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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어가길’, 무엇이 문제인가?
이동순 | 승인 2017.09.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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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29일은 국치(國恥) 10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완전멸망 직전의 썩은 왕조 대한제국이 침략국 일본제국에게 나라의 주권을 넘겨준 합병조약(合倂條約)이 이루어진 날이지요. 100년 세월이 넘었지만 그날의 치욕(恥辱)은 우리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흉한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이날 오전 11시, 대구 달성공원 앞에서는 주목할 만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대구 중구청(청장 윤순영) 주관으로 국비 70억을 쏟아 부어 조성한 총 연장 1km에 달하는 이른바 ‘순종어가길’, 그 최종적 지점에 세워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純宗, 1874~1926)의 11m 동상에 대해서 즉각 철거를 요구하는 양심적 시민들과 24개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순종어가길’ 조성에 대한 비판 및 규탄이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엄정하게 구분해서 집행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해야 할 일에는 무심하고 하지 말아야 될 일은 오히려 황급히 서두르는 괴기적 사례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 전형적 사례가 바로 ‘순종어가길 조성’과 순종동상의 건립입니다.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 한번 냉철히 검토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순종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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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월,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의 강압적 요청으로 이른바 남서순행(南西巡幸)을 떠나게 됩니다. 이토는 당시 일제가 조선에 설치한 침략기관 통감부의 초대 통감으로 그 위세가 한 나라의 왕을 압도하고 있었지요. 이토는 총리대신이었던 매국노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을 불러 순종에게 남서순행을 위한 출발준비를 통보합니다.

순행의 목적은 전국적으로 끓어오르던 반일감정을 잠재우려는 의도와 여기에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뜻이 숨어있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순종은 화려하게 장식된 궁정열차를 타고 대구, 부산, 마산, 대구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순행 코스를 다녀오게 됩니다. 그렇게 다녀온 지 얼마 뒤에 순종은 평양, 의주, 신의주, 평양, 개성 등지를 다녀오는 서북순행(西北巡幸)을 다시 떠납니다. 당시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궁정열차를 타고 이동 중인 순종 ©이동순

경부선으로 대구역에 도착한 순종과 그 일행은 대구군수로 가 있던 친일매국노 박중양(朴重陽, 1874~1959)과 그 일파들, 대구에 주둔하던 일본군 헌병대장, 경찰서장, 일본거류민단 대표 등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그들과 악수하며 격려합니다. 그리곤 가마를 타고 북성로(北城路) 일본인 거리와 수창동을 지나 달성토성(達城土城, 현 달성공원)까지 갑니다. 이 순종행차 때문에 길가의 많은 민가들이 돌연히 철거되었고, 확장된 도로 위에는 흰 모래를 깔았습니다. 달성토성에는 1906년 대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그들의 왕 메이지(明治)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이해서 그 기념으로 세운 황대신궁(皇大神宮) 요배전(遙拜殿)이 있었지요. 순종은 그 요배전 앞에 가서 90도로 허리 숙여 절을 했습니다. 황대신궁이란 일본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상징적인 존재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즉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위패를 안치한 곳으로 일본 고유종교에서 최고로 숭배하는 신이지요. 순종이 직접 찾아가서 참배한 곳은 사실상 일본의 신사(神社)였던 것입니다.

그리곤 곧바로 대구역으로 가서 부산, 마산을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대구에서 하루 묵으며 대구권번(大邱券番)의 기생연회를 구경합니다. 바로 이 경과가 망국 직전, 가련한 왕 순종의 모든 발자취인데요. 이를 ‘순종어가길’이란 말로 윤색(潤色)하고 미화시킨 다음 70억이라는 막대한 국비로 복원했다고 하니 참으로 억장이 막히고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 수치스런 사업에 참여한 어느 누구도 반역사적 반민족적 흠결에 대한 지적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더욱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어찌 제 정신을 갖춘 사람이 그리도 없었던 것일까요?

