‘박해받는 자’의 이미지를 보이기도 했지만 불행하게도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죽음으로 명성이 더욱 높아져 운구행렬 연도에는 무려 600여만명이 운집했고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된 적이 있으니 대단한 ‘인기’를 누린 여인이다.

이에 비해 테레사 수녀는 어떤가? 150cm의 작은 키, 구부러진 등, 움푹 패인 눈, 굵은 주름으로 덮인 얼굴이니 미모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의 사랑의 눈매, 잔잔한 웃음, 부드러운 손길, 뜨거운 헌신적 봉사는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테레사를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녀는 ‘가난하고 고통받은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세계 곳곳의 굶주리고 고통받는 소외된 사람들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찾았다는 고백이었던 것이다.

화려한 지위와 미모를 활용, 에이즈환자 치료기금 마련 등 사회공헌 활동을 벌인 다이애나 왕세자비 ©픽사베이

테레사 수녀는 자신을 ‘하나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로, 자신이 하는 일은 <거대한 바다속의 물방울 하나>라며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비유했다. 그러나 그가 1948년에 세운 ‘사랑의 선교회’ 소속 5000여명의 수녀와 수사들은 전 세계 백여개국에서 테레사 수녀의 분신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니 그가 남긴 헌신의 정신은 영원히 인류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1200만명이 넘는 인도 캘커타의 인구 중 힌두교가 82%, 이슬람교도가 15%, 가톨릭이 1%, 개신교 1%, 기타 종교 1%라고 한다. 테레사 수녀의 운구를 따르던 100만명에 이르는 추모행렬에는 머리에 터번을 쓴 힌두교도로부터 이슬람, 기독교, 불교의 신도가 한데 섞여 있었다. 진실된 사랑 앞에는 종교의 구분도 없이 인종의 갈등도, 국가의 장벽도 허물어져 오직 <하나의 우리>를 형성한 것이다.

문득 국정농단으로 탄핵돼 구속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삶의 궤적이 떠올랐다. 엉뚱하게도 태생부터 전혀 다른 삶을 산, 비교 불가능한 테레사 수녀가 생각난 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20년전 전세계가 애도한 성녀 테레사 수녀의 죽음이 맹렬히 생각하면서 故김성렬 목사께서 쓴 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마더 테레사, 아 천국의 장미여!
가난한 자, 병든 자, 버려진 자의 친구
당신은 하느님의 벗이지요
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로 사랑의 대작을
누리의 마음 속에 그려주었고,
그 작은 물방울이
사랑의 큰 강물이 되어
떠밀리는 누리, 메마른 영혼의 이랑을
흠뻑 적셔 주었지요.
꽃다운 열여덟 나이에
어머니의 곁을 떠나
다시 만나지 못한 어머니,
그러나 당신은
많은 자녀의 어머니가 되셨소
“우리는 마더를 영원히 사랑합니다.”
“우리는 마더를 잃은 것을 슬퍼합니다.”라고
젖먹이 아이처럼 마더 당신을 보채고 있지요
아, 장하여라 그 힘.
아, 위대하여라 그 사랑.
인종도 종파도 국경도 뛰어넘어
한 우리를 엮어 주었소.
그 사랑, 그 향기, 그 영광
길이길이 빛나리이다.
(雲山 金成烈 牧師, 1915-2007)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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