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마케팅]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박갑수 서울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여름의 어원은 녀름인데 이는 계절로서의 여름, 농사(녀름짓), 그리고 그 결과로 나오는 열매의 뜻을 가진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여름인 하(夏)는 우왕이 세운 나라 이름, 중국(인)이라는 뜻도 있고 좀 뜬금없지만 여름에 지내는 제사 때 추는 춤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하긴 글자 모양이 큰머리 혈(頁)과 천천히걸을쇠발(夊)의 합자이니 탈을 쓰고 발을 크게 놀려 춤추는 형상 같기도 하다. 반면 영어의 summer는 ‘반년, 년’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samma와 뿌리가 같은 말이고 프랑스어 'et'e는 본래 ‘열, 뜨겁다’를 의미하는데 여름을 뜨겁다고만 인식하는 이들 서양과는 다른 사고가 한국, 중국에는 있는 것이다.

거미줄을 치우지 못하겠네

ⓒ픽사베이

장마가 지나간 이 여름이 우리 아파트 정원에 조화를 부렸다. 나무는 잎이 흠씬 무성해지고 아래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이름 모를 풀들이 블록 사이, 깨진 시멘트 틈사이로 으쓱으쓱 컸다. 이해인 수녀는 여기서 민들레 영토를 떠올렸다지. 풀잎 사이 거미들이 여기 저기 집을 짓고 숨을 죽여 먹잇감을 기다린다. 올해는 거미 개체수가 부쩍 늘었다. 내 집 앞 현관 문 위에서 대여섯 마리가 그물을 쳤지만 모른 척 한다. 살겠다고 저 인내인데 초치고 싶지 않다. 최소한 거미들은 저보다 약한 생명에 갑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본다.

개미들도 부쩍 늘었다. 이놈들은 늘 저돌적이다. 저보다 몇 만 배는 큰 인간들 발 사이를 겁 없이 돌아다닌다. 개미는 게으른 곤충이라는데 그럼에도 장마 뒤라 그런지 꽤나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큰 비에 나들이 나왔다가 죽은 지렁이는 개미에게는 원시인이 맘모스를 사냥한 것과 같다. 7년간이나 땅속에 있다가 우화등선한 매미가 불행히도 여름을 일찍 마치고 현관 문 앞에 죽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 어느 샌가 개미들이 시체에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이 여름의 조화인가! 이 모든 몸짓들이 발을 놀려 크게 춤추며 녀름짓 생명 형상으로 보인다. 나는 논객이 아니라 한객의 눈으로 뒷짐 지고 그들을 바라만 본다. 작년 같으면 빗자루 들어 거미줄 치우고 발을 굴러 개미들 몰아내던 내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그들 삶의 노력에 끼어들기가 미안하다. 생전에 어머니가 심어 놓으신 감나무엔 세 살배기 아이주먹만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새삼 저 열매들의 무게를 부러지지 않고 감당해야 하는 감 줄기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어머니 줄기는 우리 남매들 무게가 수박보다 무거우셨을 테지. 우리 사회 누군가도 어디서 저렇게 감 줄기처럼 버티고 있겠지. 그러니 5천만이 매달려 사는 것이겠지. 저 나무와 개미와 거미와 질긴 풀잎들이 생명의 원시적 씨앗이 잉태되던 수억 년 전에는 나를 포함한 육지동물들과 뿌리가 같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광물질과 햇볕, 산소와 탄소가 융합해서 빚어낸 우주의 기적!

녀름짓고 열매 맺는 삶이었던가

이 뜨거운 불볕 아래서 문득 작년 겨울에 들었던 촛불이 떠오른다. 기억이 안 날수 없는 거사였다. 그런데 뜨거운 태양과 몸에 찐득하게 붙은 땀이 그 상념을 무력화시킨다. 왜 촛불을 들었더라? 막연하다. 아, 그렇지... 그래서 들었지. 다행이다. 이 여름에는 촛불 들 일이 없어서.

아파트 아스팔트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에서 반사되는 불볕이 뜨거워 집에 들어온다. 선풍기를 켠다. 2단으로는 틀어야 되는 무더위다. 이 더위가 점점 더 해질 거란다. 지구를 생각하면 전기를 좀 아껴야겠는데 잘 안 된다. 여름 한객인 나는 책을 펴든다. 얼마 전에 춘천을 다녀오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무심코 산 세권짜리 책이다. 합치면 2700페이지 책. 무협지 같은 무사 스토리에 적당히 붙은 역사, 매정한 러브까지 섞어있어 북스테이로는 딱이다. 17세기 초 혼란했던 바쿠후 초기 시대에 묵묵히 병법자의 길을 추구한 사나이. 권력도 버리고 인연도 초개같이 자르고 평생 무도를 쫓은 방랑 사나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을 이루는 밑바탕 유전자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 수행인생의 끝은 장하고도 허무하다. 그를 무너뜨린 건 사람이 아니라 생명의 필멸 룰이었다. 책을 덮고 눈가를 문지르니 문득 조선의 김삿갓, 장승업도 보이고 김정호도 보인다. 그들도 업보를 안고 평생 수행의 길을 걸었었다. 그들을 보다가 그들 인생 배경에 나를 슬쩍 넣어본다. 그들에 비하면 수행이랄 것도 없는 나는 무엇을 쫓아 살아 왔던가? 과연 얼마나 녀름짓고 열매 맺는 삶이었던가?

ⓒ픽사베이

이번에는 5년 전에 사서 책상 밑에 처박아 두었던 <대망> 12권 중 1권을 펼쳐든다. 헉, 한 권당 600페이지다. 마침 미야모토 무사시가 살았던 시대 불나방 같은 권력자와 촛불 같은 가신과 봄꽃처럼 가련한 여인들의 장편서사시다. 천하통일, 평화정착, 극락차안의 꿈을 이루려던 슈퍼 개미들과 거미들과 풀잎들과 감나무 열매와 줄기 이야기인 듯하다.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겠다. 이제는 좀 서두르지 않고 살아야 할 것인데... 그 동안 책을 뽀빠이가 시금치 캔 먹듯이 꿀꺽 꿀꺽 먹은 것은 좀 피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그런들 세상에 그 많은 책 중 몇 퍼센트나 먹을 것인가. 그 책을 다 못 먹는다 한들 사는데 얼마나 지장이 있을 건가.

그런데 내가 왜 이러지? 여름이 내게 더위를 먹여 이런 조화를 부리나 보다. 더위를 먹은 건지 나이를 먹은 건지 긴 시간이 보인다. 그 시간 틈을 살던 사람들이 보인다. 그 사람들의 명멸이 보인다. 이 여름의 조화인가.

이제 입추가 지났다. 그래도 여름이다. 녀름짓고 열매 맺기 좋은 계절이다. 탈 쓰고 큰 춤추기 좋은 계절이다.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2017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문체부 문화창조융합 추진단 자문위원 /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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