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의 동서남북]

[오피니언타임스=김준범] 문재인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 이하 수뇌부들 앞에서 군을 강하게 질타했다. 8월28일 정부 세종로 청사에서 진행된 국방부·보훈처 업무보고 자리에서였다. 이날 문 대통령은 작심한 듯 그동안 군의 자세와 태도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호통을 쳤다.

“북한과 남한의 GDP를 비교하면 남한이 북한의 45배에 달한다. 그러면 절대 총액상으로 우리의 국방력이 북한을 압도해야 하는데 실제 그런 자신감을 갖고 있나?”라고 묻고 “(이렇게)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하고도 우리가 북한의 군사력을 감당하지 못해 오로지 (한미) 연합 방위 능력에 의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군 당국을 질책했다.

대통령은 이어 “북한과 국방력을 비교할 때면 군은 늘 우리 전력(戰力)이 뒤떨어지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독자적인 작전능력에 대해서도 아직 때가 이르고 충분하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 군을 신뢰 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취임 초기 국방부 방문 때 군 수뇌부들을 대했던 부드러운 태도와는 확연히 달랐다. 오랫동안 맘속에 담아 두었던 군 장성들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28일 국방부·국가보훈처 정부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청와대

문 대통령의 이날 질책은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발언(2006.12.21)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 보다 훨씬 강하고 구체적으로 군을 질책했다.

“…자기 군대 작전통제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 만들어 놔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래서 ‘작전통제권 회수하면 안 된다’고 줄줄이 몰려가서 성명 내고… 자기들 직무유기 아닙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군 장성 집단의 자주국방 의식 결여와 미군 의존적인 자세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점에서 노·문 두 대통령의 질책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군을 닦아 세우는 바람에 육·해·공 장성 모임인 성우회(星友會)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왔다. 그후 예비역 단체들은 전작권 환수 반대 캠페인을 공공연하게 펼쳐나갔다.

문 대통령의 대군 질책에 대한 예비역들의 반응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촛불 정국과 대선과정을 지나오면서 감춰뒀던 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주류는 역시 예비역 육군 장성들. 이들은 ‘지금 북한의 핵 도발로 안보상황이 어느 때 보다 위중한 이 때에 대통령이 군을 향해 꼭 그런 질타를 했어야 했나?’라며 대통령의 질책은 “적절하지도, 신중하지도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견해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취임 후 첫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이 군 수뇌부를 격려하며 덕담을 건냈더라면 군의 사기도 올리고 분위기도 훨씬 좋았을 것이다. 문 대통령인들 어찌 그럴 줄을 몰랐겠는가? 그러나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그동안 벼르고 벼른 끝에 군수뇌부에 던진 뼈아픈 경고 메시지였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동안 군에 대해 가장 못 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그렇게 많은 국방비를 쓰고도 우리의 전력은 늘 북한보다 열세라는 군의 논리, 또 하나는 주한미군 사령관이 행사해 왔던 전작권을 한국에 돌려주기로 양국이 합의했는데도 정권이 바뀌자 ‘우리는 아직 그럴 능력이 안 된다’며 미 측에 돌려 준 행위 등은 문재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였다.

2006년 9월15일 한·미 정상회담과 그해 10월 20일 제38차 국방장관회담(SCM)에서 전작권 전환의 원칙이 합의됐고, 이듬해 2월24일에는 구체적인 전작권 전환 날짜(2012.4.17)까지 명시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지 3년 후 이명박(MB)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2010.6.26)에서 전작권 전환 시점을 2015년 12월1일로 3년 6개월 연장하는데 합의했다. MB는 연기를 요청하면서 “북한의 2차 핵실험(2009.5)을 비롯, 변화된 한반도 안보환경과 우리 군의 준비상황” 등을 내세웠다.

전작권 전환 연기론은 먼저 예비역들로부터 나왔다. 처음엔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다가 양국 대통령이 전환원칙에 합의하자 이제는 연기론을 들고 나선 것이었다. 당시 한나라당 유력 후보인 MB에게도 접근, ‘대통령에 당선되면 전작권 전환문제를 재검토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오바마 간 전작권 연기 합의는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MB 때 연기해 놓은 날짜(2015.12.1.)가 1년 앞으로 다가오자 군은 또다시 불안해졌다. 전환시점을 정해 놓으면 어김없이 그 날짜가 돌아오고야 만다는 이치를 뒤늦게 깨달았음일까? 이번에는 아예 날짜를 정하지 않았다. 전작권 전환에 대한 한국군의 속내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4년 전 MB정부에 이은 두 번째 연기였다.

국방부는 당시 “우리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할 수 있는 핵심 군사능력을 갖추면…”이라는 두루뭉술한 조건을 달고, “그것이 달성되면 전작권 전환을 추진할 예정”(2014.10.23, 제46차 SCM)이라고 밝혔다. 일부 진보 언론에서는 ‘구체적인 날짜도 없는 전작권 전환 합의는 사실상의 군사주권 포기’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우리 군은 늘 북한의 위협에 대한 ‘준비부족’을 내세우며 전작권 전환을 연기해 왔다. 하지만 진정 국민을 납득시키려면 “군은 그동안 어떤 준비를, 어떻게 추진해 왔는데 무엇이, 얼마만큼 부족하다. 그러니 앞으로 언제까지 노력하면 당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니 지켜봐 달라”며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는 성실한 자세를 보였어야 옳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준비부족’만 되풀이해서는 21세기 깨어있는 우리 국민을 설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에 찬 물을 끼얹기는 당시 한나라 당도 마찬가지였다. 한·미 정상이 전작권 전환 원칙에 합의한지 불과 4일후인 2006년 9월19일, 한나라 당은 이상득 의원을 단장으로 한 방미단(정형근·박진·전여옥·정문헌·황진하)을 미국에 파견했다. 이들은 5박6일 동안 미 의회와 행정부 요인들을 만나 ‘한국은 아직 전작권을 행사할 형편이 못되니 도로 가져가라’며 정부 방침과 정반대 활동을 하고 다녔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자국의 대통령과 한 약속을 상대국 행정부 관리들과 의회 지도자들에게 제발 파기해 달라며 애걸하고 다녔다. 주무부처인 미 국방성 관계자는 ‘양국 정상회담에서 결정된 사안을 반대하다니 무슨 소리냐’며 면담을 아예 거부해 버렸다. 이 얼마나 낯 뜨거운 일인가? 사대주의도 이런 사대주의가 없다.

그동안의 이런 행태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군 불신감을 키워 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날 국방부 업무보고 때 정작 문 대통령의 질타를 받아야 할 대상은 이미 전역한 예비역들이지만, 애꿎게도 현역 군 수뇌들이 선배들 대신 매를 맞은 셈이었다. 후보시절 이미 임기내 전작권 전환을 공약으로 내 건 문 대통령이다. 구체적인 방법과 일정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준범

 (주)대한공론 상임 고문

 전 국방부 국방홍보원 원장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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