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오피니언타임스=이호준]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혼밥’이나 ‘혼술’이라는 게 있지요. 무슨 소린지 궁금한 분들도 있겠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꽤 오래 전부터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말 그대로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신다는 뜻인데요. 가정을 이루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세태를 반영한 것이겠지요.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요. 무엇보다 누구의 삶에도 관여하지 않고, 또 그 누구도 내 삶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선언이 아닐까 해석해 봅니다.

하지만 제 세대쯤 되는 이들은 여전히 ‘혼밥’이나 ‘혼술’이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단어가 낯선 게 아니라, 혼자 무엇을 먹는 행위 자체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여행을 할 때 가장 난감했던 게 혼자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개인용 탁자를 두는 음식점이 있을 정도로 혼자 먹는 것이 일반화됐지만, 그때만 해도 동행 없이 음식점에 들어가려면 괜스레 쭈뼛거리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라도 밥은 먹어야 했습니다. 그게 익숙해지다 보니 지금은 어느 집에 들어가면 환영을 받을지 냉대를 받을지, 어떤 음식을 시키는 게 좋을지 정도는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혼자 들어갔을 때 주인의 태도를 보면 그 지역의 인심까지 알 수 있습니다. 어디쯤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객지를 떠돌던 끝에 삼겹살이 간절하게 먹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름 괜찮겠다 싶은 집에 들어가서 눈치껏 삼겹살 2인분을 시켰는데 “우리는 3인분부터 팝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머쓱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북 부안의 곰소젓갈단지에 갔을 때는 젓갈백반이 꼭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시켜먹기에는 적절치 않은 음식이었습니다. 1인용 상이라도 같은 숫자, 같은 양의 젓갈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한집에 들어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웃는 얼굴로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요.

막상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놔두고 엉뚱한 사연만 늘어놓았습니다. 어느 도시를 지나다가 저녁 무렵이 돼서 허름한 음식점에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경험상 혼자 밥을 먹기에 적당한 집이라고 판단해서 들어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조금 놀라고 말았습니다. 언뜻 눈에 들어온 좌석은 모두 다섯 개. 그중에 딱 한 좌석만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고 나머지는 모두 혼자였습니다. 세상을 다닌다고 다녀봤지만 그렇게 ‘쓸쓸한’ 밥집 풍경은 처음이었습니다.

마침 하나 남은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한 뒤, 허름한 음식점에 고단한 하루를 맡긴 사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자의 본능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제육볶음을 앞에 놓고 있는 허름한 복색의 노인이었습니다. 몸이 많이 불편한 듯, 손이 자꾸 떨려서 밥 한 술을 입에 넣는 과정이 최소한 3분은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의식을 치르듯 차례차례 해내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소주도 한 병 있었는데, 역시 경건한 태도로 한잔씩 따라 마셨습니다.

왠지 근로자보다는 노동자라는 단어가 훨씬 잘 어울릴 것 같은 30대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늦더위에 지쳤는지 콩국수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고된 하루를 마치고 안식처에 들어서기라도 한 듯, 편안한 얼굴로 국수를 먹었습니다. 책가방을 옆에 두고 식사를 하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도 있었습니다. 얼굴에 짙게 그려져 있던 피곤이 밥 한 술 먹을 때마다 조금씩 지워져갔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두 사람은 술도 한잔 곁들이는 중이었습니다. 술이라고 해봐야 고작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있었습니다. 따라놓은 맥주는 김이 빠진지 오래였지만 대화는 정다워 보였습니다.

그 풍경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주인아주머니였습니다. 60대 중반쯤 되었을까? 주방일과 서빙을 혼자 맡아서 하고 있는 이분은 동작이 얼마나 빠른지 자칫 한눈을 팔면 동선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날라주는 것이 주된 일이었지만 또 하나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잠깐 틈만 나면 테이블마다 다니며 뭔가 하나씩 챙겨줬습니다. 손을 떨며 식사를 하는 노인 옆에 서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콩국수를 먹는 ‘노동자’ 옆에 가서는 밥을 한 술이라도 뜨라고 자꾸 권했습니다. 밀가루면 먹으면 기운을 못 쓴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수험생’에게는 자주 반찬을 더 갖다 줬습니다. 잘 먹어야 공부도 잘 된다는 것이었지요.

저는 그 광경을 슬금슬금 보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주인아주머니는 제게 와서도 빈 반찬그릇을 채워주고 밥을 한 공기 더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스쳐가는 나그네에게도, 날마다 만나는 손님을 대하듯 스스럼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제대로 분위기 파악이 됐습니다. 마치 깨달음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먹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아내가 되고 누구에게는 누님이 되고 누구에게는 어머니가 되는 이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 풍경 속에서는 ‘혼밥’도 ‘혼술’도 의미를 잃었습니다. 조금도 쓸쓸하지 않았으니까요. 가난한 이들은 그렇게 나누며 살고 있었습니다.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가장 행복한 저녁식사였습니다.

 이호준

 시인·여행작가·에세이스트 

 저서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문명의 고향 티크리스 강을 걷다>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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