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지난 5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39세의 이마뉴엘 마크롱이 당선됐을 때 프랑스 정치가 너무 젊어지는 것은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그가 기성정당이 아니라 선거 불과 1년 전에 급조돼 국회에 의석이 한 석도 없는 ‘앙 마르슈(전진)’라는 신생정당 후보라는 사실에 프랑스 유권자들의 선택이 너무 무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프랑스 총선에서 앙 마르슈가 의석의 60%를 차지해 당당히 집권 여당이 되었다. 어느 나라든 대통령 선거는 바람을 타게 마련이다. 그에게는 젊음 귀공자풍의 외모 외에 24세 연상의 아내 트로뉴가 있다. 두 사람의 예사롭지 않은 사랑과 결혼은 특히 여성과 젊은층 사이에 선풍을 일으킬 만 했다.

그러나 지역별 이기주의와 후보자 개인의 연고 등에 영향을 받는 총선에서는 바람의 영향이 덜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앙 마르슈가 총선에서는 과반수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풍토에 찌든 나의 이런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총선 결과를 보고나서 나는 프랑스 유권자들은 마크롱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때 이미 총선 과반 이상도 결정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유권자들이 마크롱을 선택한 것은 일시적인 인기몰이의 결과가 아니라 변화에 대한 절실한 바람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2006년 사회당에 입당한 뒤 2012년 프랑소와 올랑드 대통령의 비서로, 2014년엔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그가 추구하는 최대 개혁과제는 프랑스의 정치개혁이고, 그 최우선순위가 국회의원 수를 줄이기 위한 개헌이다. 인구 6700만명의 프랑스 의회는 하원 577명, 상원 348명 등 925명으로 1000명에 가깝다.

인구 3억1600만명의 미국이 상원 100명, 하원435명 등 535명인 것에 비해 너무 많다는 게 그의 생각이자 프랑스 국민의 생각이다. 그는 이것을 취임 1년 안에 600명 수준으로 3분의 1을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의원 수가 많다보니 입법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쓸모없는 법들이 너무 많이 발의되며, 쓸모 있는 법안은 처리가 늦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7월 3일 취임 후 처음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그는 “급변하는 경제 사회에 맞지 않는 입법관행들은 이제 끊어야 한다”면서 “의회는 입법활동을 줄여야 할 때”라고 했다. 이날 연설에서 그는 국회가 개헌안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말했다.

의회 개혁안에는 국회의원의 특권폐지도 포함된다. 국회의원 등의 재임 중 범죄를 다루는 특별법정인 ‘공화국법정(CJR)’ 폐지가 그중의 하나다. 공화국법정은 판사 3명 이외에 12명의 상·하원 의원이 재판관으로 참여해 범법 정치인들의 보호막 구실을 해왔다.

그는 올랑드 대통령의 비서였을 때 소득 상위 1%에 75%의 세금을 중과세하려는 대통령의 부자증세 시도를 철회시켰다. 장관 시절에는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세금을 감면해주는 기업우대 정책을 시행했다. 법인세를 낮추어 기업이 여유자금으로 투자하고, 거기에서 고용이 창출되는 투자의 선순환적 친기업 정책이 그의 경제 기조이다.

근로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근로시간 단축만으로 노동자의 삶이 행복해지지 않는다. 일을 더 하더라도 안정된 직장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의 근로에 대한 철학이다. 그의 이 같은 노동정책으로 인해 노조는 그의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이다.

이처럼 그는 사회당원이지만 사고의 틀은 시장주의이다. 사회당 안에서 자신의 뜻을 펼 수 없자 탈당해 ‘앙 마르슈’를 창당해 대선에 나섰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장관의 50%를 여성으로 발탁하고, 총선 후보도 50%를 여성으로, 나머지 50%를 정치신인으로 공천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말대로 실천했고 두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 아젠다는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과 너무 같다. 우리에게도 개혁대상 1호가 정치이고, 그것을 위해 우리도 개헌을 말하지만 기껏 대통령 임기의 4년 중임제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라는 국민적 요구는 물론 의원의 특권폐지 요구도 안중에 없다. 개헌은 대통령 임기 초에라야 가능하지만 문재인 정권에 개헌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마크롱보다 이틀 뒤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도 개혁을 내걸었지만 대체로 마크롱 대통령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라더니 증세로 가고, 공공부문 지출은 억제가 아니라 확대로 가고 있다.

마크롱이 좌파 정권에서 우파를 대변했듯이 문재인 정권에서 자기 색깔을 내려는 정치인도 보이지 않는다. 공약을 파기한 증세 결정에 미안한 기색은 찾아 볼 수 없고,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공사도 “중단하는 게 좋겠다”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장관도 여당도 꿀먹은 벙어리였다.

이런 여건에서 대한민국의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마크롱을 롤 모델로 하는 정치인이 나와야 하고, 그런 정치인에게 유권자들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야한다. 유권자들은 세몰이, 지역연고가 아니라 의석 한 석도 없는 정당의 후보라도 믿음이 가면 대통령으로 뽑는 배포부터 키울 일이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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