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사람이 떠난다.

일순간 그 흔적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그가 머물렀던 시간만큼 빈자리는 주변을 괴롭힌다. 당사자는 가슴을 친다. 회사에서는 이를 두고 이별이라 하지 않고, 퇴사라 칭한다. 누군가 퇴사 따위는 이별과 비교할 수 없는 가벼운 거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장인에게 퇴사는 제 살을 깎아먹는 고뇌가 낳은 용감한 자기사랑이다. 아니, 무모한 자기학대다. 사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이다.

©픽사베이

보금자리를 박찬 뒤 바라본 세상은 은근히 고요하다. 평화롭다 생각하여 한동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밀린 잠도 자고, TV를 뒤적거리며 맥주 캔을 벌컥거린다. 어느 날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다. 손발이 지리고 휴대폰을 쳐다볼 용기도 없다. 세상은 고요했던 것이 아니라 나를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소속 딱지를 달지 못한 인간은 자아를 강제로 박탈당한다. 소리 높여 꿈을 외쳐보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돌아온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어머니 뿐이다. 그마저도 뿌리치는 순간, 근본 없는 놈으로 뿌리 뽑힌다. 엉엉 울어봤자 소용없다. 지나가던 개도 모른 척 바삐 지나갈 뿐이다.

문을 두드려본다. 수많은 곳에서 손짓하지만 내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딱지를 달아야하기에 용모를 단정히 하고 가면의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다음 주부터 새로운 흔적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떠나겠지.

이렇게 돌고 돈다. 이별은 그 끝이 결혼이지만, 퇴사의 끝은 여전히 퇴사이다. 이것이 직장인의 숙명이다.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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