일제의 초대 통감으로 군림하던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순종의 남서순행 때 대구군수로 영접한 매국노 박중양 ©이동순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로 알려진 매국노 박중양이 대구군수로 재직하는 시기에 순종의 남순행이 이루어졌습니다. 박중양이란 자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자를 자처하던 인물로 대구의 일본거류민단 등과 야합하여 대구읍성을 파괴 해체한 실질적 주범(主犯)입니다. 읍성을 철거한 북쪽 지역에 대구역도 설치하고 일본인 집단거주 지역이 신속히 자리 잡도록 그들에게 엄청난 특혜를 베풀어주었지요. 대한매일신보 1월16일자는 매국노 박중양의 반민족적인 행각을 풍자하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

중양가절(重陽佳節) 말 말어라. 통곡일세 통곡일세. 누백년(屢百年)을 존숭(尊崇)하던 대구객사(大邱客舍) 어데 갔노. 애구(哀邱) 대구(大邱) 흥
중양가절 말 말어라. 전무후무 비기수단(肥己手段) 대구성곽(大邱城郭) 구공해(舊公垓)를 일시간(壹時間)에 팔아먹네 애구(哀邱) 대구(大邱) 흥
-‘중양타령’ 부분

매국노 박중양의 대구읍성 파괴해체를 풍자하는 ‘중양타령’(대한매일신보) ©이동순

제목을 ‘중양타령’이라 붙이고 있는 4·4조 가사체의 이 글은 일명 ‘흥타령’이란 잡가형식에 실어서 박중양의 대구읍성 파괴와 그가 저지른 여러 만행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네요. 흥미로운 것은 박중양이란 이름에 빗대어 중양가절, 즉 한가위도 이제 그 전통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탄식조로 작품의 각 단락이 시작됩니다. 한국인임을 스스로 부정하고 소일본인으로 살아갔던 박중양의 패덕(悖德)한 삶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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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통한 슬픔이 바탕에 흥건히 깔려있는 순종 남서순행을 무슨 대단히 자랑스러운 역사적 자료라도 되는 듯 복원, 혹은 재현이란 명분으로 조성한 대구 중구청은 마땅히 호된 비판과 꾸중을 들어야 합니다. 민심을 역행하고 있는 행정기관의 만행(蠻行)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되니 그 무지와 둔감에 너무도 가슴이 따갑고 아픕니다.

국치 107주년이 되는 날 오전, 구리로 만들어 세운 순종동상 앞에서는 대구의 한 무용가(박정희)가 등장해서 순종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얼굴에는 순종의 가면을 쓰고, 상체에는 일본군복의 어깨띠와 장식을 두르고, 아랫도리에는 일본의 성인남성이 입던 훈도시(褌)를 걸쳤습니다. 일제가 조종하는 로봇에 불과했던 당시 순종의 위상과 현실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후 무용가는 상복(喪服)으로 다시 갈아입고 민족혼이 죽어버린 세태를 탄식하는 행위예술로 이어갔습니다. 마무리에서는 흰 광목천을 동상 밑동에 감아서 참석자 다수가 그 천을 어깨로 끌어당겨 동상을 쓰러뜨리는 퍼포먼스까지 진행했지요.

순종 동상 건립의 잘못을 풍자한 무용가의 퍼포먼스 ©이동순

그날 터져 나온 구호들은 ‘무분별한 반민족친일역사 기념사업 중단하라’ ‘일본에 순종한 임금의 동상이 왜 필요한가?’ ‘순종어가길은 식민지 치욕의 길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후대에게 물려줍시다!’ 등입니다. 글귀 하나하나가 모두 가슴을 파고드는 날카롭고 정확한 지적들입니다.

대구 중구청이 세운 순종동상 주변에는 이해하기 힘든 조형물과 글귀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습니다. 우선 순종의 의복이 대례복(大禮服)입니다. 순종이 1909년 대구역에 내렸을 때 입었던 옷은 각종 훈장과 견장으로 요란하게 장식된 프러시아군복입니다. 그런데 동상의 순종은 뜬금없이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입은 모습입니다. 참으로 앞뒤가 맞지 않을뿐더러 어이가 없습니다.

