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오피니언타임스=이지완] 나는 버스를 탈 때면 되도록 의자에 앉는 편이다. 버스에 서있으면 갑자기 불안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계속 사람들한테 치이다보니까 그런 것 같다. 버스를 타면 나는 얼른 뒤로 걸어가서 내리는 문 앞에 있는 2인용 좌석에 앉는다. 그 좌석에 누군가 앉아있으면 그 옆이나, 뒷좌석 정도에 주로 앉는다. 그런데 어제 나는 굉장히 오랜만에 버스 맨 앞좌석에 앉게 되었다.

©픽사베이

맨 앞에 앉아있으니 버스의 전면 유리창으로 도로 상황도 보이고, 버스에 비해 작은 사람들의 모습이나 가야하는 길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매일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앞으로 오니 새로운 것이 많았다. 그러다가 내릴 정류장이 다되었는데, 체감상 뒷좌석에 앉았을 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이 버스의 탑승자들 중 가장 빠르게 정류소로 진입한 것 같았다. 굳이 따지자면 버스 맨 앞에 앉아있어 뒷좌석 사람보다 1초 정도 빨리 정류장으로 들어왔을 텐데 큰 차이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어떤 프로젝트A라고 생각해보았다. 능력별로 앞에서부터 자리를 지정해주는 버스다. 팀장이나 유능한 사람들은 언제나 버스 맨 앞에 앉아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목표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신입인재나 조금 더디고 습득이 늦은 사람들을 뒤에 앉아서 옆 창가로만 상황을 보고 조금 느리게 목표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정류장에 대한 정보도 채 알지 못했는데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뒤에 앉은 사람들은 계속 뒤쳐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것이 불공평하다고 누군가 얘기를 했다. 그래서 이번엔 능력별로 뒷자리부터 자리를 지정해준다. 그러자 버스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졌다. 버스가 길을 헤맸고 버스가 자주 멈춰 섰다. 뒤에 앉은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왜 이것밖에 못해! 여기가 아니잖아!’ 앞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주눅이 들고 다시 뒷자리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자리는 다시 바뀌고 뒤에 앉은 사람들은 이제 정류소에 대한 정보를 못 얻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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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씁쓸했다. 앞좌석과 뒷좌석.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수많은 프로젝트A 버스가 있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교실도 버스, 대학교 강의실도 버스, 회의실도 버스, 아이들의 급식실도 버스, 이성애와 동성애의 버스, 여성과 남성의 버스, 강자와 약자의 버스.

내가 왜 버스에서 서 있기 싫어하는 지 알 것 같았다. 흔들리면서 발붙일 곳 없고 계속 이리저리 치이는 게 무엇을 계속 떠올리게 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계속 이어가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정말 희한하게도, 버스의 내리는 문은 앞좌석과 뒷좌석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젝트A 버스가 사고가 났을 때 누가 가장 먼저 내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다양한 상황들이 있긴 하겠지만, 내릴 때만큼은 공평한 느낌이었다. 앞좌석은 빠른 만큼 위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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