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철의 석탑 그늘에서]

[오피니언타임스=서동철] 우리 사회 각 분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발전 속도가 크게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언론 분야도 일정 부분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문화 분야의 언론만큼은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저 물리적으로 문화 분야를 다룬 신문이나 방송의 지면이나 시간이 늘어났다고 발전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신문이나 방송같은 전통적 매체의 비중이 줄어드는 대신 인터넷과 SNS가 맹위를 떨치는 시대다. 하지만 전통 매체나 새로운 매체를 막론하고 문화 분야 만큼은 양(量)만큼 질(質)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문화 뉴스’의 본질은 가치 평가에 있지만, 현실은 사건 전달이 그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일간 신문의 문화면을 펴보자. 기사의 상당수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등 문화행사가 열리는 것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을 다룬 것도 이런 공연을 하거나 저런 책을 펴냈다는 소식이 대부분이니 메시지는 다르지 않다. 방송의 경우도 매체 특성상 영상이 필요한 만큼 행사 이후에 내보내는 것이 많지만, 역시 내용은 평가보다 소개에 그친다.

문화유산 분야로 범위를 좁힌다면 결코 웃을 수 농담을 섞어, 언론 기능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던 시기는 1970~1980년대다. 특히 ‘문화유산 발굴 보도’는 1980년대보다 1970년대가 더욱 활발했다. 이쯤되면 정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는 짐작을 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엄혹한 권위주의시대일수록 문화유산 발굴 보도가 각광을 받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문화유산들. 언론들은 그 가치를 다루기보다는 사건적 접근에 그치고 있다. ©픽사베이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유신시대에 언론은 박정희 정권의 검열을 받았다. 권력의 구미에 맞지 않는 보도에 대한 통제를 가장 극심하게 받는 매체는 아무래도 일간 신문이었다. 정치나 사회 분야의 민감한 이슈를 다룬 뉴스는 제대로 지면에 반영되지 못했고, 결국 모든 신문의 기사 내용은 닮아갈 수 밖에 없었다.

정치나 사회 뉴스로는 차별화한 지면을 만들 수 없었던 일간 신문들은 상대적으로 간섭을 덜 받는 문화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것은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았지만…. 다양한 장르 가운데서도 문화유산 분야가 가장 치열한 경쟁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막 출토된 금관 사진’으로 대표되는 발굴조사의 특종은 지금도 신문 1면을 장식하고도 남을 큰 뉴스다.

1971년에는 백제의 옛 왕도 공주에서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를 하다 무령왕릉이 발견됐다. 무덤의 주인이 확실한 백제 무덤의 발굴은 온 나라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불과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무령왕릉의 미숙한 발굴은 고고학계에는 반성의 계기가 됐다. 더불어 당시의 무리한 취재 경쟁 역시 언론계에 같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경주 종합개발 계획으로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을 구성함에 따라 신라지역에서도 발굴 성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1973년의 천마총과 황남대총 발굴은 특기할만 하다. 제155호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천마총에서는 이름처럼 천마도가 나왔고, 제98호분이었던 황남대총에서는 더욱 화려한 유물이 나왔다. 도하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한 것은 물론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전화를 하려면 교환원을 거쳐야 했던 시절이다. 당시 전화 교환원의 환심을 사서 다른 신문사의 특종 기사를 빼돌렸다는 취재 뒷이야기는 무용담처럼 떠돌기도 한다. 일련의 발굴조사가 역사의 복원과 고고학 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의 역사 복원, 특히 ‘호국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복원의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도 당시의 취재 경쟁은 철저하게 문화적이지 않은 사건적 접근이었다.

문화유산에 대한 사건적 접근은 이후에도 그치지 않아 2008년 숭례문 화재 때 절정을 이루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부실공사로 숭례문이 마치 무너지기 직전인 것처럼 보도했다. 필자 역시 요즘 당당한 모습의 숭례문 곁을 지날 때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반성한다.

최근에도 문화유산을 다룬 일간 신문의 뉴스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룬 기사보다 ‘문화유산에 얽힌 사건’을 다룬 기사가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문화유산의 부실한 보존이나 해외 반출 문화재의 문제점을 다룬 기사가 뉴스 목록에서 빠지는 날은 많지 않다.

국보 1호 숭례문이 5년3개월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2013년5월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청와대

물론 그런 뉴스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문화가 발전하려면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룬 기사와 ‘문화유산의 보존’을 다룬 기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문화 뉴스를 가치 측면에서 다룰 기자가 거의 없다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1970~1980년대 각 일간 신문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할 문화유산 전문기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이 분야 전문기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합쳐도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각종 언론 관련 세미나에서는 오늘도 기자의 전문성 강화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지만, 정작 언론계에서는 마이동풍인 것이 현실이다.

최근의 문화유산 보도에서는 새로운 이상(異常) 현상도 보인다. 한결같이 숨어있던 국보급, 보물급 유물이 새롭게 발굴됐다는 뉴스다. 특히 고려불화를 비롯한 서화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보도된 문화유산이 가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보급’이나 ‘보물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언론에 ‘출연’한 유물은 값이 뻥튀기되어 시장에 나오곤 한다.

골동품 업자들의 농간에 언론이 놀아나고 있다. 어이없는 골동품 유통 구조에 미술사학계의 중진 교수들이 ‘바람잡이’로 끼어있는 모습을 보면 측은하기만 하다. 이들은 심지어 이 언론사 저 언론사로 다니며 ‘특종 경쟁’을 부추기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1970~1980년대 문화 언론이 정치에 놀아났다면, 오늘날에는 경제라고 부를 것도 없는 돈에 놀아나고 있다.

신문은 예전에는 그저 신문이었지만 이제는 종이 신문이나 인터넷 신문으로 구별해 불러야 한다. 방송도 공중파니 케이블이니, ‘팟캐스트’니 하고 구분해야 하는 세상이다. 종이 신문이나 공중파 방송은 그동안 ‘낡은 매체’가 되어 그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속보에는 경쟁력이 없는 종이 신문이고 공중파 방송이다. 앞으로도 최소한의 영향력을 가지려면 가치 평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화 뉴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려주는 매체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가치를 판단해 생각할 ‘꺼리’를 제공해 주는 언론은 오늘날에도 거의 없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말하는 언론이 완전히 공백상태인 지금이 오히려 신문과 방송에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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