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 기시감(旣視感)이다. 이를 무의식적 착각이나 기억의 오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진짜인 경우도 있다. 영화에서도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장면이나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있다. 이를 알아채는 순간 그 영화는 뻔한 작품으로 추락하고 만다. 역사를 왜곡하고, 어설프게 정리하면서 활극을 펼친 <군함도>가 그렇다.

어디 영화에서만 그런가. ‘살충제 계란’ 파동에서의 기시감 역시 오류나 착각이 아닌 분명 이미(기), 본(시) 것들이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도 몇 번이나 있었다. 메르스 사태와 구제역, 조류독감으로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정부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문제가 불거지자, 국민들이 “그럼 우리 계란은 괜찮은가”라는 불안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번에도 당국은 처음에는“우리는 안전하다”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러나 곧바로 거짓말임이 드러나자, 전수조사결과만 믿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픽사베이

익숙한 모습의 반복

사태가 불거지고 난 후의 모습도 과거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해 담당부처(농림축산부와 식약처)간 ‘살충제 계란’ 생산 농가숫자가 달랐을 뿐만 아니라, 정확하지도 않았다. 당국은 사태를 축소하기에 급급했고, 늑장대처로 이미 오염된 계란을 국민들이 먹어버린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놓고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누그러뜨린다면서 일주일 만에 한다는 말이“먹어도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였다.

이런 일이 터지기만 하면 제도개선부터 약방의 감초처럼 들고 나오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이번 살충제 계란 파동은 분명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무분별하게 남발된 친환경인증제, 그것을 담당하는‘농피아’들의 부실한 관리 감독이 사태를 키운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하는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회피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에 이미 살충제 달걀을 적발하고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지난 정부에 잘못을 떠넘기는 듯한 인상만 준다. 만약 그때라도 제대로 대처하고 예방책을 강력히 강구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피할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징후라는 것이 있다. 이를 무시한 결과가 어떤 사태를 야기하는지는 ‘세월호 참사’가 말해주고 있다.

일이 벌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에 대처하는 공직자들의 모습은 새 정부가 강조하는‘국민에게 진정으로 봉사하고, 국민을 최우선을 하는 나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단골메뉴로 언론이 제기하는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 몸을 던져 사태를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정부와 공직사회의 ‘기시감’만 느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6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메르스 대응 추진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감명과 오염,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가 최우선

메르스나 구제역, 조류독감 같은 사람과 동물의 감염병, 이번 ‘살충제 계란’처럼 대량 오염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제공과 신속한 조기 대처이다. 그래야 국민들은 막연한 불안감을 갖지 않고, 정부를 신뢰하고, 피해를 최소화 할수 있기 때문이다.

재발방지를 위한 장·단기 대책은 일단 사태를 수습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살충제 계란’파동이 터지자마자 문재인 대통령이 숨기지 말고 즉각 국민에 모든 상황을 알리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확한 정보 파악과 신속한 공개야말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지름길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거짓말이나 늑장을 부리다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뼈저리게 경험했다.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할 일이 있으면 터놓고 말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정부의 모습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지 겨우 100일이 지나 아직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실수와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식약처의 정책이나 업무가 워낙 광범위해 허술한 친환경인증 허가나 관리감독 같은 제도적 문제점까지 아직 점검하고 개선하기에는 무리란 것도 인정한다. ‘살충제 계란’파동이 지난 정부의 나태와 방만에서 비롯된 것이란 지적도 맞다.

그렇다고 사태의 책임을 미루는 듯한, 살충제 오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국민들이 정부를 믿지 못해 아예 계란을 먹지 않고, 애꿎은 축산 농가들까지 눈덩이 같은 피해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있다. ©청와대

정부도, 공직자도 ‘상투’에서 벗어나야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인한 국민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는 길은 책임감, 전문성을 가지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어렵지도 않다. 메르스사태에서 보여준 지난 정부의 어리석음을 반면교사로 삼아 반대로 하면 된다.

새 정부 첫 업무보고 자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여기저기 눈치 보지 말고,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면 소신 있게 일을 하라는 주문일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그렇게 해야 할 사람은 부처의 책임자들인 장차관들이다. 그들이 자리를 잃을까 윗선 눈치를 보거나, 낙하산이라고 국민 눈치 무시할 때 공직사회는 책임회피, 복지부동, 늑장부리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제도개선이나 들먹이다 잠잠해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책임분산용으로 쓸데없이 TF나 만들고, 국회의 비협조 탓이나 하고, 과거의 낡은 보고서나 다시 들고 나오는 ‘시늉’만 하고 말 것이다.

‘상투’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실수를 인정할 때, 소통도 이루어진다. ‘안전’에 관한한 우리 국민은 너무나 많은 불행한 ‘기시감’을 경험했다.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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