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암살교실(暗殺敎室)’…기발함 속에 빛나는 스승의 의미

충격적인 첫 장면, 그리고 기발한 설정

[오피니언타임스=김채린] 수업종이 울리고, 반장은 담임에게 인사할 준비를 한다. ‘기립’ 소리에 모두가 총을 꺼내고, ‘차렷’ 소리에 조준한다. ‘경례’ 신호에 맞추어 모두가 담임에게 난사를 가한다. 담임 선생님은 마하 2의 속도로 움직이는 초생물(괴물), 졸업 전 목표는 담임 선생님의 암살. 바로 애니메이션 ‘암살교실’의 첫 장면이다.

암살교실은 동명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의 후지TV에서 방영됐던 작품이다. 후에는 영화로도 제작됐다. 만화책도 큰 주목을 받았지만 애니메이션은 방영 직후 그야말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겠지만, 흥행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암살’과 ‘초생물체’를 접목한 독특한 배경 설정과 전반적으로 밝고 코믹한 분위기였을 것이다. 암살교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암살교실 시즌1 포스터 ©애니맥스TV 홈페이지

<어느 날, 달의 70퍼센트가 소실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의 범인은 노란 거대 문어 형태의 초생물. 이 초생물은 일 년 후에 지구 또한 파괴할 것이라는 예고와 함께, 쿠누기가오카 중학교 E반(낙제반)의 담임을 하게 해 달라는 조건을 내건다. 이후 E반은 초생물 담임을 죽이는 ‘암살 교실’로 바뀌고, 학생들은 담임을 ‘살(殺)생님’이라 부른다. 마하 2의 속도와 대단한 신체 능력을 겸비한 그를 죽이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죽일 수 없는 선생님((殺せん せんせい : 코로센 센세)’이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지구 파괴까지 남은 1년 동안 살생님은 아이들이 자신을 암살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아이들은 열심히 훈련과 공부를 병행 하며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지구를 파괴한다는 협박과는 정반대로 학생들을 아끼고 소중히 대해주는 살생님의 모습에 아이들은 신뢰와 애정을 느낀다. E반 학생들과 살생님은 함께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

온갖 기상천외한 소재가 쏟아져 나오는 만화 시장 속에서도 유난히 독특한 설정을 갖췄다. 강렬한 첫 장면을 보고 나면 일단 관심이 생긴다. 전형적인 일본 만화 느낌이 진하게 나는 작화 때문에 개인적으로 감상을 망설였지만, 한번 본 후에는 뒷내용과 살생님의 과거가 궁금해져 끝까지 보게 되었다. 진지하다고 느껴질 즈음 터지는 웃음 요소와, 가볍다고 느껴질 즈음 차분하게 깔리는 인물들의 과거 이야기는 다른 유명 애니메이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성공공식이다.

아무리 유치한 만화라고 해도 그 안에는 나름의 철학이 들어있다. 암살교실 역시 그렇다. 이 애니메이션은 재미와 더불어 교훈이라는 요소가 어우러져 시청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인다. 약 40화에 걸쳐 방영된 암살교실을 3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살생님의 대사 속에 담겨 있는 메시지를 간략하게 분석해봤다.

애니메이션이 던지는 돌직구,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란?
“선생님에게 ‘버린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학교 폭력으로 정학을 당했던 학생이 학교로 돌아와 처음 살생님을 보았다. 그는 온갖 계략과 도발로 살생님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하나도 통하지 않자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며 살생님이 고민하도록 유도했다. 자신을 구하러 온 순간 살생님은 암살당할 것이고, 외면한다면 교사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그러나 살생님은 멋지게 그를 구출해 내고 자신의 목숨도 부지하는 기술을 보여주며 위와 같이 말했다.

살생님은 분명 지구를 파괴하겠다는 협박 예고와 함께 등장했다. 그렇지만 그의 아이들에 대한 태도는 이상하리만큼 온화하다. 심지어 이런 교사가 현실에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훌륭한 교사의 면모를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암살교실 스틸컷 ©애니맥스TV 방송 캡처

가장 먼저, 그는 아이들을 낮은 존재로 보지 않는다. 아이들의 서열을 매기지도 않는다. 언제나 장점을 우선시하며 학생에게 맞는 칭찬을 아끼지않는다. 각자의 재능이 다를 뿐, 틀리거나 어느 한 쪽이 더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넌지시 웃으며 말해준다. “그런 너희들의 재능을 잘 연마하고 살려서 이 선생님을 암살하세요”라고 진심 어린 농담을 던진다. 아이들을 존중의 눈길로 바라보는 이런 자세야말로 교사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이다.

