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의 촌철살인]

[오피니언타임스=김철웅] 오래전 신문사 국제부 데스크로 있을 때 ‘왜 반미인가’란 칼럼을 썼는데, 거기에서 미국을 이렇게 묘사했다. “신문사 국제부 데스크 입장에서 볼 때 주요 국제 뉴스의 약 80%가 관련된 나라, 그래서 신문 국제면이 ‘아름다울 美’자 제목으로 도배되지 않도록 고심하게 만드는 나라가 미국이다. 언제부턴지 기사 속에 ‘부시 미 대통령, 미 국무부’ 등 ‘국’자를 빼고 표기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다. (참고로 ‘블레어 영 총리, 중 외교부’ 등으로는 쓰지 않는다)”

짐작했겠지만 아들 부시가 ‘미 대통령’을 지낼 때 쓴 글이다. 그 사이 오바마, 트럼프로 정권이 바뀌었고 국제정세도 많이 변했다. 이젠 국제면이 ‘아름다울 美’자 제목으로 도배되는 것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미국을 ‘미(美)’로 줄여 부르는 관행이다.

©픽사베이

최근 언론 보도를 살펴보자.

“‘애드미럴’, ‘제너럴’. 지난 17일 오후 8시 30분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과 첫 통화에서 서로를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기사 시작부터 ‘미국 국방부 장관’을 자연스럽게 ‘미 국방부 장관’이라고 부른다.

“대신 미 대사관 앞에서 풍물놀이를 하고 호루라기·부부젤라 등을 불며 집회를 했다.” -오로지 미국 대사관만 ‘미 대사관’으로 불린다. 가령 ‘영 대사관, 중 대사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신문, 통신, 방송에서 이런 사례들은 수도 없이 많다. “롭 매닝 미 국방부 신임 대변인은…” “존 하이튼 미 전략사령관을 접견하고…” “미 NBC는 9일(현지시간) 괌의 앤더슨 미 공군기지에서 출격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7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 전략에 따라 미 정부는 북한이 지난달 미 서부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마이크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3일…”

언론이 축약적 표현을 쓰는 건 뭐랄 일이 아니다. 특히 제목에서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기사 본문에서까지 미국만 유독 ‘미’로 줄여 부르는 버릇이다. 이건 좀 이상하다. 아까 말했듯 같은 나라 ‘국’자로 끝나는 나라, 즉 영국이나 중국, 태국에 대해 ‘영 총리, 중 외교부, 태 대사관’이라고 하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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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메리카를 미국이라고 부르게 된 건 조선 말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중국은 청나라 때 아메리카를 美國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美가 ‘메이’로 발음돼 원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걸 음차(音借)라고 한다. 반면 일본은 米國으로 쌀 ‘미’자를 썼다. 이는 米의 훈독인 ‘고메’의 ‘메’를 취해 굳어진 것이라 한다. 이에 따라 우리도 일제 강점기에는 미국의 한자를 米國으로 표기하다 해방 뒤 다시 美國으로 돌아왔다.

한·중·일 세 나라 언론이 미국이란 나라를 부르는 방식도 관심을 끈다. 재미있는 건 미국을 米國으로 쓰는 일본 언론의 행태가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미 정부’나 ‘트럼프 미 대통령’ 등 줄인 표현을 즐겨 쓴다. 반면 중국 언론은 美國을 대부분 본래 이름대로 부르고 있다. ‘미군’ 정도만 줄여 쓴다. 그렇다면 우리 방식이 일본식이라는 얘긴데, 그다지 유쾌한 관행은 아니다.

미국을 편하게 ‘미’로 줄여 부르든 말든 그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 이건 정색하고 제기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명(名)과 실(實)의 혼란을 지적한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운위하기도 좀 그렇다. 하지만 미국을 줄여 부르는 우리의 관행이 어떤 이상 심리의 소산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미국만은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특별 대접’을 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그건 과거 흑백TV 시절 미제 전쟁드라마 ‘전투(Combat)’를 보며 내면화한 미국·미군에 대한 막연한 ‘우리 편 의식’, 그리고 전적인 신뢰와 상통하는 심리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국제부장,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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