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MBC와 KBS가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파업에 들어갔다. 언론 자유와 공영방송의 독립을 위함이다. 이에 KBS 고대영 사장, MBC 김장겸 사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이들이 아닌, 파업을 하든 말든, 정상화가 되든 말든 어차피 공영방송은 안 볼 거라는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파업 끝에 공영방송 정상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시청자들이 떠난 공영방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영방송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버리게 된 걸까.

지난 4일 MBC 기자와 PD 등이 총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공영방송 내우외환(內憂外患)
내우(內憂) -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언론 장악’ 시도는 차근차근 이뤄졌다. 정권에 유리한 보도는 권장했고, 비판적인 보도는 거부당했다. 이에 저항한 언론인들이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해고당하는 징계를 감수해야 했다.

KBS는 2008년 이병순 사장 취임과 함께 보도국, 탐사보도팀 및 <시사투나잇> 등 시사 프로그램들과 부서를 폐지하며 재갈을 물렸다. 이후 언론특보 출신 김인규 사장이 2009년에 취임하고, 2012년에는 길환영 사장이 취임하면서 징계와 부당전보, 감봉 등이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시곤 보도국장은 회의석상에서 거리낌 없이 ‘세월호는 교통사고’라는 망언을 내뱉고, 길환영 사장의 보도 개입이 있었다는 폭로까지 이어지며 공영방송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MBC도 마찬가지다. <PD수첩>의 이춘근 PD는 긴급 체포되고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는 정부 정책을 비판한 클로징 멘트를 빌미로 하차했다. 현재 JTBC 보도부문 사장인 손석희 아나운서 또한 2009년에 물러났다. 방문진 이사들의 압박에 엄기영 사장 또한 사퇴하고 만다. 김재철 사장은 취임 이후 200여명의 PD, 기자, 아나운서를 해고 및 징계하고, 심지어 스케이트장 관리 등 한직으로 내몰았다. 결국 ‘정권의 나팔수’ 역할에 안주하던 MBC는 세월호 당시 목포 MBC에서 전원 구조가 아님을 알렸음에도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보낼 만큼 허술해졌다.

영화 <공범자들>은 이 과정을 훑는다. 공영방송이, 언론이 어떻게 망가졌고 어떻게 저항했고 어떻게 버텨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도 파업에 동참하며 “무한도전이 멈춘 이유, MBC가 총파업에 나선 이유는 영화 공범자들을 보시면 잘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서입니다” 같은 뻔한 말로는 이 긴긴 여정을 설명하기 힘들었으리라.

외환(外患) - 플랫폼 변화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로 인해 관심이 줄어든 면도 있지만 공영방송은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사를 보는 방식이 모바일과 SNS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TV뉴스, 종이 신문은 이전에 비해 영향력이 급감했다. 이전에는 어떤 기사가 뉴스 첫 꼭지로, 혹은 1면에 나오는지가 중요했지만, TV뉴스와 종이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인터넷에서는 하나의 기사, 하나의 소식을 따로 접하게 된다. 그 기사가 종이신문 몇 쪽에 있는지, 뉴스 몇 번째 꼭지로 나왔는지, 글씨 크기가 작았는지 컸는지는 관심 밖이다. 직접 언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사를 보지 않는 한 종이신문처럼 표현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포털 사이트 메인에 실리는 기사, 혹은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되는 기사가 종이신문 1면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갖기도 한다.

뉴미디어 생태계는 기존 언론이 갖고 있던 권력을 약화시켰고 TV뉴스와 종이신문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공영방송은 신뢰뿐 아니라 영향력도 잃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총파업 5일째를 맞은 9월8일 KBS 직원들이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라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KBS 새노조

공정·심층보도를 통한 견제와 경쟁만이 살 길

누군가에게 ‘배’라는 단어를 제시하고 뭐가 생각났는지 물었다고 치자. 사람의 배, 나무에 열리는 배, 바다에 뜨는 배 등등 다양한 해석이 나올 것이다. 단어가 가진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려면 앞뒤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전체적인 맥락과 함께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언론은 사건에 대한 편향된 입장만을 전달해왔다.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측면들, 이면의 것들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심층취재를 통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정치권력과 독립된 방송이 필요하다.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더라도, 혹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합리적인 의심에 근거한 것이라면 취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송 말이다. 국민들이 사건에 대한 합리적 판단과 비판을 하려면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공영방송 정상화와 언론 독립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까지 공영방송은 너무 많은 실수를 해왔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오죽하면 공영방송 필요 없고 JTBC 보면 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로도 JTBC가 방송 신뢰도에서 독보적 1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것도 큰 격차로 말이다. 물론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에서 손석희 보도 담당 사장과 JTBC의 활약은 대단했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끝없이 취재와 보도를 이어나가는 게이트 키핑은 다른 언론사에서 보여주지 못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언론도 권력이다. JBTC만 믿고 있을 순 없다. 당연한 듯 보이는 팩트도 이중 삼중으로 체크하고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영방송이 JTBC와 어께를 나란히 하고 선의의 경쟁과 견제를 함께 해나가야 한다. JTBC 혼자만으로는 안된다. 밉지만 공영방송이 꼭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만 시민들이 합리적인 판단을 근거로 사회에 참여하고 더 나아가 진일보 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공영방송 파업이 사장을 바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국민의 신뢰와 관심을 회복하는 것까지 나아가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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