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말머리]

[오피니언타임스=석혜탁] 루쉰(魯迅)이 자신의 단편소설 중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작품 <쿵이지(孔乙己)>에서 쿵이지는 함형주점의 주인과 손님들에게 늘 조롱당한다. 그런데 주점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이라 쿵이지와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평범한 노동자 손님들은 ‘장삼(長衫)을 입은 손님들’에게는 반항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그저 만만한 쿵이지를 조소하고 멸시한다.

<쿵이지>에 대해 “몰락한 전통 지식인의 삶을 그려냈다”거나 “변화된 시대상을 수용하지 못하는 하층 지식인의 위선을 꼬집었다”는 비평은 어딘지 부족한 감이 있다. 쿵이지는 성공한 지식인은 분명 아니지만, 손님들과 주점 주인에게 일방적으로 괄시당할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아이들에게 회향두(茴香豆)를 하나하나 나누어 주는 선한 심성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상하이 루쉰기념관에 있는 루쉰 동상 ⓒ 석혜탁

이런 쿵이지를 집단적으로 희롱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가학행위다. 중문학자 전형준 교수는 이 작품에서 작가 루쉰이 ‘민중의 왜곡된 공격성’을 비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출신이야 어떻든 현재의 쿵이지는 넓은 의미에서 하층 민중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쿵이지에 대한 함형주점 사람들의 학대는 결국 민중적 자해의 한 양상이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가학행위’, ‘민중의 왜곡된 공격성’, ‘민중적 자해’는 수평 폭력과 조응된다. 알제리 독립운동을 주도한 혁명가이자 정신분석학자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수평 폭력’에 대하여 말한 바 있다. 식민지의 민중들이 지배권력이 행사하는 부당한 폭력에 분연히 맞서기보다는, 외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에게 폭력성을 표출한다는 것이다. 즉, 억압의 근원을 향해서는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만만한 상대에게 억눌린 화를 쏟아내는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는 다양한 영역에서 수없이 많은 ‘수평 폭력’을 접하게 된다. 분명 불유쾌한 조우다. 사실 ‘수평’이라는 말은 대동소이함을 상정하기에, ‘폭력’이라는 단어와의 연결이 썩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비슷비슷한 사람들 간에 발생한 폭력행위(혹은 사건)는 일방적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도식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수평’에서 ‘평(平)’이라는 놈 때문에 이런 생각은 배증(倍增)하기도 한다.

헌데 수평을 ‘기울지 않고 평평한 상태’라는 사전적 의미 외에 ‘이하(以下)’의 개념까지 포괄하여 보다 폭넓게 이해하면 ‘수평 폭력’의 참뜻을 곱씹을 수 있게 된다. 이하는 미만을 함유하고 있지 않은가. 평(平)의 외피를 쓰고 실지로는 미만의 대상들에게 폭력을 집중 투사하는 것. 그래서 더 비열한 것이다.

수평 폭력은 ‘평(平)’의 외피를 쓰고 실지로는 ‘미만’의 대상들에게 폭력을 집중하는 비열한 행위다 ⓒ 픽사베이

당사자가 정확히 수평의 위치에 있다 한들(이것을 수치적, 계량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다수와 소수의 싸움으로 변이되면 그 역시 평(平)이라는 더러운 화장술과 전체주의의 불온한 파시즘적 광기가 뒤섞여 잔인한 폭력행위를 일으킨다.

다수가 이런 화장술에 매료되어 술집 작부처럼 짙은 화장을 서슴지 않을 때, 이 무서운 다수는 폭력을 미화하며 정당화하려 한다. ‘다수의 행복과 이익’만큼 달콤한 이데올로기는 없지 않은가. 이 폭력의 끝은 이런 종류의 폭력행위에 대해서 제3자의 둔감함을 유도하는 것. 그래서 더 잔혹한 것이다.

함형주점에서 쿵이지를 놀려대던 손님들이 사실 딱히 엄청나게 악독한 인간들은 아니다. 이렇듯 일상에서 우리도 별생각 없이 수평 폭력의 가담자가 될 수 있다. 비겁한 수평 폭력의 공범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민중적 자해’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돌아온다.

 석혜탁

대학 졸업 후 방송사 기자로 합격. 지금은 기업에서 직장인의 삶을 영위. 
대학 연극부 시절의 대사를 아직도 온존히 기억하는 (‘마음만큼은’) 낭만주의자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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