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안의 동행]

[오피니언타임스=최선희]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유리구슬이 있다. 이 구슬에 뜨거운 물이 가득 차서 깨져버리면 유리조각이 마음을 찌른다. 마음의 병은 몸의 병으로 옮겨간다. 몸과 마음을 지독한 열기가 지배하지만 폭염주의보는 뒤늦게 전달된다. 화산이 폭발해야만 알 수 있다. 지구온난화에 많은 생명이 멸종 위기에 놓이지만 프레온 가스를 유발하는 제품 사용량은 줄지 않는 것처럼,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유리구슬이 깨져 마음에 병이 생긴 상태가 우울증이다. 이 병은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아서 여러 오해들을 부른다. 사람들은 일단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안보이는 것까지 헤아리기에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다. 우울하다는 사람에게 “너는 강하니까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어.”, “의지를 갖고 노력해서 이겨내야지!”라고 조언하지만 이는 오히려 우울증 환자에게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마음이 한없이 약해진 그들은 “아, 난 그런 의지조차 없는 하찮고 쓸모없는 인간이구나”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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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황제병 아닌가요?”라는 오해도 황당하다. 몇몇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니, 우울증이니 말하고 다니면서 벌어진 사태다. 우울증에 대한 인식 개선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지만 환자들이 느끼는 현실은 예전 그대로다. “힘들고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우울증 아닌가요?”라는 질문에는 그저 “네…….”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말이 길어질수록 구차해지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 말도 우습다. 감기는 2주 정도면 대부분 낫는다. 우울증 환자의 “힘들어”라는 힘든 고백의 답은 보통 이렇게 튀어나온다. “나도 힘들고 다 힘들어. 누구나 다 죽고 싶고, 살고 싶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사는 거지.”

하지만 우울감을 느끼는 것과 우울증이라는 병을 앓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우울감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것에 좌절해 생겨난다. 우울감을 느끼게 하는 방해요소가 사라지면 치유된다. 반면 우울증 환자에게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 그저 ‘죽음’밖에는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울증은 병리학적인 상태로 대뇌 변연계의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등이 분해가 빨리 되거나 절후신경에서의 수용체의 민감도가 감소하면 증상이 나타난다. 쉽게 말해 뇌에는 엔돌핀을 담는 그릇이 있고, 이 그릇이 꽉 차야 행복감을 느끼는데 우울증 환자나 자살하는 사람은 이 그릇이 상당히 커져 있어서 쉽게 채워지지 않거나 신경 전달 물질이 제대로 분비가 안 돼 행복감을 못 느끼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특히 감정의 화산이 폭발한 이후, 본격적인 우울증 초입 단계 무렵 1년에서 1년 반 사이가 가장 위험하다. 항상 빨간 불이 켜진 상태라서 멈춰선 그곳에서 자살 충동을 수시로 느낀다. 때때로 찾아오는 충동을 넘기고 나면 사는 기간이 연장된다. 대게 둘 중 하나다. 좋아지거나, 만성으로 들어서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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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중심으로 척추 뼈가 휘면 자율신경계의 활성화 문제에 영향을 주게 된다. 뼈가 휘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면 근육이 뭉쳐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자율신경계의 문제로 호르몬 분비가 과하거나 부족하거나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인 상태가 하나의 우울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바르지 못한 자세로 생활하여 뼈가 굽거나 틀어지고 근육이 돌처럼 굳어 신경을 누른다. 이는 혈액순환과 호르몬의 순환을 제어해 마치 수도꼭지를 잡고 물줄기를 줄인 것처럼 ‘똑똑똑’ 힘겹게 떨어지게 만든다. 호르몬 분비가 적어 마음의 영양이 부족한 상태지만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의 뼈는 206마디가 다 연결돼있어서 온몸에 퍼진다. 얼굴 근육도 굳는다. 그러면 웃는 것에 어려움이 생긴다. 눈꺼풀에 노폐물과 지방이 쌓이고 그렇게 안검하수와 같은 증상이 생기면 미간을 찌푸려 주름이 생기게 된다. 인상을 쓰면 의도와 다르게 노려보게 되고, 인상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얼이 지나는 통로’라는 얼굴이 변해 굳은 표정이 가면처럼 못박히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관심 서열에서 밀리면 애정결핍이 생긴다. 트러블메이커가 되어버린다. 상대는 처음엔 조금 이해하려 노력다가도 금새 떠나간다. 무시해버리면 속 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태를 아무리 설명해도 가족들조차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하기에 끌어안는 것일 뿐.

우울증에 걸리면 처음에는 본인도 잘 모른다. 밝은 감정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 그저 늘 변명 같은 해명을 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다 은둔형 외톨이가 되기도 한다. 가석방이 없는 무기징역을 짊어지고 독방에 갇혀 혼자 지내다 사회에 나오면 사회성도 떨어지기 마련이고 말수도 줄어든다.

말수가 줄어들면 점점 어린아이처럼 작아진다. 우울증에 고통받지 않으려면 눈앞에서 멀어지는 것이 당장 해법이기에, 사람들을 피하고 표정이 점점 더 사라진다. 때로는 고민을 말해도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한다. 그러면 더욱 자라처럼 움츠러든다. 우울증으로 인하여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지고 한껏 무기력해진다. 이로 인해 한심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자신에 대해 심한 자책과 죄책감을 느끼고 우울증은 한층 깊어져 간다.

‘명치’라는 골짜기에 뜨거운 바윗돌이 박혀 있다. 한의학에서 화병이라고 부르는 상태다. “울화가 치민다.”, “울화통이 터진다.”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 같은 상태를 정신의학에서는 우울증의 한 종류로 본다. 우울증이란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신체적 증상들이 나타나고 자신이 제어하기 어려운 분노가 치민다. 컴퓨터로 오래 작업하다보면 기기에서 열감이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의 간은 피로물질 등을 분해해 제거하는데,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많을수록 할 일이 많아 과부하에 걸려 열기가 차오른다.

우울증의 원인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수많은 병원을 돌아다녀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 틈을 노린 하이애나들이 기치료나 소금관장 등 근거 없는 치료를 강요해 아픈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사람은 절박하면 이상한 것에 현혹된다. 돈을 잃어 생계가 어려운데, 치료를 받아야 돈을 벌수가 있고 딜레마에 빠진다.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계속 돈다. 문득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가사가 떠오른다. 행복하려면 아프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눈에 띄게 아파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것도, 건강해지는 것도 모두 어렵다.

 최선희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건축회사 웹디자인 파트에서 근무 중인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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