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쑈사이어티]

[오피니언타임스=이성훈] 얼마 전, 한 언론사가 올린 소셜 영상이 화제가 됐다. 지하철 경찰대가 이른바 ‘몰카범’을 현장에서 체포하는 영상인데, 정작 문제가 된 것은 범인이 아니라 경찰관의 태도였다.

[경향신문] ‘몰카범 검거 1위’ 월곡지구대 ‘투캅스’의 몰카범 검거 현장 동행 ©유튜브

영상 속 경찰관은 “남자가 실수를 했으면 반성하라”, “남자답지 못하다”며 범인을 면박 주었고, 미란다원칙을 고지하면서 “그렇게 아세요잉”, “목격자가 좀 많아요잉”이라며 장난스런 말투를 썼다. 익살스런 편집방식을 보건대, 제작자 또한 당시 상황에 무감각한 것 같다. 하지만 수천 개의 댓글들은 ‘경찰의 태도가 마치 장난치는 듯하다’, ‘성범죄가 실수? 남자다운 것 이냐?’라며 경찰관과 제작자의 무감각한 성 인식을 지적했다. 불법촬영에 대한 권력기관과 시민들의 온도차가 뚜렷이 드러난 사건이다.

‘몰카 범죄’에 이목이 집중된 것은 지극히 우연히, 최근에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국무회의에서 ‘몰카 범죄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것이 계기였다. 경찰은 부랴부랴 9월을 집중단속기간으로 정해 수사를 강화하고, 언론도 쫓아가듯 보도물을 쏟아냈다. 국회에서는 소형촬영장비의 허가-등록기준을 강화하고 범죄자 처벌수위도 높인 ‘몰카 방지법’이 발의되었고, 정부차원에서 유출된 불법영상들을 추적-삭제해준다는 말도 나온다. 불과 한 달 새 불법촬영에 대한 거의 모든 ‘사후대책’이 마련된 셈이다.

그간 불법촬영 범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무섭게 성장했다. 적발건수가 2011년 1500건에서 2016년에는 7600건을 넘어섬으로써 불과 5년새 5배가 넘게 증가했다. 또한 그 수법도 교묘해져서 담뱃갑, 볼펜, 단추 화재경보기에다 심지어 물병까지 지금까지 파악된 내장형카메라만도 165가지가 넘는다. 그렇게 촬영된 영상/사진은 온갖 음란사이트에서 몇 년이고 유포된다. 7000여명의 피해자들은 우울증, 대인기피증, 심지어 자살충동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상 무대책이던 지난 정부들과 비교하여, 현 정부의 신속한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 ‘감시와 처벌’ 측면에서는 말이다. 문제는 그것들이 사후대책일 뿐이라는 점이다. 수요와 공급의 욕구가 있는 한, 불법촬영물들은 어떻게든 법망을 뚫고 ‘몰카’, ‘포르노’, ‘도촬’ 등의 이름으로 유통된다.

근본적으로 열악한 ‘몰카 감수성’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몰카’는 짓궂은 장난, 오락물 정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인격을 살해하는 성범죄라는 인식이 시민사회에 공유되어야 한다. 이는 범죄자 단속-처벌보다 훨씬 까다롭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될 것이다. 불법촬영물에 대한 용어/대응방식 등을 재규정하고, 그것에 공감할 수 있도록 관공서/학교/직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성범죄 방지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최근 배포된 ‘몰카 주의’ 포스터가 ‘몰카 금지’로 덧쓰인 장면. ‘몰카 주의’는 불법촬영 피해자에게 일정 책임을 넘기는 듯한 뉘앙스가 담긴 반면, ‘몰카 금지’는 가해자의 불법성을 강조한 것이다.

몰카범에게 ‘남자의 실수’를 운운한 경찰관에 분노가 쏟아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속과 처벌을 강화한다지만, 정작 수사당국의 ‘성 인식’ 수준은 몰카범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참담한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서 선포한 ‘몰카 범죄’와의 전쟁, 그것은 범죄를 넘어 일상이 되어버린 느슨한 ‘몰카 감수성’과의 전쟁으로 확대되야 한다.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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