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요섭의 동호지필]

[오피니언타임스=조요섭] 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동료와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불법주차에 대해 작은 실랑이를 벌인 적 있다. 과태료 10만원에 속 쓰려 하는 동료의 푸념이 그 시작이었다.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신고까지 해야 했을까. 관리사무소에 말해서 경고조치를 부탁하든지 아니면 나한테 빼 달라고 전화를 하지. 처음으로 잠깐 댄 건데.”
“근데 당사자는 한두 번 겪은 게 아닐 거야.”
“무슨 말이야?”
“처음에 그분도 신고 대신 차주에게 전화하거나 다른 방법을 썼을 거야. 그 이후론 조심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개중에는 반복해서 주차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을까?”
“......”
“그분 입장에서 불법주차 차량이 오늘 하루만 댄 건지, 계속 댄 건지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애초에 법을 어긴 사람의 사정을 고려할 만한 일이 아니지. 이 문제는 신고 말고는 해결 안 된다고 봐. 빼앗겨야 정신 차린다.”

©픽사베이

장애인전용주차구역 불법주차의 과태료는 10만원으로 굉장히 높은 편이다. 전용주차구역에 대지 않으면서 그 주변에 차량을 주차시키거나 물건 등을 쌓아 장애인 차량의 진입을 막는 행위는 주차방해로 과태료가 부과되는데 무려 50만원에 달한다. 높은 벌금에도 불구하고 불법주차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산 모 구청 교통행정과에서 근무하는 지인 A에게 자문을 했다.

A가 밝힌 첫 번째 이유는 시민들이 신고를 꺼린다는 점이었다. A는 자신이 근무할 때 드문드문 끊이지 않고 신고가 들어오긴 하지만 실제 이뤄지는 불법주차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일반차량이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되어 있어도 눈살 한 번 찌푸릴 뿐 실제 신고까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차량 내 설치된 블랙박스 또한 신고를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행여나 신고자 자신의 얼굴이 찍힌다면 보복이라도 당할까 싶은 마음에 자칫 망설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차후에라도 마주칠 우려가 있는 같은 아파트 내 주차구역이라면 더욱 그렇다.

A는 위반입증사진의 인정 조건이 다소 까다로운 점을 두 번째 이유로 꼽았다. 매뉴얼에서 인정 조건을 ‘사진 상으로 해당 주차구역이 장애인전용구역임이 확인되어야 함. 해당 차량과 함께 장애인전용주차구역 표시가 명확히 나오도록 사진을 촬영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과 다소 동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지면에 그려진 장애인전용 표시는 일반차량이 주차할 경우 지면이 가려지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고 입식이나 부착형의 안내 표지 또한 구비되어 있지 않거나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가려지기 십상이다. 규정에 부합하려면 위반차량의 번호와 함께 장애인주차구역이라는 사실이 확인돼야 하는데 결국 여러 번 여러 각도에서 나누어 촬영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다수가 촬영과 신고를 포기하고 만다.

또한 신고자 중에는 스스로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신고하는 장애인의 비율이 높을 것이다. 보행이 불편한 이들에게 여러 번의 촬영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지면에 새기는 장애인전용 표시를 주차구역 안쪽뿐 아니라 앞쪽에도 의무적으로 새기게 하고 입식, 부착형의 안내 표지를 반드시 구비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여 일반차량이 주차하여도 표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고자의 촬영 부담이 줄어든다면 자연스레 신고율이 높아질 것이다.

기술혁신의 시대인 만큼 놀라운 기술이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마련된 사례도 있다. 러시아의 비영리 단체인 ‘디스라이프(Dislife)’는 스마트 카메라 단속 기술을 개발했다. 주차하려는 차량 전면의 장애인 스티커 유무를 카메라로 판단하고 일반 운전자일 경우 주차를 막는 안내 홀로그램이 빔프로젝터에서 상영되는 방식을 한 쇼핑몰에 도입했다.

일반차량이 진입하게 되면 얇은 수증기 스크린에 홀로그램이 비춰진다.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장애인이 나와 운전자를 향해 “멈춰요! 지금 뭐하시는 거죠? 전 단순한 안내 표시가 아니에요! 여기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니 다른 곳에 주차하세요”라고 외친다. 놀란 운전자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곧장 차를 빼 일반구역으로 주차할 수밖에 없다. 실효성이 입증되면서 이 착한 기술은 많은 화제를 모았고 세계적으로 러브콜을 받으며 도입이 확대될 전망이다.

함께 가는 사회로의 이행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끄는 것이 이와 같은 기술의 진보라면 근본적인 해법은 바로 시민의 관심이다. 장애인전용구역 불법주차가 근절되지 않는 것에 A씨가 마지막으로 밝힌 이유이자 가장 힘주어 말했던 부분은 바로 무관심이었다.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을 보아도 대다수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만다는 것이다. 무관심이 무신고로 이어지고 위반을 해도 결국 무처벌로 이어지는 결과가 불법주차 근절을 방해하고 있다.

배려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데 있어서 교과서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까진 굳이 하지 않겠다. 다만 당신이 내비칠 관심의 발로는 생각보다 쉽고 간단하다는 것과 그 관심이 닿을 자리는 장애인 한 사람에게 굉장히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머나먼 러시아의 기술을 마냥 부러워 할 필요 없이 우리나라도 꽤나 괜찮은 어플을 만들어냈다. 행정자치부와 전국지자체가 함께 운영하는 ‘생활불편신고’ 어플은 위반사실에 대해 사진을 찍어 신고하면 빠른 시간 안에 일선 구청, 경찰청 담당부서로 정식 민원으로 접수되어 처리에 들어간다. 장애인주차구역 불법주차는 물론이거니와 불법광고물, 쓰레기 투기와 같은 다양한 민원을 함께 해결해 주는 생활밀착형 어플이다.

©픽사베이

그러니 과감히 찍고 당당히 신고하시라. 수치를 모르고 이미 윤리를 잃은 이들은 다른 방법이 없다. 그들로 인해 빼앗긴 누군가의 권리를 금전적으로 치환한 만큼의 재산을 똑같이 잃어야 깨닫는다. 빼앗겨야 정신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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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요섭

어쩌면 미학이란 것은 노동자에게 주어진 빵과 우유보다 훨씬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느낀 이후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려 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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