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의 동서남북]

[오피니언타임스=김준범] 7월14일, 우여곡절 끝에 송영무(宋永武, 68) 전 해군참모총장이 제45대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방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지 한달여 만이다. 자유당 시절 손원일(5대), 참여정부 시절 윤광웅(39대)에 이어 해군에서는 세 번째로 국군 총사령탑에 올랐다.

취임사에서 송 장관은 중점 추진 6대 국방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본인도 가고 싶고, 부모도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병영문화 창조 ▲국민의 신뢰 바탕 위에 새로운 국군 건설 ▲더욱 굳건한 한·미동맹 발전 ▲여군인력 확대와 근무여건 개선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방위산업 육성, 책임국방 달성 ▲비군사적 위협에 대비, 포괄적 안보체제 구축 등이다.

특기할 점은 역대 장관들의 취임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투적인 표현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방장관 취임사는 의례히 북한의 핵·미사일 등 군사적 위협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북한군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하며,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라고 당부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송 장관은 국민에게 안보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어휘사용을 가급적 자제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 군이 지향해야 할 군대의 모습으로 ‘부모가 안심하고 자식을 보낼 수 있는 군대’라고 규정하고, 그런 병영문화 창조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군대, 국민을 위한 군대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뒤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국방개혁 차원을 넘어 ‘새로운 국군’을 건설해야 한다는 내용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무엇이 새로운 국군이고, 새로운 국군 건설을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이 말 속에는 지금 우리 군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고, 민주 군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하자’는 것 역시 과거 어느 취임사에서도 볼 수 없는 참신한 아이템이다. 지금까지도 선진국 무기 도입을 당연시하는 풍토에서 한국의 방위산업을 미래의 먹거리 산업 육성 차원에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힐 수도 있는 대목이다.

송 국방은 취임 며칠 후(7.18일) 국방부 간부들 앞에서 군 개혁의 대략적인 윤곽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면 국방개혁을 ‘공룡 같은 군을 표범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함축적으로 정의했다. 현재 우리 군은 몸집만 거대하고 행동이 느린 공룡과 같은데, 국방개혁을 통해 날렵하고 무서운 표범으로 바꿔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현대전의 양상과 패러다임, 무기체계 등이 바뀐 게 언제인데 우리 군은 아직도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국방부 문민화 작업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10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된 문민화 프로젝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민화는 법무부도 예외가 아니다. 두 곳 다 검사와 현역 장성들이 핵심 보직을 독점해 오고 있다. 송 장관은 평소 “현역 군인은 야전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론자로 알려졌다. 선진국에서는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

현재 국방부에는 5개의 실장 자리가 있는데 상당 부분 외부 민간 전문가들로 채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주목 받는 곳은 역시 정책실장 자리다. 몇 달 전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 도입 과정에서 보고누락의 핵심으로 지목돼 실장이 보직해임 되는 바람에 현재 공석중이다. 역시 민간 전문가의 기용이 점쳐지고 있다.

송 장관은 또 기무사령관에 해병대를 비롯한 비(非) 육군 출신 임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의 전유물로 인식돼 온 기무사령관을 타군 출신이 맡게 되면 이는 건군사상 처음 있는 일로, 그 충격은 가히 메가톤급이 될 것이다.

김영삼 정부 초기 육군 준장을 사령관으로 전격 발탁할 때 이상의 충격파가 예상된다. 비 육군 출신 기무사령관 임명은 지금까지 육군중심, TK중심 기무사의 권력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기무사도 국가 정보기관이라는 점에서 국정원과 크게 다를 수 없다. 기무사 역시 국정원처럼 각 분야별 외부 전문가들로 개혁위원회를 구성, 그 역할과 기능 전반을 정밀하게 재검토하는 등 일대 혁신작업이 급선무라는 게 군 안팎의 중론이다.

방산비리 척결 등 고강도 혁신에 앞장서 ‘국민의 군대’로 거듭나길 바란다. ©육군

국민은 누가 사령관을 맡든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관심은 기무사가 국민을 위한 군대로 가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 조직으로 거듭나느냐에 쏠려 있다. 사령관 인사의 새 바람 못지않게 필요한 것은 기무조직의 환골탈태를 위한 선행조치인 것이다.

국무위원 가운데 장관의 업무량이나 규모 면에서 볼 때 국방장관처럼 광범위하고 화급(火急)을 요하는 장관은 없을 것이다. 공식 일과시간에 보지 못한 결재서류를 한 아름 공관으로 갖고 가는 것쯤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방대한 업무량을 순조롭게 처리하려면 차관이 3명쯤은 돼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오래됐다.

바라건대 송 장관은 장관에게 집중돼 있는 결재권을 차관이하 간부들에게 대폭 위임하고 장관은 실무적인 것 이상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앉아서 놀라는 것은 아니다. 장관이 만기친람(萬機親覽) 식으로 다 챙기려고 들면 정작 장관이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아랫사람의 권한을 빼앗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 당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하루에 A4 용지 한 장 분량의 보고서 외엔 받지 않았다고 한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송 장관은 ‘국민의 시대’를 여는 장관답게 전임자들이 관행적으로 해 왔던 전방시찰도 대폭 줄였으면 좋겠다. 전방 장병들을 격려하는 데는 사단장, 군단장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별 넷을 단 군사령관만 떠도 모든 부대는 올 스톱이다. 국방장관의 빈번한 전방시찰은 전방부대 장병들에겐 적잖은 민폐 요소였다는 게 군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경계태세 점검과 격려를 위한 시찰이라면 장관 보다는 오히려 합참의장이 적임일 것이다. 군 최고 군령권자이기 때문이다. 장병들에게 군의 최고 군령권자는 합참의장임을 정확히 인식시켜 줘야 한다. 전방시찰 때 장관이 합참의장을 대동하는 것은 합참의장의 위상을 오히려 깎는 일이다.

예비역으로 민간인이 된 장관이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방 시찰하는 모습은 더 이상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전방시찰은 가급적 합참의장 이하 야전 사령관들에게 넘기고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의 역할, 즉 국회와 자주 접촉하고 다양한 민간단체 등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관계를 증진하는 등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주력해 주기를 바란다.

국방장관이 전례 없이 이런 행보를 보이면 ‘국민 속의 국방’이라는 대군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의 군대는 명실 공히 ‘국민의 군대’라는 인식의 지평이 보다 넓어질 것이다.

송 장관은 방산비리 척결도 강도 높게 추진해 주기 바란다. 현역이든 예비역이든 방산비리에 연루된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발본색원해야 한다. 절대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 된다. 방산비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했듯이 ‘안보라는 큰 뚝에 구멍을 내는 이적행위’인 만큼 최고형으로 다스려야 한다. 그것이 아프지만 정의로운 군대로 가는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범죄자는 이등병으로 강등시키고 군인연금을 전액 몰수하는 등 극약처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전례를 보면 한 번도 그런 정도의 고강도 신상필벌이 적용된 적은 없었다. 그러니 똑같은 사태가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송 국방에 거는 기대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큰 이유다. 

 김준범

 (주)대한공론 상임 고문

 전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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