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현의 웃는한국]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밥그릇 뺐긴 개가 문다

1. 한 편의 납량 영화

[오피니언타임스=서용현, Jose] 우린 지난 몇달간 한 편의 ‘납량영화’를 보았다. 김정은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는 공갈을 재탕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괌을 폭격할 수 있다고 대응했다. ‘8월 위기설’이라고 불린 마카로니 웨스턴이다. 결국 유야무야되었지만 김정은이나 트럼프나 엄청난 액션 스타(action star)들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선중앙TV, 픽사베이

김정은은 진짜 미국을 도발하려 했을까? 물론 아니다. 미국의 막강한 공군력, 해군력에 관한 자료와 동영상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정은이 그것도 안 보았겠는가? 그는 미군의 레이다가 자신의 거처를 정확하게 폭격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 것이다. B-52가 뜨면 “평양이 불바다”가 된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는 국방비를 과용하는 미군이 국내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여차하면 전쟁을 통해 ‘밥값’을 하려 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러면 자신은 이락의 사담 후세인이나 유고의 밀로셰비치 꼴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을 ‘미친 놈’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절대 미치지 않았다. 그는 합리적이다. (뉴욕 타임스 / “North Korea, far from crazy, is all too rational.” by Max Fisher (New York Times) Sept.10, 2016)

김정은은 왜 이런 모험을 했을까? 답은 당연히 <권력 유지>다. 그는 정권유지에 모든 것을 걸고 있을 것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한가? 북한에 적절한 수준의 ‘긴장’, 즉 ‘공포와 증오’를 유지하는 것이 긴요할 것이다. ‘포퓰리즘’도 필요할 것이다. 국민들의 사기(bravado)와 자신감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탈북자가 늘고 있는 오늘에 이것은 특히 중요하다. 이번 김정은의 연기(演技)는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위기 조성이 지나치면 미국과의 대결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은 ‘왕의 남자’ 식의 곡예(벼랑 끝 외교)를 한 것이다. 대단한 배우다.

미국은 어떤가? 정말 북한 ICBM 몇 개가 미국을 강타한다고 믿고 있을까? 인터셉트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나 북한은 미국의 보수우익에게 좋은 ‘밥그릇’을 제공한 것이 아닐까? 군부, 무기업체에게 예산 증액의 명분을 주고... 북한의 위협/전쟁 가능성에 대해 헷갈리는 말을 하여 불안을 증폭시키고... 트럼프는 마초(macho)성 발언으로 인기를 얻고... 엄청난 배우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이 이러한 쇼(show)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쇼가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는 한, ‘정권유지’가 걸린 생사의 도박이 아님을 참가 선수들이 모두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쌍방은 치열하게 상대를 비난하면서 긴장과 불안의 유지를 위해 공조(共助)하고, 사실상 서로에게 밥그릇을 제공한 것이 아닐까? 즉, <오월동주(吳越同舟)>가 아니었을까?

©픽사베이

2. 진짜 위기는 나중에 온다

짖는 개는 싸우지 않는다. 그러나 밥그릇을 뺐긴 개는 싸운다. 북한과 미국 지도자의 ‘정권유지’에 문제가 생길 때 한반도에 진정한 전쟁 위기가 올 수 있다. 김정은이 내란의 위기에 몰리면 (그 아까운) 핵무기의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죠지 부시가 재선을 위해 이락에 침공했듯이 트럼프도 밥그릇이 걸린 정치적 위기에 놓이게 되면 상황타개의 충동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 그 때가 진짜 위기다. 

우리가 동족상잔의 전쟁 재발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것뿐이라고 본다. 이런 평화 분위기 속에서는 북한이든 미국이든 전쟁을 시동시킬 명분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평화 분위기’를 가져오는가? 필자는 평화협정 등 정치적 레토릭(rhetoric)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는 이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 지를 누차 보여주었다. 역사의 새로운 흐름은 ‘EU 스타일’이다. 즉, 비정치적 교류다. 
    
3. 대하영화로 가자

필자는 김정은이 미군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것이 ‘해빙의 물결’이라고 본다. 북한정권은 ‘원조’ 기타 교류협력을 무서워한다. 원조물자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고 주더라도 북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좋은 쌀이 갑자기 어디에서 왔는지를. 그렇다고 북한은 안 받기도 곤란하다.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무조건 교류하자. ‘인도적 협력’이라면서 조건이나 정치적 꼬리표를 달지 말자.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긴장을 완화하고, 거리를 좁히고,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

대북관계에서 가장 자연스럽고도 시급한 해빙의 물결은 ‘남북 이산가족상봉’이다. 이산가족이 벌써 절반 가까이 사망했다. 2015년 현재 50% 이상이 80세 이상이다. 시간이 없다. 100명쯤이 연 1-2회 상봉하는 것으로는 대다수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못 보고 눈을 감을 것이다. ‘매달’ 300명 이상씩 상봉케 하자고 북측에 제의하자. 대신 개최장소 등 여타 조건에 있어서는 북측 입장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하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북측 희망대로 재개하겠다고 하자. 이산가족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들의 소원을 풀어드리는 것이 역사의 한(恨)을 푸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통일이라는 대하영화(大河映畵)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자. 이 대하영화에서는 우리가 주연이 되자.  민족의 역사를 다시 쓰자. ‘우리의 역사’를 만들자.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반기문 전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중.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