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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무예(武藝), 국궁(國弓)[이종원의 프리즘 속 세상]
이종원 | 승인 2017.09.27 07:34

[논객닷컴=이종원] 고대 중국문헌에는 우리 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기록하고 있다. 사람형상의 큰 대(大)자와 활 궁(弓)자의 합성문자인 이(夷)자는 우리민족이 동방(東方)의 활을 잘 다루는 민족임을 말한 것이다. 활쏘기는 오랫동안 사냥과 전쟁 등에 이용되다가 오늘날에는 심신을 수련하는 레저스포츠 겸 무예(武藝)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사직단(社稷壇) 뒤편의 황학정(黃鶴亭)은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조선 시대의 국궁연습장이다. 1898년 대한제국 때 고종이 만든 곳으로 “노란색 곤룡포를 입고 활을 쏘는 고종의 모습이 노란 학(黃鶴)이 춤추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조선 시대의 국궁연습장인 황학정(黃鶴亭)에서 궁사들이 활쏘기를 하고 있다. 단수가 높은 궁사가 상석인 왼쪽에 자리를 잡고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활을 쏜다.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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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을 더 벌리고 어깨의 힘을 빼세요” 강사의 지시에 맞춰 동작을 익히고 있는 이들은 사직동주민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국궁(國弓)교실’의 심화반 교육생들이다. 기초반에서 활을 잡는 방법과 조준하는 자세까지 배운 다음, 사대(射臺)에 올라섰지만 아직도 어설프다.

황학정의 신동술 국궁전시관장이 과녁을 향해 시위를 당기고 있다. ©이종원

“활과 시위를 비틀어 잡으세요. 그래야 화살이 가운데로 날아갑니다” 시키는 대로 하고 싶지만 과녁을 향해 뻗은 팔이 부들부들 떨려 말을 듣지 않는다. 힘이 드는 만큼 운동효과가 크다. 시위를 당길 때 팔과 척추에 힘이 들어가서 근력이 강화되고 단전호흡을 하게 된다. 발끝에 힘을 주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전신운동이다.

사대에 오르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는 회원들. 국궁은 발끝에 힘을 주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전신운동이다. ©이종원

오십견이 낫지를 않아 활을 잡은 서상곤씨는 “안 쓰던 근육을 쓰려니 쉽지가 않다”며 “그래도 시위를 당길 때면 마음공부가 되는 것 같다”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황학정의 국궁전시관에서 운영하는 ‘전통활제작체험’은 자신이 직접 만든 활로 활쏘기까지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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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 교육이 끝난 황학정의 오후는 숙련된 회원들의 연습으로 이어졌다. 단수가 높은 궁사가 상석인 왼쪽에 자리를 잡고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활을 쏜다.

전통 동개(筒介, 활집)와 시복(矢箙, 화살집) ©이종원

첫 궁사가 숨을 고르며 거궁(据弓) 자세를 취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에 일순간 긴장감이 흐른다.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놓자 곡사(曲射)로 날아간 화살이 145m 거리의 과녁을 정확하게 뚫는다. ‘관중’(貫中·화살이 과녁을 맞힌 것)이다.

고풍(古風)은 국왕이 활쏘기를 할 때 수행한 신하들에게 물품을 내리는 것으로, 정조와 같이 갔던 검교제학(檢校提學, 임시직 규장각 제학) 오재순(吳載純)에게 상을 줬다는 내용의 기록이 국궁전시관에 걸려있다. ©이종원

점수판이 있는 양궁과 달리 국궁은 과녁의 어디를 맞혀도 관중이다. 거리를 재는 조준경이나 가늠자도 없다. 황학정의 신동술 국궁전시관장은 “오로지 고요한 마음을 통해 자신과 목표사이의 거리를 지워낸다”고 말했다.

전통 활과 화살의 제작 모습. ©이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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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은 현재 전국 380여개 사정(射亭·전통 활쏘기터)에서 애호가들이 즐기고 있다. 전국의 활터 어느 곳이든 누구나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지만 ‘집궁례’(執弓禮·궁사로서 첫발을 내딛는 의식)를 거행하는 입문(入門)만큼은 엄격하다. 예의와 규범을 중시하며 나라를 지켜온 ‘전통무예’이기 때문이다.

습사무언(習射無言·활을 쏠 때 말을 앞세우지 말라)은 활쏘기 전 지켜야 할 규율인 궁도구계훈(弓道九戒訓) 중 한 덕목이다. ©이종원

선조들은 활에 대해서 살생의 용도인 ‘쏜다’는 말보다 심신수련을 강조하는 ‘낸다’는 말을 더 선호했다. 활터 한쪽에 ‘습사무언’(習射無言)이라는 네 글자가 적힌 석판이 눈길을 끈다. ‘활을 낼 때 말을 앞세우지 말고 예(禮)를 갖춰라’는 충고를 담고 있는 듯했다.

이 가을엔 마음의 무예인 국궁을 통해 참된 나를 만나보자.

 이종원

 서울신문 전 사진부장

 현 서울신문 사진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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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jongw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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