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린의 다도이야기] 첫번째 차회, 일본차 입문

[오피니언타임스=김채린] 커피와 술 대신 차(茶)를 마시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탄산도 커피도 안 마시고 온갖 차에만 관심을 두는 내게 사람들은 왜 삶의 즐거움을 외면하는지 의아해하지만, 단지 취향 차이일 뿐 차를 편애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

이번 가을엔 ‘찻잎책갈피’라는 이름의 작은 차 모임을 알게 됐다. 평균 연령 약 21세, 술을 마시며 열정을 외치는 동년배의 청춘들 사이에서 차를 마시며 냉정을 추구하는 독특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얼마 전 3명의 멤버들과 함께 첫 번째 차회를 가졌다. 멤버들끼리 찻집에서 만나 다양한 차들을 마셔 보고 자유롭게 감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본 녹차의 한 종류인 호우지차. ©김채린

일본차의 다섯 분류

차는 주로 생산국을 기준으로 분류한다. 한국, 중국, 일본, 영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차를 생산하지만 국가마다 추구하는 차의 맛과 향, 이미지가 모두 다르다. 이번 차회의 주제는 일본차이다. 일본차는 단연 녹차로 대표된다. 홍차 생산에 주력하는 영국이나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녹차가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 소비된다. 일본 녹차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텐차, 옥로(교쿠로), 전차(센차), 현미녹차(겐마이차), 그리고 호우지차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차들이 있지만 이 다섯가지를 큰 분류로 친다.

텐차와 옥로는 전차와 다르게 차나무 위에 그늘을 만들어 차광 재배를 한다. 이 과정에서 찻잎 속의 아미노산이 탄닌으로 바뀌는 것이 방지되어 차가 덜 떫게 된다. 그러므로 텐차와 옥로가 전차보다 더 고급이라고 할 수 있다. 텐차와 옥로의 차이는 분명하다. 옥로의 잎맥과 줄기를 제거한 것이 텐차이고, 이것을 차로 마시기보다는 가루를 내어 맛차를 만들어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산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가는 맛차야말로 일본 녹차 중 최고급품이다.

겐마이차와 호우지차는 차에 특수한 가공을 한 것으로, 겐마이차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미녹차와 유사하며 호우지차는 불에 볶는 과정을 거친 차이다.

같은 찻잎이라도 빛을 어떻게 조절해 주느냐와 가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천양지차로 달라지니, 차의 세계는 그야말로 예법을 넘어 화학의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차를 우릴 때에도 제조과정 못지않게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물의 온도를 맞추고 찻잎을 우리는 시간을 초 단위로 재야 한다. 심지어는 다관(찻주전자)의 모양과 재질에 의해서도 조금씩 미묘하게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찻잎책갈피에서는 ‘한 번 맛본 차의 맛은 다시는 맛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완벽히 똑같은 물의 상태와 찻잎의 상태를 재현하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치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매번 차를 마실 때마다 그 차와는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을 갖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의 첫 번째 매력이다.

일본의 현미녹차 겐마이차. ©김채린

차중의 기본, 센차(煎茶)
니시다하루코우엔의 ‘특선 센차’

차회를 열며 가장 먼저 마신 차는 센차였다. 센차는 ‘전차’라고도 불리는데, 찻잎을 따서 특별한 공정 없이 찻잎을 찌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생산하는 차이다.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마시는 차이기도 하다. 우리가 센차를 맨 처음 순서로 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고급도 특별한 것도 아닌, 가장 기본이 되는 차를 먼저 마셔 보고 다른 차들과 비교해 보기로 했다.

섭씨 70도의 물에 센차 2티스푼을 넣고 1분 정도 우려냈다. 그런데 수색이 전형적인 녹차와 다르게 매우 옅었다. 초록색이 옅어지다 못해 노란 빛이 도는 연두색이 되어 버렸다. 향도 나는 듯 마는 듯, 뜨거운 물의 향이 날 뿐 중국차처럼 강한 향은 느끼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일본 차는 향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이나 영국의 차는 화려하고 짙은 향기가 나서 그 향을 음미하며 마실 수 있지만, 일본 차는 담백하고 가벼운 향이 나서 물 마시듯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뜨거운 센차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물의 맑은 맛이 많이 나면서, 녹찻잎의 떫은맛과 싱그러운 맛이 함께 연하게 올라왔다. 차를 우렸다기보다는 맛을 살짝 입힌 느낌이었다. 조금 식혀서 다시 한 모금 마시자 삶은 밤 향과 함께 가볍고 맑은 맛이 나기 시작했다.

센차는 가장 많이 생산되고 가장 많이 소비되는 차인 만큼 값이 저렴한 편이고 맛도 단순했다. 탄닌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탓에 약간 떫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이 차는 다도에서 추구하는 ‘절제‘의 미학을 잘 보여 주었다. 화려함을 대신하는 단순하고 은근한 향이 어떤 다식에도 잘 어울릴 듯하다.

찻잎책갈피 회원들이 다도 모임을 갖고 있다.©김채린

고소한 가을의 차, 호우지차(ほうじ茶)
히노데엔의 ‘카가리비’

호우지차는 다른 녹차와 달리 초록이 아닌 갈색을 띤다. 녹찻잎을 불에 볶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커피로 따지자면 ‘로스팅(roasting)’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떪은 맛이 날아가 버리고 고소함이 남는다. 특이하게도 마른 상태의 찻잎에서는 고소하고 약간 알싸한, 중국 요리 냄새가 난다.

호우지차를 섭씨 100도의 뜨거운 물로 우리면 녹차인데도 곡물처럼 깊은 갈색이 돌고 풍요로운 가을 곡식 향이 난다. 그래서 식물의 잎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한 모금 마셨을 때에는 차를 잘 마시지 않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떫은 맛이 적고 보리차처럼 익숙한 맛이 난다.

신기하게도 호우지차를 마시고 호박씨를 먹으면 거기서 달걀 노른자맛이 난다. 센차를 마시고 먹었을 때는 은은한 단맛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호우지차를 마시고 먹으니 더 고소하고 덜 달게 느껴졌다. 호우지차에는 은근한 감미도 도는 모양이다. 색과 향, 희미한 감미가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가 떠오른다.

©김채린

당신의 첫 다도 이야기

사실 차는 한국에서 그리 대중적인 음료가 아니다. 나는 그게 항상 안타까웠다. 차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문화 그 자체이다. 향을 즐기고 맛을 음미하는 것은 물론 차를 우려내는 동안 마음을 차분히 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하나로 이어져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시간이 없다면 티백 하나 퐁당 빠뜨리는 것으로도 맛있는 차를 만들 수도 있다. 다른 음료에 비해 밋밋하다고 느껴서일까? 절제의 음료이자 청정의 음료인 차가 달고 강렬한 음료에 밀려 맛 없는 것으로 치부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따금 우리 모두가 마음 한 가운데 자신만의 찻주전자를 담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끓어 넘치는 감정을 가라앉혀 한 잔의 향긋한 차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이 필자뿐 아니라 읽는 모든 이들의 ‘첫 다도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채린

 노래 속에는 고유의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숨은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려 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오피니언타임스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으로 세상을 바꾼다.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nongaek34567@daum.net)도 보장합니다.
저작권자 © 논객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