동상의 뒷면에 새겨진 안내해설에는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란 구절도 보입니다. 이것은 사이먼(Simon)과 가핑클(Garfunkel)이 1969년에 발표한 인기팝송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의 제목을 그대로 표절한 것입니다. 이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에 담은 현대적 가스펠 송입니다. 이런 노래의 제목을 활용함으로써 가련한 왕 순종이 비록 이토 통감의 노예처럼 다니긴 했지만 진심은 백성을 위하는 한 가지 마음으로 다녔다는 식의 내용으로 읽는 사람을 슬그머니 왜곡시키며 감화로 이끌어가려는 기획자의 교활한 의도와 술책이 느껴집니다.

순종어가길 출발지점 표지판 ©이동순

순종동상 앞에는 왕이 정무를 볼 때 앉던 용상(龍床)까지 구리로 제작해서 앉혔습니다. 그 앞으로는 매우 길게 경부선철도를 떠올리게 하는 설치물을 조성했습니다. 이른바 한반도 근대화의 상징인 듯 말이지요. 경부선은 일제가 침략과 수탈의 발판으로 만든 교통로였던 사실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 밑그림을 그린 기획자는 경부철도가 한국의 근대화, 산업화를 위해 매우 유익한 시설이었다는 뉴라이트의 역사적 관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암울했던 시대상황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정신을 담아내고자’ 이곳에 순종동상을 세운다는 취지 설명의 대목입니다. 대체 이 무슨 넋 나간 억지요 망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순종동상과 민족정신은 전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세워선 안 되는 이런 얼빠진 조형물을 건립함으로써 대구란 지역이 얼마나 한심하고, 역사의식이 부재(不在)하며,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낙후한 곳인가를 대구중구청이 솔선해서 만천하에 드러내고만 결과가 되었습니다.

모든 조악한 구조물은 대구 달성공원 앞 가뜩이나 비좁은 도로의 한 중간을 가로막고 무려 100m도 훨씬 넘는 길이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시민들은 몹시 불편하고 심각한 교통체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주변 상가의 상인들도 순종동상 제막 이후 현저히 줄어든 매출 때문에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순중동상 철거를 촉구하는 필자 ©이동순

순종동상 건립에 앞장선 자들이 하는 말은 너무도 그 명분이 군색하고 빈약합니다. 그들은 이른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말을 자주 쓰면서 본질을 가리고 은폐합니다. 외국에 견주자면 다크투어리즘의 전형적 표상은 아우슈비츠수용소, 혹은 난징대학살기념관 등입니다. 국내로 말하자면 거창양민학살사건 현장, 제주의 4·3사건 학살현장, 혹은 경북 칠곡 다부동 전쟁격전지의 전사자 발굴현장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곳이야말로 어둡고 험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교훈 현장으로서의 실질적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대구 중구청이 조성한 ‘순종어가길’은 다크투어리즘으로서의 장소성이 전혀 성립되지 않습니다. 공연한 미화 윤색으로 사실의 본질을 조작하고 꾸며서 도리어 역사왜곡의 전형적 흉물(凶物)로 자리 잡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런 발상을 지닌 기획자가 순종동상을 대구에 세웠다는 사실이 너무도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집니다. 그것도 국민이 낸 혈세(血稅)로 말입니다. 2017년 9월8일자 매일신문 발표된 칼럼 ‘이건 다크투어리즘이 아니다’(권은태)는 순종동상 건립의 허울과 위선을 낱낱이 지적하고, 이에 대해 조목조목 명쾌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더 어안이 벙벙해지는 건 이렇게 해놓고 여기에서 항일, 구국정신의 교훈을 얻으라고 말한다는 거다. 혹시라도, 나라를 잃으면 저렇게 동상이 세워진다고 생각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 같은데 말이다. 어떤 사람이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동상을 보면서 민족의 비극과 통한의 역사를 생각해낸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하나도 안 닮은 순종을 순종이라 생각하고 저 별생각 없어 보이는 눈에서 백성을 걱정하며 먼 곳을 응시하는 눈길을 찾아낸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동상 뒤편 안내판 앞에서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란 제목을 보며 팝송 대신 암울했던 시대상과 순종의 슬픔, 백성의 염원까지 떠올리는 상상을 해낸단 말인가?
시민을 이렇게 막 대하면 안 된다. 이건 촌극도 못 된다. 이건 시민을 무시한 행정 권력과 자칭 전문가들이 빚은 피 같은 세금을 낭비한 참극일 뿐이다.
-권은태, ‘이건 다크투어리즘이 아니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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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선조고(先祖考)께서는 경북 김천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체포 투옥되었고,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국하셨습니다.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할아버지께서 천석의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이면서도 반일사상을 갖고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당시 대다수의 지주, 자본가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시켜가기 위해 일제와 야합했거나 투항했습니다. 하지만 조부님은 아홉이나 되는 당신의 아들들에게 제국주의교육을 시키지 않겠다고 하시며 일절 일본식 학교를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조부 일괴공 이명균 의사의 초상과 간찰,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순국선렬 묘역의 이명균 묘소(왼쪽부터 반시계방향) ©이동순

