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어원설설]

[오피니언타임스=동이] 새 정부들어 유리천장(天障)을 깨고 고위직으로 올라선 인사들이 많습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 피우진 보훈처장, 조현옥 인사수석 등등...

능력이나 자격이 출중함에도 성이나 장애, 인종을 이유로 직장에서 고위직을 맡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차별(장벽)에 부딪치는 경우를 유리천장이라 하죠. 주로 성차별을 극복했을 때 많이 쓰입니다.

천장은 ‘지붕의 안쪽이나 상층의 바닥을 감추기 위해 그 밑에 설치한 덮개’라는 게 사전적 풀이지만 방안에서 보면 가장 높은 수평공간입니다. 물가가 많이 오르면 신문들이 “천정부지로 올랐다”고 즐겨 표현합니다. 천장을 모르고(天井不知) 올라갈 만큼 많이 올랐다는 뜻이죠. ‘다락같이 올랐다~’는 표현 역시 같습니다.

지붕 아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다락방.한옥의  다락도 좋은 수납장이자 은신처였다. ©픽사베이

천장이나 다락이나 높은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천정은 천장의 비표준어입니다. 그러나 천정부지를 쓸 때는 ‘천장부지’가 아니라 ‘천정부지’가 표준말이 됩니다.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천장을 표준어로 하되 ‘천정부지’의 경우 사자성어로 써온 관행을 인정해 표준어로 인정한 듯합니다. 그 점에서 천정이 천장보다는 다소 앞선 말로 보이죠.

다락 역시 집에서 가장 높은 곳입니다. 수납공간이자 은신처로도 쓰이던 곳이죠. 베이비부머라면 누구나 다락에 얽힌 추억이 한두가지 있습니다. 몰래 올라갔다가 캄캄한 곳에서 이리저리 둘러본 경험같은 것이죠. 식구들이 찾을 때까지 꼭꼭 숨어있기도 하고.

수납공간이 많지 않던 시절 다락은 어머니들이 살림살이를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쓰던 살림공간이었습니다. 한옥 부엌에서 보면 부뚜막 바로 위가 다락의 바닥이 되는 구조입니다.

다락방은 다락의 공간을 좀더 확대해 방처럼 꾸민 공간으로 현대식 건물에도 지붕 밑을 활용해 만듭니다. 다락과 비슷한 공간으로 벽장이란 게 있습니다. 차이라면 공간이 다락에 비해 다소 협소하다는 점이죠.

다락은 대개 안방에서 부엌 쪽 계단을 딛고 올라서게 돼있습니다. 다락이 계단형태인 점에 비춰 다락골이나 다락논도 다락과 말뿌리가 같은 게 아닌가 합니다.

남해엔 가천 다랭이마을이란 곳이 있습니다. 국민관광지죠. 다닥다닥 붙어있는 손바닥만한 논들이 계단식으로 펼쳐지고 멀리 남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장관을 이룹니다. 다랭이마을을 검색하면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따위에 있는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라고 설명돼 있습니다.지역에 따라 ‘다래이’ ‘달뱅이’로도 불려왔습니다.

다랭이마을의 ‘다랭이’나 ‘달뱅이’나 역시 다락논에서 온 말로 보이죠. 다락논에서 연음이 일어나 다랑논이 되고 다랑이논>다랭이논으로, 다랭이논마을은 다랭이마을로.

다락논은 손바닥만해 기계화의 사각지대입니다. 트랙터가 들어갈 수 없으니 불가피하게 밭갈이나 논갈이를 사람과 소에 의존해왔습니다. 몇해전 동이가 다랭이마을을 찾았을 때도 소가 쟁기질을 하고 있더군요.

가천 다랭이마을은 손바닥만한 논이 언덕 위에서부터 마을을 둘러싸고 바다까지 이어집니다. 벼랑에 걸려있는 마을같습니다. 깍아지른듯한 비탈에 108개 층층계단, 10제곱미터밖에 안되는 작은 것부터 1000제곱미터에 이르는 것까지 680여개 논이 펼쳐집니다. 주민들은 돌투성이의  비탈을 개간해 논을 만들었습니다. 걷어낸 돌로 둑을 쌓고 물이 쉬 빠지지 않게 점토와 흙으로 마감했습니다. 설흘산 물을 수로로 연결해 오늘의 다랭이마을을 일궜습니다.

이곳엔 밥무덤이라는 특별한 민속자료도 있습니다. 여기에 매년 제사를 올립니다. 상대적으로 경작할 논이 적어 쌀을 귀하게 여겨온 마음이 신앙으로 굳어진 것이죠. 남해의 빼어난 풍광과 함께 시골할매 막걸리, 남근석, 여근석 등등 먹거리와 볼거리도 많습니다. 영화 ‘맨발의 기붕이’의 촬영지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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