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백리향, 솔나리, 한라송이풀, 네귀쓴풀… 가야산은 여름 야생화의 보고

[오피니언타임스=김인철 야생화칼럼니스트] 입추(7일)가 지났건만, 무더위는 지칠 줄 모릅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니 바다로, 강으로 발길을 돌릴 만하건만 ‘꽃쟁이들’은 아랑곳 않고 산을 오릅니다. 뒷산으로 가볍게 산책을 떠나는 게 아니라, 해발 1400m가 넘는 가야산을 향해 새벽길을 나섭니다. ‘폭염경보, 야외활동 자제’를 당부하는 행정안전부의 안전 안내 문자에도 불구하고 고행하듯 높은 산을 오르는 이유는 단 하나, 흘린 땀방울만큼 보상해주는 곱고 귀한 야생화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리향과 솔나리, 한라송이풀, 네귀쓴풀, 원추리, 가야잔대, 산오이풀 등등.

운해(雲海) 위로 해가 솟는 가운데 칠불봉 바위 겉에 핀 백리향이 아침 햇살에 붉게 반짝이고 있다. 꿀풀과의 낙엽 활엽 반관목, 학명은 Thymus quinquecostatus Celak. ©김인철

역시 폭염 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8월 2일 경북 성주군의 백운동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서성재를 거쳐 3시간 만에 가야산 최고봉인 해발 1433m 칠불봉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산 굽이굽이 가득 찬 구름바다 사이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칠불봉 둘레에 만개한 백리향(百里香)이 연분홍 꽃물결을 이루는 장관을 보았습니다. “아,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 바로 여기로구나.” 꽃은 물론 줄기 잎 등 전초에서 진한 향기가 나며, 그 향이 사방 백 리를 간다 하여 그 이름을 얻었습니다. 일종의 토종 허브(herb)인데 한여름 가야산은 물론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 등 내로라하는 높은 산 정상 부근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습니다.

주봉인 상왕봉 바로 아래 풀밭에 핀 솔나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Lilium cernuum Kom. ©김인철

삼복더위에도 생기를 잃지 않고 가야산 정상을 야생화 천국으로 만드는 건 백리향뿐이 아닙니다. 단아한 자태와 투명한 연분홍 꽃색 등으로 참나리와 하늘나리, 중나리, 말나리, 땅나리 등 여타 나리꽃 중 단연 최고라 일컫는 솔나리가 그 뒤를 잇습니다. 역시 설악산과 남덕유산과 운무산 이만봉 등의 맨 꼭대기까지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솔나리는 가야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주봉인 해발 1430m 상왕봉 주변에서 우아한 꽃송이를 뽐냅니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한라송이풀이 홍자색 꽃을 막 터뜨리고 있다.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Pedicularis hallaisanensis Hurus. ©김인철

한라산과 설악산 정상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한라송이풀도 한여름 가야산을 대표하는 고산식물입니다.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을 만큼 희귀종인데, 백두산 고산평원에서 피는 구름송이풀과 유사하면서도 줄기에 털이 많아서 별도의 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하얀 꽃잎에 점점이 박힌 파란색 무늬로 인해 ‘청화백자’라는 별칭을 얻은 네귀쓴풀. 용담과의 한해살이풀. 학명은 Swertia tetrapetala (Pall.) Grossh. ©김인철

구슬땀을 흘리고 오른 가야산 정상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여름 야생화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인의 말처럼 가만 들여다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네귀쓴풀입니다. 네 장의 꽃잎을 모두 합해야 1c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크기가 매우 작지만, 흰색 바탕에 청색 점이 알알이 박힌 모습은 마치 청화백자를 연상케 할 만큼 우아하고 기품이 넘칩니다.

백리향과 산봉우리,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김인철

해발 1000m가 넘는 가야산 정상에는 야산에선 만날 수 없는 희귀종이거나, 같은 종이라도 꽃 색이 더욱 곱고 진하며 잡티가 없는 야생화가 자라고 있습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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