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명소 중 하나인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그곳에 갔을 때 먼저 마음을 빼앗은 것은 역사적 유물이나 풍경이 아니라 거리 음악회였습니다. 원래는 빈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까지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그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만큼 행복한 음악회였습니다.

음악회는 광장 한 가운데의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 앞에서 열렸습니다. 전통복장을 차려입은 연주자들은 세련돼보였고 관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감미로웠습니다. 연주자가 20명이 넘는 제법 규모 있는 악단이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빽빽이 둘러서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중간에 빠져나오면서도 아쉬움에 몇 번이나 돌아봤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습니다. 호프부르크 왕궁을 지나 슈테판 대성당으로 향하는 케른트너 거리를 걷다가 비슷한 규모의 또 다른 악단을 만났습니다. 다만 그들은 좀 더 자유분방한 모습이었습니다.

©픽사베이

축제기간도 아닌데,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음악회라니. 음악의 도시라는 명성과 어울리는 풍경이었습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노인 연주자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가 하얀 어른들이 젊은 연주자들 사이에 당당하게 서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무척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 같이 자연스런 미소가 그려져 있습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노인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풍경은 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 연주자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파리에서는 더욱 자주 만나게 됩니다. 골목길에도 지하철 광장에도 두세 명, 혹은 여러 명이 어울려 신나게 연주를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걸음을 잡혀있고는 했습니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하고 노후에는 음악에 열정을 바치는 그들의 삶은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물론 유럽이라고 모든 노인들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낸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도 불우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 많겠지요. 하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노인 연주자’들의 밝은 표정에서 전체의 행복지수를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 풍경과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노인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런 비교는 부러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여유 있는 노인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은퇴 후 취미생활로 악기 연주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닙니다. 하지만 그런 삶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노인들이 훨씬 많은 게 현실입니다.

상당수의 노인들에게는 여유로운 생활이나 복지 이전에 생존의 문제가 더 시급합니다. 특히 ‘독거노인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에 떨어진 발등의 불입니다. 한국보건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독거노인은 약 138만 명으로, 전체 노인 5명 중 1명꼴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베이비부머(1955~63년생)가 노인으로 편입되면서 더욱 가속화돼, 20년 후인 2035년에는 약 343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픽사베이

독거노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고독사’와 같은 부정적 단어입니다. 고독사는 저소득층 1인 가구가 가족이나 이웃과 교류 없이 지내다 홀로 숨진 뒤 발견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급격하게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123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2011년 693명에서 5년 사이 77.8%나 증가한 것입니다. 그중 60대가 24.6%, 70대가 23.6%로 60대 이상이 절반 가까이 차지했습니다.

노인문제는 독거노인이나 고독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노인 학대 역시 심각한 문제입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6년 노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9340건이었던 학대 신고 건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 지난해 1만2009건이었습니다. 노인 학대는 보호자 등이 65세 이상의 노인에 대해 신체적‧정신적‧성적으로 학대하거나 경제적 착취, 가혹행위, 유기나 방임 등을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피해노인들은 가해자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신고를 꺼리기 때문에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합니다.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노인들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애물단지’가 아닙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를 살만한 나라로 일군 주역들입니다. 작게는 못 먹고 못 입으면서 자식들을 키워낸 분들입니다. 절대 고독사까지 가도록 방치하거나 학대할 대상이 아니지요. 힘이 떨어지고 경제적 능력이 다하면 용도 폐기된 물건처럼 쓸쓸히 늙어가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노인이 좀 더 당당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년을 견디는 게 아니라 의지대로 살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취미 생활 한 둘쯤 할 수 있는 여건이면 금상첨화겠지요. 세상 곳곳의 노인 연주자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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