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문화로 만나는 세상]

[오피니언타임스=이대현] ‘탁현민’과는 일면식도 없다. 신문사 문화부 기자시절 취재원으로 그를 만난 적도 없고, 솔직히 그의 존재도 잘 몰랐다. 그러니 개인적인 호불호가 없다.

원래 기자(출신)란 칭찬에 인색하고, 비판은 당연한 권리인양 여기는 직업이니 그런 방식으로 말하자면 탁현민이 과거에 쓴 책은 이류다. 인간 본능이나 심리를 날카롭게 갈파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대를 앞서가거나 도발적인 인식과 가치관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책은 개인적 매명욕(賣名慾)에 남성들의 마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출판사의 지극히 상업적 계산이 깔린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마음설명서>란 제목부터가 그렇다. 탁현민이 지었는지, 출판사가 제안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이런 제목의 책은 반드시 ‘성’을, 그것도 선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 상업적 도발은 여성들을 모욕하기 십상이다. 탁현민도 그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가 정말 그런 가치관과 심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심이든, 계산된 것이든 글은 ‘그의 얼굴’이니까. 그리고 그 얼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 허구니, 과장이니 하면서 책임을 안 지려는 것은 비겁하고 억지다. 글과 글쓰기가 무섭고도 엄정한 이유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가볍게 여기다가는 날카로운 창이 된 그 글에 찔리곤 한다. 탁현민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과거와 현재, 잘못과 반성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지금은 아니다’라는 뜻이 아니다. 그의 마음을 정확히 알 길이 없으니, 섣불리 단정하기도 어렵다. 다만 그 시간 이후에는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반대의 시간을 오래 가졌다는 것이다. 그 역시 10년 전의 책처럼 진정한 자성(自省)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또다른 자신의 욕심과 계산에는 나온 것인지는 그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의 글이 그랬듯, 그의 ‘반성’에 대한 평가 역시 중요하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과거는 소중히 하면서, 현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속죄와 참회, 용서와 관용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일이다. 펑생 ‘낙인(烙印)’을 찍어버리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그의 과거만을 고집스럽게 잡고 늘어지고 있다. 거기에는 당연히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가 야당시절부터 오랜 시간 함께 한 대통령의 ‘심복’이라는 사실, 시대를 읽는 뛰어난 기획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섬세한 감각으로 오늘의 대통령을 있게 했고, 앞으로도 대통령의 생각과 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전하는 각종 이벤트를 맡을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야당으로서는 그런 인물이 청와대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싫을 수밖에 없다. 그가 기획한 ‘대국민보고대회’를 “그들만의 잔치, 예능쇼, 천박한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당도 박근혜 정부시절, 대통령의 이벤트들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했다. 물론 그것이 기대에 못 미쳐서, 그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질까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 말대로 그가 대통령 곁에서 ‘천박한 쇼’를 계속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야당은 그렇다고 치자. 그들의 정치적 공세에 갈팡질팡하며 논란을 끌고 가는 정현백 여성부 장관의 언행이야말로 온당치 못해 보인다. 그것이 장관을 하기 위한 국회청문회 통과를 위해 그랬다면 더욱 구차하고, 무모하다. 대통령의 권한인 청와대 비서실 인사에 개입하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적어도 집권당의 각료라면, 아무리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여성부 장관이라 하더라도 그의 ‘과거’보다는 ‘현재’를 봐야하고 또 그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현재’란 탁현민에 대한 대통령의 믿음과 애정이 아니라, 그의 반성과 달라진 모습일 것이다.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대국민보고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있다. 이번 기획은 탁현민 행정관 작품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비선 실세’로 만들지 말아야

지금까지 청와대 행정관을 놓고 이렇게 시끄러운 적이 없었다. 야당의 공세도 전례가 없다. 이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양성평등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고, 공직자 윤리가 더욱 엄격해졌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탁현민에 대한 대통령의 기대와 만족, 그의 역할 때문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문재인 대통령과 국민이 만나는 곳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국정과제보고대회에서 국민을 감동시킨 대통령의 모습 뒤에는 그의 손길이 스며있었다. 대통령의 대기업 총수들과 호프 미팅, 청와대 참모들과 커피타임 등도 그의 솜씨라고 알려져 있다.

하나하나 연출과 기획에 의한 이런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일부에서는 ‘쇼통’이라고 비하하고, 오히려 대통령의 진정성을 훼손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나마 이런 ‘쇼통’조차도 아예 하지 않고 국민과 벽을 쌓고 산 대통령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말하고 있다. 더구나 누구보다 대통령은 아주 만족하고 있으며, ‘100대 국정과제 정책콘서트’는 “아주 산뜻하다”고까지 극찬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그가 어디에 있건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찾을 것이고, 그를 믿을 것이며, 그가 만든 ‘무대’에 설 것이다. 그런 그를 청와대에 두는 것이 어쩌면 가장 안전하고, 분명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일부의 주장처럼 그가 청와대 행사 전반은 물론 나아가 문화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세라면 더 더욱 ‘비선’으로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박근혜 정부가 왜 무너졌으며, 국민들에게 얼마나 치욕과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생각해 보면.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전 한국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저서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外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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