조부님과 저는 이승에서의 인연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27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제가 어린 시절, 아버지께 늘 들었던 이야기 속에서만 계셨습니다. 문학을 연구하고 시를 창작하는 손자에게 할아버지께서는 바람결에 당신의 유촉(遺囑)을 전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절대 개인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과 민족의 역사를 잊지 말라는 것 두 가지였습니다. 연구를 하든지 창작을 하든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이 가르침은 삶의 방향과 가치관의 지향을 엄중하게 일깨워주셨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구의 달성공원은 1950년대 어린 시절, 자주 놀러가서 동네아이들과 다녀오던 단골놀이터였습니다. 울타리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한번은 토성의 높은 곳에서 웬 남자 하나가 말을 타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내려왔습니다. 깜짝 놀라 자리를 피하는데 뒤로는 카메라를 든 촬영 팀이 바쁘게 따라오고 있었지요. 그제야 ‘산적의 딸’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 현장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달성공원 토성의 한 언저리에는 구리기와로 지붕을 얹은 인적이 없는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일제 강점기의 신사(神社)였습니다. 신사 앞마당에는 마사(磨砂)를 깔았고, 걸으면 신발 밑에서 와삭와삭 소리가 났습니다. 그 위에 햇빛이 비치면 유난히 반짝이는 금빛 자갈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 금빛 자갈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가 와서 아이들을 모두 바깥으로 몰아내었습니다. 1960년 4·19가 일어난 뒤까지도 대구의 일본신사는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수록된 조부님의 관련 서술내용을 읽어가노라면 새삼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명균(李明均, 1863~1923) : 경상북도 김천 출신. 1915년 데라우치(寺內正毅)가 합천 해인사를 방문할 때 젊은 동지 편강렬(片康烈)과 함께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자, 편강렬을 40일간 은신시킨 뒤 여비를 주어 만주로 망명시켰다. 3·1운동 때에는 경상남북도에서 활약하였다.

