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들꽃여행] 꽃이름에 숨어있는 식민 지배의 역사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금강초롱꽃이 청사초롱 불 밝히듯 가을의 길목을 환히 밝히고 있다. ©김인철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 Nakai

[오피니언타임스=김인철] 눈 깜박하는 사이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폭염과 가뭄으로 전국의 저수지가 말라간다고, 연이은 폭우로 물난리가 났다고 야단야단하던 여름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아침저녁 찬바람이 부는 게 가을이 시작되었음을 실감케 합니다. 높은 산 깊은 계곡에선 ‘가을의 전령’ 금강초롱꽃이 청사초롱 불 밝히듯 환하게 피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 가을이 시작되었음을 만천하에 선언합니다. 아니, 설악산 대청봉 등 백두대간의 등줄기 곳곳에선 여름의 절정기인 8월 중순부터 하나둘 피어나, 제아무리 폭염이 석 달 열흘 갈 듯이 기승을 부려도 이미 가을이 코앞에 다가와 있음을 일러주었습니다.

‘가을의 전령’ 금강초롱꽃이 어느덧 푸르러진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피어있다. ©김인철

식물학자는 물론 애써 야생화를 찾아다니는 동호인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이름을 알 만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야생화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금강초롱꽃이라고 답한다 해도 이의를 다는 이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토록 친숙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금강초롱꽃은 우리에게 산나물로도 친숙한 더덕과 도라지는 물론 만삼과 소경불알, 모시대, 잔대 등과 마찬가지로 종 모양의 꽃을 피우는 초롱꽃과의 한 식물입니다.

낙석 사고로 현재는 출입이 통제된 남설악 흘림골 계곡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 금강초롱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다. ©김인철

그런데 우리에게는 ‘민족의 성산’이라고 일컫는 백두산에 비견할 만큼 각별하게 여기는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금강’이란 접두어가 붙었습니다. 종 모양의 꽃이 다른 초롱꽃에 비해 크고 잘생겼을 뿐 아니라 꽃 색도 진한 청자색으로 가장 곱습니다. 게다가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확인돼 한국의 특산식물로 인정받고 있으니 ‘국가대표 야생화’라는 말이 과언이 아닌 셈이지요. 금강초롱꽃은 다시 금강초롱꽃과 흰금강초롱꽃, 검산초롱꽃 등 3개 종으로 나뉘는데, 셋 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습니다.

꽃 색이 흰색에 가까운 금강초롱꽃. 금강초롱꽃에는 꽃 색이 청자색과 흰색인 것, 그리고 꽃받침이 넓은 검산초롱꽃 등 3개 종이 있다. ©김인철

그러나 ‘우리 꽃’ 금강초롱꽃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일본 제국주의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가 뚜렷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금강초롱꽃의 학명에 일본인 이름이 두 개나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그 하나가 경술국치와 명성황후 시해의 주역이자 일본의 초대 조선 주재 공사를 지낸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이고, 또 하나가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입니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 식물 연구를 선점했던 나카이가 1911년 세계적인 특산종 금강초롱꽃을 발견하고선, 자신을 적극 후원한 하나부사의 공을 기린다며 학명의 속명에 하나부사(Hanabusaya)를 가져다 붙이고 맨 뒤엔 자신의 이름 나카이(Nakai)를 쓴 것이지요.

화악산 등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 강원도 일대 여러 산에도 비교적 많은 개체 수의 금강초롱꽃이 자생하고 있다. ©김인철

빛을 받으면 붉은, 또는 보라색 빛을 발하는 금강초롱꽃은 처음 발견된 금강산은 물론 설악산과 태백산, 오대산, 대암산, 도솔산, 용문산, 광덕산, 명지산, 복주산 등 경기도와 강원도의 유명한 산에 두루 자생합니다. 특히 경기도 가평 화악산은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진한 청자색 금강초롱꽃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자생지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김인철

 야생화 칼럼니스트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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