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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양, 의(義)를 세우다[함기수의 중국이야기]
함기수 | 승인 2017.09.12 11:58

[논객닷컴=함기수] 그래도 전에는 자신이 불리해지거나 희생이 따르더라도 끝까지 주군을 위하여 몸 바친 사람의 이름이 언론이나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 행위의 잘잘못은 차치하고라도 소위 의(義)를 지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의(義)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나온다. 근자에 들어 이러한 사례를 보거나 듣기 힘들어졌다는 건 그만큼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서 사는 것이 버거워졌다는 의미일지 모르겠다.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보면 예양(豫讓)이란 이름이 나온다. 그는 전국시대(BC403~BC221) 진(晉)나라 사람으로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를 섬긴 일이 있는데 이 두 사람은 예양을 그다지 예우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예양은 그들을 떠나 지백(智伯)이란 자를 섬기게 되었다. 지백은 진(晉)나라 육경의 한 사람으로 세력이 강성하고 야심만만한 사람이었는데 마침 찾아온 예양을 알아보고 국사(國士)로 예우하였다.

당시 진(晉)나라는 많은 씨족들이 세력을 다투고 있었는데 결국 ‘위(魏), 조(趙), 한(韓)’ 3개 성씨가 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진의 지백이 이들을 공격하게 되는데 도리어 이들 3개 연합국에 패해 나라는 분해되고 지백은 멸족하게 된다. 조(趙)나라 양자(趙襄子)는 이미 죽은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술잔으로 쓰며 과거에 당한 분풀이를 한다.

이때 살아남은 예양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아 지백의 영혼을 달래 주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죄를 저질러 죄수의 몸으로 궁궐로 들어간다. 화장실에서 일하면서 비수를 품고 있다가 조양자를 죽이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암살하려는 자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조양자에게 붙잡히게 된다.

지백을 위해 조양자를 암살하려 한 예양 ©네이버 지식백과

예양은 서슬 퍼런 조양자 앞에서 ‘죽은 주군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 했다’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주위에 있던 자들이 그의 목을 베려고 하자 조양자는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며 풀어주었다. 그러나 예양은 여기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다시 몸에 옻칠을 한 문둥이로 분장하였다. 숯가루를 먹어 목소리까지 바꾸어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한 채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걸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양자의 목숨을 노린다. 그의 아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으나 한 친구가 알아보고 울면서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재능이라면 조양자의 신하가 되어 쉽게 기회를 노릴 것이지 왜 이렇게 자신을 학대하면서 힘든 길을 가려는가’ 예양의 대답은 처연했다. ‘그 방법이 쉬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일단 신하로 약속해 놓고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죽인다는 것은 두 마음을 가지고 주군을 모시는 것이 되어 차마 부끄러워 할 수가 없네’

의(義)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하지만, 예양의 이 말에서 사람의 도리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된다. 지독히도 투박하고 어찌보면 한 줌의 융통성까지 없는 고집스러움에 가슴이 저린다.

결국 그는 다리 위를 지나던 조양자를 살해하기 위해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다시 체포된다. 조양자는 예양의 진심을 알았으되 더 이상 용서해주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양은 자신이 지난번 암살하려 했을 때 용서해준 일에 감사하면서 조양자의 옷이라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게 해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한다. 조양자는 그의 의로운 기상에 감탄하고, 사람을 시켜 자기 옷을 예양에게 가져다주도록 했다. 예양은 칼을 뽑아 세 번을 뛰어올라 그 옷을 베어버리고는 칼에 엎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죽던 날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모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이때 예양이 남긴 말은 지금까지 긴 여운으로 남아 전해진다.
士爲知己者 死, 女爲說己者 容 (사위지기자 사, 여위열기자 용)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

설마 예양 같은 사람을 바랄까마는 그 흔적이라도 느낄 수 있는 모습들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의(義)가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삶이 팍팍해 지고 그만치 세태가 각박해 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나마 고전에서라도 이러한 사례를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함기수

 글로벌 디렉션 대표

 경영학 박사

 전 SK네트웍스 홍보팀장·중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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