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여자도 군대 가라!’는 주장은 성평등을 주장하는 듯 보이지만 ‘나만 고생할 수 없으니깐 너도 고생해봐라’는 논리에 가깝다. 얼마 전 밝혀진 ‘공관병 갑질’사건만 보더라도 군대는 마음만 먹으면 사병의 인격을 무시하고 복무기간동안 무제한의 인력, 노동력으로 악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군 복무를 하게 된다면 상명하복 및 권력관계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발생할 여지도 다분하다. 그러므로 성평등을 위한 여성 복무 주장은 최소한 군대의 부조리한 구조 및 군인에 대한 예우와 인식이 변화된 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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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남자만 군대에 보냈을까

헌법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하지만 병역법에선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며 남자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래서 군대는 남자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근거로 꼭 등장한다. 물론 여성도 지원하면 군대에 갈 수 있지만 '의무'는 아니다. 그러니 남자들 입장에서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2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해야 하는 게 상대적인 불공평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일부)남자들은 '여성들도 군대 보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일부)여자들은 '그럼 남자들이 애 낳고 길러라'했다. 절대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남성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는 게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고(2006헌마328), 남자는 신체적으로 애를 낳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는 건 서로에 대한 혐오와 불신뿐이다. 그러니 병역문제에서 만큼은 한국이 어느 성별에게 더 불리한 사회인지를 입증하려고 애쓸 게 아니라, 남자에게만 병역의 의무를 부과했을 때 이득을 보는 게 누구인지를 생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남녀 싸움에 국가는 웃는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불공평함을 느낀다. 남자들이 군대에 있는 동안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은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공정함에 대한 요구는 국가를 향해야 한다. 남자들을 군대로 보내고 국방비리를 방치하고, 공관병들을 하인처럼 부리고, 턱없이 적은 월급을 준 건 여성들이 아니라 국방부 및 헌법재판소 등의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 문제가 엉뚱하게 여성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표출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니 남녀 간의 혐오만 커져갈 뿐이다. 그 사이에 군 비리와 부조리는 점점 더 공고해진다.

국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건 느리고 어렵다. 반면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조롱함으로써 얻는 쾌감은 짧지만 쉽고 빠르다. 그래서 군대 얘기가 나오면 여성들을 공격하는 건 물론이고 남성이어도 군대에 가지 않았다면 비난의 대상으로 만든다. '군대도 못 간 게 남자 구실이나 하겠냐', '이래서 군대 안 갔다 온 사람이랑은 대화가 안 통해'하는 식이다. 군대 내 부조리, 폭력, 비리는 개선해야 할 것이 아니라 '남자라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된다.

군대 문제를 지적하려 해도 군대에 안 다녀온 사람이라면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뭘 아는 척이냐'며 무시하고, 자기보다 편한 부대를 나왔으면 '거기 나왔으면 군 생활한 것도 아니다'라고 무시하고, 같은 부대여도 보직이 다르면 '꿀보직인데 왜 힘든 척하냐'면서 무시한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니깐 혼자 잘난 척하지 말라는 거다. 이러다 보니 군대 문화는 사회 전체로 번져 '군인스러움', '남자다움'이 미덕인 사회가 된다. 대학이나 직장 내에서 군기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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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국방 개혁이다

스무 살 무렵 나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공포와 '군대에 못 갈 수도 있다'는 공포를 함께 느꼈다. 난치성 질환으로 면제 판정을 받을만한 상태였는데 군대를 안 갔을 때 받을 비난과 조롱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동시에 군대에 다녀온, 혹은 다녀와야 할 사람들에게 빚을 지는 듯한 채무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군대가 부조리나 비리, 폭력이 없는 합리적인 공간이고,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줬다면 이렇게 까지나 미안함을 느낄 일은 없었을 거다.

2022년까지 사병 월급을 최저임금 50%로 인상하기로 결정했다는 국정기획위의 소식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사병 월급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건 변함없다. 헌법재판소가 '직업군인과 달리 현역병은 보수가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정도에 이를 필요는 없다.(2011헌마307)'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애국이란 이름으로 청춘을 착취하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국가다. 이해할 수 없다면 외우자. 여자가 군대에 가는 것과 군대의 부조리를 개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광호

 똑같은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두려움에 글을 씁니다. 게임 좋아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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