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수의 중국이야기]

[오피니언타임스=함기수]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가 나라를 건국한 지 정확히 50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싱가포르에는 추모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의 시신이 총리 관저 이스타나에 안치돼 가족과 일부 사람만 조문할 수 있을 때에도 수많은 국민이 이스타나 문 앞에 와서 꽃다발과 추모사를 쓴 편지 등을 놓고 갔다. 시신이 국회의사당으로 옮겨져 일반인들이 조문할 수 있게 된 3월 25일에는 8시간이 넘게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싱가포르 정부는 조문 마감시간을 계속 늘리다가 결국 24시간 조문체제로 바꿨다. 출근하기 전에 조문하려고 오전 3~4시에 나오는 직장인들이 또 줄을 이었다.’

2015년 3월23일, 싱가포르의 정치가이자 초대 총리이며 35년 가까이 1당 독재로 국가를 통치한 리콴유가 서거한 날, 싱가포르 현지의 표정을 전한 국내 언론의 기사이다.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의 초대 제후인 문후는 이극(李克), 오기(吳起), 악양(樂羊) 등 인재를 잘 등용하고 다스려 위나라를 전국시대 최초의 패국으로 만든 사람이다. 이때 등용되어 후대까지 존경받는 걸출한 신하 중 한 사람이 서문표(西門豹)이다. 문후는 조와 한나라의 옆에 위치하여 위나라의 중요한 요충지였던 업(鄴)땅의 태수로 서문표를 임명한다.

국가적으로 중요하였으나 아직 개발이 미진하였던 업도(鄴都)에 부임한 서문표는 이곳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수리사업임을 직감한다. 황하의 지류인 장수(漳水)가 지나는 이 지역은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들어 농업이 피폐하고 농민들의 삶이 고단했다. 예나 지금이나 물을 다스리는 일은 중요하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라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12개의 수로를 파서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논에 물을 대기로 하였다. 당연히 이 공사에는 엄청난 자금과 노동력이 필요하였다. 입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마디씩 하였다. 민심이 들끓었다. 이때 서문표는 이렇게 얘기하였다.

‘백성들에게 정책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그 정책의 결과는 그들에게 유리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지금 당장은 누구나 나의 명령을 싫어하겠지만 그들의 손자 대가 되면 틀림없이 내가 시킨 일이 올바르고 유익한 것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의 서문표의 말대로 업 지방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리사업이 잘 되고, 현의 백성들은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 위나라 문후 편에 나오는 얘기이다.

필자의 회사 동료였던 A는 대학교 시절 유신체제에 반대하여 곧잘 데모대에 합류했던 사람이었다. 입사하여서는 의류 쪽의 부서에서 일을 하였다. 마침 북한에서 셔츠를 임가공하여 수출하는 업무를 맡게 되어 북한에 갈 일이 있었다. A는 그곳에서 생각보다 더 형편없이 못 사는 북한의 실상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나라의 리더가 얼마나 중요하고, 리더의 역할과 마음먹기에 따라 한 국가가 어떻게 흥하고 망하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장문의 메일을 올렸다.

리더는 중요하다. 그래서 리더에 대한 평가는 엄격할 수밖에 없고 또한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이어서는 안된다. 더욱이 한 나라의 명운을 짊어진 국가의 리더는 어쩌면 당대에는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국가의 비전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대를 잇는 장기적인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명멸한 기존의 리더들을 다시금 보게 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중국의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전 총리,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등, 우리는 이들을 개발 독재자형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한결같이, 요충지이나 척박하여 개발해야 할 것이 많았던 2000여년 전 중국 업땅의 서문표였다. 갈라지고 흉흉한 민심을 추스르고 백성들을 먹여 살려야 했고 번성한 나라를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이 결과를 다르게 했을까하는 의문은 무엇이 국가의 리더로서의 자격일까 하는 의문과 일치한다.

경험이나 사례에서 볼 때 국가의 비전이나 흥망의 열쇠는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등 국가의 체제가 쥐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리더가 국가와 국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이다. 진정으로 사(私)를 버리고 오직 국가와 국민들을 위하는 비전과 진정성이 중요하다. 어떠한 강대국의 위협에도 굳건하게 버티는 뚝심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의 혜안과 다양한 인재 풀로 부터의 통찰력으로, 지금은 잘 모르더라도 분명 미래에 도움이 될 정책과 의지, 강한 추진력이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백성에게 유리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던 서문표는 후대에 이르기까지 존경을 받는다.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수였던 전예(田豫)는 그를 크게 존경해 이민족을 통치할 때 서문표를 사표(師表)로 삼았다. 그가 죽을 때 그는 ‘서문표와 같은 길을 걸었으니 그와 같은 곳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한 조조는 죽으면서 ‘업(鄴)의 서쪽 언덕 서문표(西門豹) 사당 부근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지금의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2000년의 시공을 넘어 서문표에게 묻고 싶다.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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