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현의 웃는한국] 교육혁명⓵

[오피니언타임스=서용현, Jose] 우리 교육에 꿈이 있는가? 우리 교육정책에 중장기적인 비전이 있는가? 우리나라를 세계 1등 국가로 만들 구상이 있는가? 세계화 추세 속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도록 만들 복안(腹案)이 있는가? 필자는 복안이 있다. 우리 교육을 “세계에서 젤 자유로운 교육”으로 만들면 된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의 잠재력을 활짝 피어나게 하면… 우린 1등이다.

찰스 다윈이 말했듯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번영의 열쇠다. 오늘의 ‘변화’는 무엇인가? 지식의 시대가 가고 두뇌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학생들은 암기공부에 목을 맨다. 이 얼마나 엄청난 국가적 낭비인가? 이것을 180도 뒤집자.

이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분 개혁’으로는 안 된다. 수능을 손 보고, 특목고나 자사고를 페지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교육에 대한 발상 자체를 바꾸고, 교육을 백지에 다시 써야 한다. 특히 우리 교육을 지식위주, 통제위주 교육에서 철저히 탈출(exodus)시켜야 한다. 신동엽 시인의 시(詩)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에 ‘쇠 항아리’라는 표현이 나온다. 학생들은 쇠 항아리를 지고 살아왔다. 암기공부와 시험이 대표적인 쇠 항아리다. 그래서 생각이 나겠는가? 창의가 되겠는가? 이러한 쇠 항아리를 부수고 학생들을 일체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세상에서 젤 자유로운 교육”이다. 필자의 꿈이다.

자, 1등으로 가자

선진국 교육을 벤치마크하는 것으로는 1등이 될 수 없다. 교육은 어느 나라에서나 보수적, 경직적이다. 따라서 선진국들도 획기적인 교육개혁을 망설인다. 성공했던 구제도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면우 교수는 저서 <생존의 W이론>에서 “유럽, 미국이 간 길을 아무리 따라가 봐야 2등밖에 못 한다”고 했다. 따라서 선진국의 제도를 참고는 하되 그것을 뛰어넘는 초(超) 선진적 구상이 필요하다. 예컨대 “시험을 없앤다,” 또는 “컴퓨터 시대에 지식교육을 대폭 줄인다”가 그런 발상의 전환이다.

벌써 수 세기를 묵은 선진국의 교육제도는 형식화·경직화되어 귀신냄새 나는 것들이 많다. 미국을 보자. 교육은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1등 공신이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교육제도는 신자유주의에 물들어 돈 냄새가 너무 난다. 이른바 ‘수학능력시험(SAT)’은 최악이다. 자유롭게 공부해온 미국의 학생들을 암기공부로 후진(後進)시키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암기의 메카인 한국으로 SAT를 공부하러 온다 한다. 제국의 말로인가? 미국의 학교가 충분히 자유로웠다면 미국의 IT 삼총사(빌 게이트, 스티브 잡스, 마크 주크버그)가 대학을 중퇴하였을까?

교육이 ‘엉망’인 한국이 교육혁명의 기치를 들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적은 폐허에서 떠오른다. ‘촛불의 기적’이 한국에서 점화되지 않았는가? 우리 교육에 대한 범국민적 실망은 교육혁명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먼저 과감한 교육혁명을 하면 우리는 선구자가 될 수 있다. 나라가 크다고 대국(大國)이 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와 몽골제국을 보라. 국민의 잠재력이 최고로 발휘되면 위대한 나라가 된다. 교육혁명으로 그런 기적을 창조하자. 그래서 1등으로 가자.

몽골은 ‘연’을 타고 금나라 요새를 공격했다. 징기스칸 시대 몽골의 교육은 “젤 자유로운 교육”의 모델이다. ©픽사베이

<세계에서 젤 자유로운 교육>

<세계에서 젤 자유로운 교육>의 핵심은 ‘자유’다. “학생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여 잠재력이 최대한 살아나게 하는 교육”이다. 스트레스 없고 주눅 들지 않는 교육이다. 웃는 학생, 모험 학생을 만드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들을 전격적으로 뒤집고, 교육을 백지에 다시 쓰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아래를 지향한다.

- 학생들을 규율과 규제에서 최대한 해방시켜서 창의력있고, 호기심 많은 학생들을 키운다. 이를 위해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잠재력 발휘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뒷전에 물러나야 한다.

- 지식을 중(重)하게 보지 않는다. 지식이 많은 학생이 아니라 머리 좋은 학생을 키운다. 이를 위해 시험을 극소화한다. 지식보다 경험, 실습을 우선하여 쓸모있는 젊은이를 만든다.

- 인성(人性)교육을 중시한다. 친구 많고, 의리 있고, ‘함께 살 줄 아는’ 상호의존적인 학생들을 키운다. 이들은 세계인의 친구가 된다. 이것이 세계화의 시대에 한국의 경쟁력이 된다.

<젤 자유로운 교육>이 지향하는 것은 ‘제도적 틀’에 갇힌 교육이 아니다. 열린 교육이다. 신바람 교육이다. ‘학교라는 감옥’을 부수고 기죽지 않고 패기와 자신감이 있는 학생들을 키운다. 교육을 재밌게 한다. 그래서 잘 뛰어놀고, 꿈과 호기심이 있는 학생을 만든다. 한 마디로 행복한 학생을 만든다. 이것이 우리 기성세대가 후손들에게 남겨야 하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갇힌 교육’을 추방하자. 왜 중국이 그 화려한 문화, 압도적인 인구를 가지고 역사의 반을 북방민족(몽골, 청나라 등)의 지배를 받았는지 아는가? 유교식의 주입식 암기공부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북방민족들은 학교도 변변히 없었다. 그 ‘덕분에’ 이들은 사회, 자연, 인간에게서 배우는 ‘살아있는 공부’를 했다. 그래서 직관(直觀)이 발달되고 머리가 좋아졌다. 지식에 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상황변화에 적응했다. 예컨대 몽골은 ‘연’을 타고 금나라 요새를 공격했다. 원래 성(城)이 없던 몽골이 중국의 성을 몇 차례 공격한 후에 공성술(攻城術)의 대가가 되지 않았던가? 징기스칸 시대 몽골의 교육은 “젤 자유로운 교육”의 모델이다.

©픽사베이

교육개혁은 국민이 한다

필자가 이하 ‘교육혁명 시리즈’에서 제시하는 개혁안은 교육의 ‘개벽(開闢)’이다. 이런 혁명을 교육 기득권(예: 교총)의 ‘협력’을 얻어 실행할 수 있을까? 교육부 관료들의 방해와 저항을 넘을 수 있을까? 교육부가 ‘제 닭잡기’를 할 수 있을까? 이것들을 극복할 유일한 대안은 “국민에게 직접 묻는” 것이다.

‘교육의 개벽’은 교육부가 할 수 없다. 대통령 직속으로 독립기관 (예: 교육개혁 특위)을 설치하고, 특위가 포괄적인 개혁안을 작성, 대통령의 이름으로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본다. 이른바 ‘공론조사’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중요하고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돌 직구’로 국민의 총의를 물어야 된다. 이런 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는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인터넷의 발달로 쉽게 국민투표를 시행할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전자투표’를 하고 전자투표를 할 수 없는 연장자들은 젊은이들이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도우미 역할을 하면 된다. 국민이 정말 나라의 주인이 되려면 국민투표를 자주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반기문 전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중.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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