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오피니언타임스=심규진] 오른팔에 바늘을 꽂고 천장을 바라본다. 잠시 후 몰려오는 짜릿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에너지 게이지가 차오른다. 일단은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관자놀이를 짓누르던 송곳도 없어졌다. 20대 때는 링거 한 통이면 거뜬했는데 이제는 세 통이나 맞아야한다. 슬며시 녀석을 바라보니 각기 색깔도 다르다. 내 몸에 도대체 무엇이 주입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게 무엇이면 어떠리.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본다. 이 얼마 만에 누리는 안식인가. 거동이 불편하니 휴대폰도 볼 수 없고 그저 잠만 자야하는 신세이다. 오히려 잘됐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것을 두고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고 하는가.

©픽사베이

커튼으로 가려져 보이진 않지만, 옆 자리 환자는 신음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심지어 휴대폰이 울리고 있지만 듣지도 못하고 수면에 열중하고 있다. 그 옆자리, 저 뒷자리에도 사연을 알 수 없는 환자들이 링거를 통한 회복을 호소하고 있다.

샌디에이고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진 트웬지(Jean Twenge)는 1980년대 이후 청년들의 자존감이 급격하게 향상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책임감있고 매력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청년들이 세상 밖으로 발을 내밀었을 때의 괴리감은 엄청나다. 부모는 항상 인정해줬지만 세상은 무정했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불확실성의 바다를 보지 못하게 했고,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청년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지금 청년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나르시시즘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기 이전에 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도한 꿈, 이루지 못할 목표를 향해 눈 감고 달리는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난 도대체 누구인지.

병원비는 24만원이었다. 일시적으로 육체가 회복됐을 뿐인데 또 다시 먼 나라 이웃나라 꿈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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