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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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요즘처럼 청년실업율이 높을 때 자식으로부터 받는 선물 중 가장 뿌듯한 것에 명함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고 나서의 기쁨은 비교하기 힘들다. 첫 직장에 들어간 뿌듯함을 두고 두고 느끼고 싶어해 지갑 속에 자식명함을 넣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마치 기다리던 손주를 보고 손주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것에 비할 수 있다.

애들이 첫 출근하고 집에 돌아온 날 명함 받아왔냐고 부터 물었던 기억도 난다. 그 다음엔 명함을 한장 받아 지갑 속에 넣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며 자식의 명함에 대한 특별했던 관심은 자연히 식어간다.

시중은행직원들은 처음 지점장으로 발령받아 나간 후 발행된 자기앞수표를 한장 보관한다고 한다. 자기앞수표에 새겨진 자기이름이 대견해서인지 그런 전통이 내려온다고 한다.

은퇴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장소가 있다.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모임이다. 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마주치는 사람들 중 다가와 자기명함을 줄 때 자세가 굳어진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참가자들이 많은 모임일수록 불편함은 커진다.

은퇴를 해서 명함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게 부끄러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불편함이 얼굴에 묻어난다. 그러다보니 그런 모임에 웬만해서는 가지않게 된다.

퇴직하며 업무상 받아 명함철에 모셔놓았던 대부분의 명함을 버렸다. 친구들 명함은 업무와 상관없던 관계로 그냥 두었다.

그러다 얼마 안 지나 남겨둔 친구들 명함이 꼭 필요함을 알게되었다. 오랜기간 직장 다니면서 실업보험료를 본인부담 회사부담으로 빠짐없이 내어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이 생겼는데 실업급여를 받기위해서는 구직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로 명함사본 두장을 매월 제출하게 되어 있다. 고용노동부 온라인구직란에 신상정보를 올려놓는 것 말고도 구직활동상 만난 사람 인적사항을 보고하는 방식으로 명함 두장의 사본을 제출하게 되어 있다.

육십이 된 은퇴자가 아무리 눈높이를 낮춰도 구직차 찾아가볼 데가 거의 없다는 걸 아는 담당공무원이나 실업급여신청자나 피차가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먼저 이런 과정을 지난 친구들에게 문의도 하고 담당공무원에게 넌지시 물어봐도 그냥 명함 두장 골라 제출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은퇴 후 비용 들여가며 사무실을 얻고 또 무슨 무슨 연구소다 하며 그럴듯한 이름을 건 명함을 만들어 갖고다니는 사람들을 종종 보며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한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개인이 바뀌기 앞서 나라에서 먼저 형식적인 요건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관행부터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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