유림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여 일본경찰에 붙잡혔으나, 대구지방검찰청 검사국에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1920년 3월 경상북도 김천에서 김찬규(金燦奎), 신태식(申泰植), 이응수(李應洙) 등과 해외독립운동단체와 긴밀히 호응하여 국권회복에 이바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朝鮮獨立運動後援義勇團)을 조직하고 경상북도 재무총장에 취임하였다. 가산이 부유하여 전후 5회에 걸쳐 10여 만 원을 상해임시정부로 보냈다. 그해 10월 상해임시정부로부터 다액의 군자금송부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달받음과 동시에 후원의용단의 단장과 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 뒤 경상남북도 각지에서 군자금모금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2년 11월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발병하여 예심도중인 이듬해 3월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곧 순국하였다. 구속될 당시 송금하지 못한 군자금 8만 3000원을 보관하고 있었으나 압류되었다. 3000여 석의 자산도 군자금으로 봉압(封押)되었으며, 그 뒤 가산이 완전히 기울어졌다. 1970년 경상북도 김천에 순국기념비가 세워졌으며, 1963년에 대통령표창,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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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나라가 망하기 한 해전에 마지막 왕 순종이 일부러 일본 신사가 있는 달성토성을 찾아와서 절을 하고 간 것입니다. 조선왕조의 근본을 일본에게 송두리째 내어주고 신하(臣下)가 된 낮은 자세로 요배(遙拜)를 한 것이지요.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이 이를 도저히 용납하거나 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8년 뒤, 대구 중구청이 이른바 ‘순종어가길’이란 것을 조성하고, 가련한 왕 순종의 동상을 현장에 건립하여 그 수치스런 요배의 날까지도 다크투어리즘으로 기억하자는 어이없는 변명과 노력을 합니다. 이게 과연 제 정신을 가진 자의 처사일까요? 제가 국치일에 분연히 나서서 순종동상 철거운동의 맨 앞줄에 선 채 시민대표로 성명서를 낭독한 것은 바로 제 독립투사 할아버지의 매서운 유훈(遺訓)과 자주적 민족정신을 실천하려는 뜻에서입니다. 날씨가 청명하고, 몹시 더운 느낌마저 들던 국치 107주년 오전, 대구 달성공원 앞 순종동상이 흉물스럽게 설치된 그 장소에서 그날 분노한 목소리로 읽었던 성명서를 여기에 옮겨 여러분과 함께 다시 음미해보고자 합니다.

순종동상 철거를 위한 대구시민들의 퍼포먼스 ©이동순

저는 독립투사 이명균 선생의 손자 이동순입니다. 조부께서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군자금을 모으다가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고문 받던 중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생전에 어떤 위기 속에서도 제 정신을 잃지 말아라! 정신을 잃으면 나라를 잃고 목숨까지 잃는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달성공원 앞의 이 흉한 동상의 설치는 제 정신을 잃은 못난 인간들이 한 짓입니다. 어떤 사리분별조차 없이 세운 막된 폭거입니다. 그들은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이란 궁색한 명분으로 이 반역사적 행위를 변명하고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앞으로 나라를 잃고 목숨까지 잃을까 크게 염려가 됩니다.

대구시민 여러분!

1909년, 나라가 왜놈들에게 패망하기 불과 1년 전,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은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마음대로 조종하던 부끄러운 인형이자 로봇에 불과했습니다. 일제가 지방의 반일감정을 잠재우려고 순종을 앞세워 이른바 순행(巡幸)이란 이름으로 대구, 부산, 마산 등지를 끌고 다닌 흉측한 행각이었습니다. 순종은 대구에 와서 먼저 달성공원의 일본신사를 참배하고 대구의 일본군 헌병대장, 경찰서장, 일본거류민단 대표, 매국적 친일관리 박중양 등을 만나 악수하며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던 시절의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한 몰골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시 중구청이 국민의 혈세 70억을 마구 쏟아 부어 이른바 ‘순종어가길’이란 것을 조성하고, 가장 수치스런 왕 순종의 11미터짜리 동상까지 세우다니요? 이렇게 어리석고 얼빠진 짓이 어디 있습니까? 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이런 발상이 나왔습니까? 청산되어야 할 수치의 역사를 기억의 역사로 속이고 바꿔치기한 대구중구청은 국민 앞에 즉각 무릎 꿇고 사죄하기 바랍니다. 역대 왕들 중 세종대왕 이외에 동상으로 세워진 왕이 어디 있습니까? 가장 수치스런 왕 순종의 동상을 왜 세웁니까? 그것도 대구 달성공원 앞 가뜩이나 좁은 길을 가로막고 이게 무슨 망발이자 추태입니까? 이런 기세라면 곧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도 서슴지 않고 세울 기세입니다. 여러분! 이 흉물을 즉시 무너뜨립시다! 양심적 대구시민의 단결된 힘으로 이 흉물을 철거합시다! [논객닷컴=이동순] 

 이동순

 시인. 문학평론가. 1950년 경북 김천 출생. 경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동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1973), 동아일보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1989).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등 15권 발간. 분단 이후 최초로 백석 시인의 작품을 정리하여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 1987)을 발간하고 민족문학사에 복원시킴. 평론집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등 각종 저서 53권 발간. 신동엽창작기금,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음.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계명문화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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