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소중한 사람]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난생 처음 보았다. 이런 동물병원은. 그때까지 내가 알았던 모든 병원은 깨끗했다. 수의사들은 앞 순서 강아지의 진료가 끝나면 소독약을 가져다 진료대가 있는 책상 위를 닦았다. 냄새도 없고 더러움도 없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기도 했다.

A동물병원은 유별났다. 입구부터 유기견이 들어있는 케이지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애초에 손님을 위한 대기석이었을 법한 소파들과 테이블은 이미 벽 끝까지 밀려나 소형 유기견 케이지들을 지탱하고 있었다. 청결하고 세련된 동물병원을 만들어 수입을 극대화하겠노라는 노력은 전혀, 모래알 하나 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냄새가 좀 나고, 지저분해 보이는 대신 A병원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유기견들은 최소한 아무도 밖에서 추위에 떨고 있지 않았다. 유기견 공고기간(10일, 그 이후 안락사 시행)이 무려 5개월 지난 개도 이 동물병원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밥을 먹일 수 있는 한, 공간이 있는 한, 그냥 밥이라도 먹이는 거지.” 수의사는 남얘기하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우리 가족이 된 복실이의 유기견 시절 입양 공고. ©이수진

그와의 인연은 우연히 본 유기견 공고에서 비롯됐다. 2월 초, 고민 끝에 가족과 함께 병원에 갔을 때 수의사는 버선발로 달려나왔다. 당시 우리가 입양한 복실이 역시 공고기간이 한참 전에 끝났지만 여전히 살아있었다. 학대당한 기억 끝에 겨우 안정을 되찾은 강아지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다.

수의사는 입양하러 왔다는 나를 아주 반갑게 병원 안쪽으로 데려가서 이것저것 취조하듯 캐묻기 시작했다. 전날 통화로 방문의사를 밝혔을 때 환대했던 태도와는 아주 딴판이었다.

강아지를 키워 본 경험은?
집에 다른 강아지가 있니?
누구와 사는지? 집에는 사람이 항상 있는지?
다른 가족들도 강아지 입양에 대해 모두 찬성?
주로 너랑 누가 돌볼 건지?
너의 직업은 어떻게 되는지?(네가 너무 바빠서 얘를 혼자 둘까 봐 그래)
집은 어디?
강아지가 장애가 있는데, 케어할 수 있지?(병원비가 많이 들 수도 있는데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의미야.)

다행히도 나는 수의사의 조건에 부합한 모양이었다. “아이고, 아이고”하며 갑자기 등을 팡팡 두들긴다. 어찌나 환한 표정인지, 얼른 입양동의서를 쓰잔다.

잰걸음으로 케이지 중 하나로 다가간 수의사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내려놓았다. 우리집 식구가 된 복실이다. 이때의 복실이는 사람 손길이 무서워 구석진 곳으로 슬금슬금 도망갔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 기어가는데, 마음과 달리 뒷다리가 제대로 따라붙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본 우리집 식구들은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참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때, 점잖게 생긴 수의사는 어울리지 않는 연극을 시작했다. 우리가 가슴 아파 저마다 눈꼬리를 닦으려 고개 돌리는 것이 못내 불안했던 모양이다.

“아~ 이 녀석이 왜 그러지? 그래도 곧잘 서고 그랬는데, 그렇지 엄마?”

빽빽한 케이지 사이에 용하게도 앉아 있던 수의사의 노모가 얼른 내려놓은 흰둥이를 안으며 대꾸한다.

“케이지에서 막 내려놓아서 그렇다. 밖에 잘 못 나오니까, 다리 저는 건 운동시키면 이것보다는 잘 걷는다. 내가 계속 밥을 주었는데, 밥도 잘 먹고 변도 잘보고 건강하더라. 다리도 만져보니 뼈는 튼튼한 것 같다. 그리고 강아지가 얼마나 착한가 모른다. 여기서 운동을 잘 못시키니까 이렇게 자꾸 굳는 거다. 여기 더 있으면 정말 주저앉게 될 것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장애가 있는 줄 알고 왔다는 말에도 노모의 강아지 편들어주기는 한참동안 계속됐다.

강아지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보여준 수의사 선생님. ©픽사베이

수의사와 마주 앉아 입양동의서를 비롯해 등록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나는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복실이를 입양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 병원에서는 아주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복실이는 인터넷 유기견 공고에서 보았던 내용보다 4kg이 더 나갔으며, 5개월의 나이를 더 먹고 있었다. 불과 두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수의사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노모에게 말했다.
“에이, 엄마가 밥을 많이 줘서 얘가 살이 많이 쪘네.”
“넌, 언제 그렇게 나이를 먹었냐?”
“(복실이의 치아를 살펴보며)아, 이제 보니 나이가 그렇구나.”

