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미의 집에서 거리에서]

[오피니언타임스=신세미] 우리집 입구방은 나름 서재다. 서랍과 책꽂이 달린 책상에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그 방은 이사온 다음날처럼 어수선한 상태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된 데는 방 정리를 제대로 못한 우리 가족의 게으름 탓이 크다. 변명같지만 사정을 이야기하자면 그 방이 가구들로 그득해 책이며 문구용품을 제대로 정리하기 어렵다. 책상과 붙박이장 외에 두 벽면에 3.5짝 크기의 혼수장이 들어서 있어 책꽂이용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서재에 큼직한 혼수장이라니…. 안방에 붙박이장이 설치된 집으로 이사하며 안방용의 혼수장을 처분했더라면 방 정리가 오히려 수월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할 때 마음먹고 장만한 혼수장을 치우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몇몇 지인들이 자신 혹은 부모님의 옛날 자개장을 끌어 안고 살다가 어쩔 수 없이 추억의 장을 처리하며(그것도 적지않은 비용을 들여)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도 보았다.

혼수장이 애물단지 신세가 된 것은 이삿날, 사다리차를 이용해 7층 우리집으로 들여놓은 뒤였다. 새집의 거실 유리창이 전망 위주의 대형 고정창이고 양 옆의 개폐식 창이 크지않아 거실을 통해 이삿짐을 옮길 수 없었다. 입구방의 미닫이 유리창을 떼내고 짐을 실내로 들이는 과정에서 문제가 터졌다. 장롱이 넓고 길어 창은 간신히 통과했으나 방 문을 지나 다른 방으로 이동이 불가능하다니.

이삿짐센터 실무 책임자는 혼수장을 입구방에 두거나, 아니면 밖으로 내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은 어두워지기 전까지 이사 마무리를 서두르는 상황. 별 수없이 대형 혼수장을 입구방의 두 벽면에 나눠 설치할 수 밖에.

이사 후 입구방에 들어설 때마다 복잡한 마음이다. 이삿날 시간과 비용이 더 들지언정, 옷장 방문을 해체해서라도 혼수장 일부를 건넛방으로 옮겼어야 했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크다.

사실 이사에 앞서 이삿짐센터 관계자가 이사 비용의 견적을 위해 방문했을 때 살림살이의 종류와 부피만 체크할 뿐 이사갈 집의 여건을 사전 점검하지 않기에 어디로 어떻게 짐을 옮길지 궁금했다. 그래도 전문가들이니 현장을 보면 한눈에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지 사다리차를 이용할 지를 파악하겠거니 믿었다.

그러나 이사 당일 진행은 원활하지 못했다. 3인용 소파는 아담해보여도 변형이 안되는 나무틀이 한뼘 차이로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못해 결국 사다리차를 이용해 올렸다.

대형 안마의자의 경우 입구방 창으로 간신히 들였으나 혼수장처럼 방문을 통과하지 못해 입구방 신세가 될뻔했다. 안마의자는 사다리차로 지상에 도로 내린 뒤 2~3명이 건물 계단을 걸어 올라가 7층 거실에 앉혔다.

육중한 짐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다시 올리는 시행착오가 번복되면서 일하는 사람은 물론 지켜보는 사람도 지쳤고 일은 더뎠다. 그 와중에 혼수장을 건넛방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요구하거나 생각해볼 상황이 아니었다.

적잖은 비용을 들이는 포장이사였으나 전문가답지 못한 판단과 진행 때문에 이사는 늦어지고 결과도 흡족하지 못했다. 척 한번 보기만 해도 상황 판단이 가능한 이사의 달인이라도, 새 집의 창과 문 사이즈를 실측한 뒤 일을 시작하는 것이 전문인의 자세가 아닐까.

게다가 요즘은 가구 가전제품의 규격이 다양화 대형화 추세라 자칫 구식 주택의 구조와 엘리베이터로는 이동이 어려운 상황이 예상된다. 누구네는 최신 초대형 냉장고를 집에 들이느라 뒷 베란다의 창을 뜯고 새로 짜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소비자로선 가구, 가전제품을 새로 장만할 때 집의 구조와 여건부터 살펴야할 것 같다. 특히 대형 대용량일 경우 운반과 설치 문제를 꼼꼼히 따져봐야 번거로운 상황과 뒤늦은 후회를 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집의 경우 번거롭지만 입구방의 혼수장 한짝이라도 분해, 재조립해 건넛방으로 옮긴 뒤 그 자리에 책꽂이와 책을 한데 모으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벼르다가 다음 이사 때까지 서재도 옷장방도 아닌 비효율적인 공간에서 계속 살 지도 모를 일이지만.

신세미

전 문화일보 문화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기자로 35년여 미술 공연 여성 생활 등 문화 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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