또 다른 점은 그가 아이들에게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다는 것이다. 스스로 아이들의 질문에 답해줄 수 없다면 어떻게 교사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명문 쿠누기가오카 중학교의 낙제생들을 모아 놓은 E반이, 가장 우수한 A반과 대치하여 승리를 거두게 한 성과는 살생님이 관련 과목의 모든 문제집을 다 외우고 학생들을 1대 1로 관리했던 노력 덕분이다. 만화니까 가능한 비현실적인 일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노력하고, 한 번의 강의를 위해 몇 배로 학습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개개인의 모든 특성을 미리 숙지하는 태도는 교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충분히 본받을 만하다.

빠르고 강력한데다 감각이 예민해서 좀처럼 죽일 수 없는 살생님이지만, 아이들이 연루되어 있는 위험에는 스스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정부가 억지스럽게 전학생이라며 E반에 끼워 넣은 암살자조차도 그에게는 소중한 학생이다. 학생들을 해치려는 조짐이 보이면 괴물로 돌변해 가차없이 상대를 물리친다. 교사인 그의 강점이자 약점이 학생들인 것이다. 이렇게 그는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자신이 꼭 책임지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아이들에게는 힘든 일과 무서운 일은 선생님이 다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확신, 뒤에는 선생님이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선생(先生)님이란 먼저(先) 인생을 살아온(生) 사람이다. 학교를 통해 사회와 인생을 처음 경험하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스승의 한 가지 예를 보여 준 것이 바로 살생님이다.

‘인연맺기’만큼 어려운 ‘인연끊기’
“그런 마음으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진정하고, 웃으면서”

즐겁고, 고맙고, 행복했던 인연은 끊어내는 건 쉽지 않다. 함께 울고 웃고 소중한 시간을 공유하던 관계이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의 격언에서 친구(사람)만큼 소중한 재산은 없다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시대와 지역에 관계없이 인연이란 맺기도, 끊기도 힘든 끈끈한 무엇이다. 때문에 그것을 끊는 데는 큰 용기가 요구된다. 암살에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이상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살생님과 아이들의 인연은 암살로 시작됐다. 암살로 맺어진 덕분에 낙오자가 모인 E반은 최우수반을 이길 수 있었고, 괴생물체 살생님은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그 인연은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생겨난 많은 추억들로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렇지만 1년 후에도 암살당하지 않는다면 지구를 파괴하겠다고 했던 살생님의 선언대로 결국 인연을 끊을 때가 왔다.

암살교실 2기는 살생님의 비밀스러운 정체와 과거가 주 내용이다. 살생님의 과거를 알게 된 아이들은 그를 죽이지 않는 동시에 지구도 지키고자 분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는 정든 살생님을 아이들이 죽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 결국 살생님 암살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이 글에서 밝히지 않겠다.

암살교실 시즌2 포스터 ©애니맥스TV 홈페이지

살생님은 아이들에게 좋은 암살자는 타깃을 죽일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암살을 요청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수업을 진행한다. 사회에 불합리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지만 거기에 불만을 표출하는 건 시간 낭비이며, 아쉬움도 망설임도 이겨 내야 한다고. 그의 바람은 깨끗하게 맺어진 인연을 깨끗하게 끝내는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과연 그가 정말 여기서 정든 학생들과의 인연을 끝내고 싶어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가장 이 상황을 안타깝고 아쉽게 느꼈던 게 아닐까?

그는 약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즐거운 시간은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답니다. 그게 교실이니까요.” 바로 이 한 마디에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사실, 사람의 일은 언젠가 끝이 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살생님은 체념에 대해 알려 주었다. 세상에는 인정할 수 있든 없든,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가 쉽게 끝나 버린다. 끝나 버린 것들로부터는 미련이 아니라 배움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교실로부터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간다.

총평: 만화 밖에도 이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암살교실은 스토리와 분량 면에서 대단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평가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웃음과 긴장이 기분 좋은 비율로 섞여있는 전개 방식이 독특하고, 획기적인 발상으로 누구나 쉽게 다가가도록 돕는다. 분량 또한 20분을 조금 넘는 길이로 40화 남짓 되니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을 모아 볼 수도 있다. 다른 유명한 대작 애니메이션들이 몇백화씩 늘어지는 것에 비해 양이 훨씬 적어 결말을 보기도 수월하다.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점은 ‘참된 사제관계의 모습’을 주제로 하는 교훈적인 내용의 스토리이다. 애니메이션 초심자가 보기에도 역겹거나 난해한 내용 없이 가볍게 볼 수 있었다.

반면 일본 만화 특유의 그림체와 비현실성이 약간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 혹은 가끔 등장하는 15세 이용가 수준의 에로틱한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있다. 스토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잊을 만하면 일종의 개그 코드로서 등장한다. 민감한 시청자의 경우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한번쯤은 끝까지 시청해 보기를 추천한다. 그럴 만한 재미와 가치가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이렇게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이 나타나 주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김채린

 노래 속에는 고유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숨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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