10점 만점에 3점. 한때 연기의 신을 꿈꾸며 마룻바닥 물 좀 먹던 내가 보기에 수의사의 연기력은 형편없었다.

“그게 사실, 장애를 가진데다가 발발이(복실이는 토종 시골강아지, 굳이 종을 말하라면 믹스, 발발이 종이다)는 입양이 잘 안돼요, 얜 그래도 아직 그나마 어린 축이니까, 작고 어린애들은 그래도 입양이 잘 되는 편이니까. 이걸 버려놔서, 찾아갈 것도 아니고, 어쩌면 좋으냐고, 그래서 뭐 좀 낮추고 그런 거지.”
10점 만점에 10점. 이런 분을 몰라 뵙다니!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입양을 성사시킨 수의사는 복실이의 ‘축! 입양’이 무척 기뻤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수의사가 나를 심문하고, 우리가 서류를 작성하고, 반려견 등록하고, 등록비 내고, 접종을 시작한 뒤부터 자꾸 무엇인가를 선물로 주려 했기 때문이다.

수의사가 입양기념으로 예방접종 한가지를 무료로 해준다길래, 난 무엇인가 사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 많은 강아지들을 공고기간을 넘겨가며 먹여 살리는 선생님의 간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그래 사료! 사료를 주세요!” 나는 애타게 소리쳤다.
수의사는 “짜잔! 축! 입양기념!” 제일 비싼 사료를 덥썩 집어다 주셨다. (‘아니, 돈 주고 산다구요.’)
“그래, 배변패드를 주세요!”
“동네에 가서 사세요” (그냥 손으로 몇 장 집어다 주신다.)
“그럼 중성화 수술할 때 올게요”
수의사는 나를 무뢰한 바라보듯이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수술하고 집에 갈 때, 애 힘들어 죽어요. 너무 멀어 안돼요, 통원 치료는 어떻게 하죠?”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네가 유기견 출신임을 부끄러움 없이 밝힌다면 중성화 수술비를 깎아주는 병원이 있을 것이다. 그곳을 찾아라. 다리는 이미 늦은 것 같다. 다만 네가 원한다면 엑스레이를 찍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권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서 나는 해주지 않는다. 다른데 가서 해라. 차라리 그것보다는 나중에 복실이가 늙어가면서 문제가 생길 텐데, 그때는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돈을 써라. 네네.

복실이가 공원을 산책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수진

그러고 보면 이 병원은 손님들마저 참 이상했다. 수의사는 병원을 가득 채운 케이지들 덕분에 앉을 자리조차 없어 서있던 유료손님들은 뒷전이고 나에게 이것저것 ‘입양기념품’을 마련해주느라 분주했다. 단골로 보이는 서너명은 긴 시간 기다리는 것에 불쾌함을 표하는 대신, 오히려 복실이에게 덕담을 해주었다. 

동네사람1
“입양 가니 좋겠구나!”(절로 흥이 나는 투로)

동네사람2
“잘 살아야 한다.”(걱정스러운 표정, 하지만 다행스럽다는 말투)

동네꼬마1
“엄마! 쟤는 다리가 왜 저래?”(걱정스러운 표정, 아이답게 심각한 말투)

동네아낙1
“응, 어느 나쁜 사람이 그랬나 봐. 하지만 이제 저 누나네 가족들이 데려다가 잘 키워준다고 해서 데려가는 거야.”(천천히 잔잔하게 설명, 찬찬한 어투와 진지한 표정)

수의사의 기쁨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복실이가 우리 엄마 품에 안겨 병원 문을 나설 때까지, 동생이 마지막 문을 열고 돌아설 때까지, 병원 문을 삼분의 일쯤 열고 계속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틀 후, 병원 직원은 집으로 전화해 정다운 목소리로 물어봐주었다. 복실이는 잘 있느냐고.

수의사가 보여준 진심 어린 모습을 생각할 때면, 나는 복실이를 잘 돌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에 위안을 얻곤 한다. 그의 눈빛에는 강아지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연민과 동정이 담겨있었다. 복실이가 태어나자마자 겪어야 했던 괴로움과 고통에 대한 슬픔이자 축복, 앞으로는 과거를 잊고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애정이 담긴 인간애. 아마도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고통받는 약자에게, 사람들을 대표해서 전하는 짧은 사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가 한발이, 두발이 달렸든, 세발로, 네발로 걷든… 이것은 사랑이라고. 상업적 이윤보다 말 못하고 다리 하나 못 쓰는 시골 강아지 목숨이 더 중하다고 수의사는 행동으로 말해주었다.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은 어느 읍내에 있던 동물병원 수의사 선생님이었다. 가장 약한 것에 대한 댓가없는 순수한 애정과 동정. 아! 사랑.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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