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관의 모다깃비 감성]

[오피니언타임스=신명관] 시 창작 동아리를 오랜만에 찾아갔다. 1년만의 방문이었다. 두 편의 자작시를 들고 찾아갔고,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대차게 까였다. '시라기 보다는 다른 장르의 글을 보는 느낌이다', '서로의 연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제목이 이해되지 않는다’, ‘호흡이 너무 길다’, ‘랩 가사같다’는 지적들이 연달아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쉬었고, 두 편의 시는 모두 내가 평소에 쓰던 작법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지적을 다 듣고 나서 내 합평이 끝났을 때 찾아오는 것은 상쾌함과 만족감이었다. 지적들은 엄청나게 아팠는데, 기분이 좋았다. 누가 보면 변태로 착각할지도 모를 정도의 후련함이었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공부를 잘했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내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빨랐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만 해도 특정 영역에서만 고득점을 취하던 나는 인문계열 학과로 진학하고서 비교적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픽사베이

신입생 1학기 중간고사가 채 지나기 전에 나는 교수가 보고서에 뭘 써넣어줬으면 하는지 보였다. 보고서의 내용 중 뭘 중요시할 것인지, 어디에서 민감하게 반응할지도 다른 애들보다 쉬이 예측할 수 있었다. 신입생이었지만 전공 교수들을 수년 동안 마주해 ‘짬’이 먹은 선배들처럼 취향에 맞는 보고서를 일찍이 내줄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아하는 과목들은 열심히 했어도 전반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저 각 년도의 출제유형을 분석하고 고시를 가르치는 강사들처럼 전략적 접근을 한 거였다. 1학기 중간고사의 학점은 3.97과 공동 3등이었다. 애들은 내게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틀린 소리였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들을 제외하곤 최소한의 공부만 했을 뿐이었다. 밤샘의 절반은 게임이었다.

2학년이 되어서 ‘시’ 과목을 배울 때도 이 전략은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처음에 써갔었던 시는 마지막 연을 제외하고 모두 삭제하라는 청천벽력의 발언을 들었지만, 그 이후부터 써간 시들은 점수를 받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수업 중 예시로 들어주는 시들과, 교수가 좋아한다고 하는 시인들, 싫어한다는 시인들, 다른 작품들을 합평하면서 좋았다고 말한 부분들을 체크하고 기억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들을 그에 맞는 필터링 작업을 통해 내놓았다. 그렇게 지내자 2학기 때 제출한 시 중 하나는 다른 이들의 시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범답안’이 되어 있었다. 추상적 관념어가 없으며, 대상에 대한 관찰이 들어가 있고, 감각적 묘사가 잘 되어있으며, 화자의 애틋한 감정 또한 잘 표현되어있다. 시에서 받은 칭찬이었다. 한껏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자랑스러워져서, 그 시를 학과 문집에다가 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내 시들이 ‘가짜’라곤 못한다. 전략적으로 씌였어도 정말로 내 감정들이 오롯이 들어간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상들을 관찰한 뒤에 쓴 작품들이었다. 지금도 작품을 보면 내가 왜 이 시를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바로 말할 수 있으니까. 개인의 ‘작품’이 개인만의 전유물이 아닌 ‘예술’이 되는 데에는 최소한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전략적 접근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시란 더 이상 더할 곳도, 뺄 곳도 없는 정제된 언어의 결정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4년이 지난 후 다시 시를 쓰려고 하자, 시창작 수업을 죄다 들어버린 지금의 내가 쓰고 있는 시들은 수업을 위한 전략을 굳이 안 짜도 되는 상황에 놓여버린 거였다.

행과 연을 다 무시하고 내가 내키는 대로 쓰는 게 처음엔 어색했다. ‘수업에 냈다간 지적받을 만한 부분이네.’ 하지만 앞으로 고득점을 위한 시를 쓸 일은 없었다. ‘교수가 싫어하겠군.’ 교수에게 앞으로 시를 보여줄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씌여지는 분위기에 호 불호를 보일 선후배들의 리스트가 머릿속으로 지나쳐갔다. 그들을 위해 쓰는 헌정시도 아닌데 알 바 아니었다. 그렇게 아무 계획도 전략도 없이 시작한 시작(詩作)은 나중엔 신이 났다. 영화 ‘스쿨 오브 락’에서 고상한 수업을 듣던 애들이 락을 하면서 웃는 느낌이랑 비슷했다. 일종의 해방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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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이 없자 글들은 날뛰었다. 시라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엉성하고 민망한 단어들. 처음 보는 호흡으로 띄어진 연과 행들. 초고는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오는 만족감이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 날것의 나를 찾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본성을 가진 인간이었구나. 평생 동안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한다는데, 그 일부를 찾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자다가 이불킥을 할 만큼 말같지도 않은 글을 썼다고 찢어버릴 것이었을텐데, 나는 그걸 필사한 시들과 같이 고이 집어넣어놓았다.

‘전략’은 다시 말해 일종의 보편적 진리를 효율적으로 얻기 위한 ‘스킬’이다. 문제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답을 고른다는 것은 학습과 반복으로 얼마든지 습득 가능하다. 인종에 구애받지 않으며, 성별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나이도 별로 구애되는 지점이 없다. 필요에 의한 학습과 쓰임이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의고사, 수능, 토익, 토플, 탭스, JPT, HSK, OPIC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을 때 바로 공부할 수 있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들.

나는 처음에 시작할 때 그 능력이 남들보다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 서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반에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깔려있지 못한 채였다. ‘전략’의 밑바탕에는 ‘나’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서 모르는 채로 전략을 구사했다. 왜 공부를 하는진 모르지만 일단 시키니까 하고 보는 아이처럼. 주변에서 남들이 모두 따기 시작하니까 불안해서 시작한 토익 공부처럼.

‘어떻게 썼나’에서는 유창하게 발음할 수 있었던 나의 모든 시들은 ‘신명관의 글인가’라는 질문에는 버벅거릴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그제야 나라는 사람을 알려줄 신분증이 나타난 느낌이 들어 버릴 수 없던 것일테다. 엉성하기 짝이없는 시였음에도 찢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이었다.

전략이라는 함정에 빠졌다가 이제 겨우 나와서, 쌓아왔던 스타일들이 모두 반쪽이었던 걸 알아서 당분간 나는 방황을 계속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일이나 사나흘을 밤 새가며 보고서를 쓰는 일보다 힘들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의 나는 나라는 사람의 개성을 쌓아올릴 자신이 있다. 예전보다 더 겁 없어졌고, 더 내가 잘 될 것이라는 이 허세 빵빵한 자신감은 딱 하나의 이유에서 존재한다. 더 이상 나는 속지 않는다. 전략이라는 말 뒤의 속임수에 넘어가기엔, 나라는 사람을 잘 찾고 있기 때문이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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