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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는 법을 잊어, 하늘을 보지 못했네[이지완의 애, 쎄이!]
이지완 | 승인 2017.10.05 13:39

[논객닷컴=이지완] 42일간 도쿄 여행을 왔다. 도쿄는 1월에 한 번 여행을 다녀갔기에, 이번에는 특별한 일정을 잡지 않았다. 도쿄에 취직한 친구 집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며 도쿄로 워킹홀리데이를 온 동생과 쉬는 날 만나고 있다. 한국에서 놀듯이 하라주쿠, 신주쿠, 이케부쿠로를 쏘다니다 보니 도쿄인지 미니 한국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다.

이리저리 구경하고 여행을 다니는 게 현재의 일상인 나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쉬는 시간이 정말 많아졌다. 친구가 출근하면 미숫가루를 타서 마시고, 같이 사는 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이불을 정리하고 빨래가 많으면 세탁기를 돌린다. 일본에 있다 보니 한국의 냄새가 그리워서 인터넷 뉴스도 몇 번 뒤적거리다가 늦은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약속이 없는 날이면 창문이 없는 베란다(일본 아파트는 지진 때문인지 베란다에 바깥창이 없다)로 나가서 아주 느릿하게 햇살을 쬐고 가을 운동회를 준비하는 초등학생들을 보다가 하늘을 꽤나 오래 바라본다. 한국에선 자주 보지 못했던 하늘을 말이다.

일본 에도가와구의 하늘 ©이지완

지금 내가 머물러있는 도쿄도 에도가와구 니시카사이는 도쿄에서 아주 평범한 주거지 형태의 동네다. (주위에는 도쿄메트로 후나보리역, 니시카사이역이 있다.) 일본에서 소학교라고 불리는 초등학교가 꽤나 많고 큰 마트가 도보 거리에 두 군데 있으며 주위에는 맨션이나 가정주택이 많다. 내가 있는 아파트는 11층 건물인데 이 동네에서 거의 손꼽히는 높은 건물이다. 아무래도 지진이 일상인 국가이기 때문에 낮은 건물이 많은 것 같다. 여기까지는 지진 빼고 한국과 비슷한 느낌이다. 이곳에 와서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 느꼈던 한 가지는 공원이었다.

이곳에는 거주지와 가까운 동네 야구장이 두 곳이나 있다. 한국 학교 운동장의 1.5배 정도 되는 꽤나 큰 야구장이다. 그리고 야구장과 더불어 아주 넓은 공원이 있다. 도쿄는 도시 이곳저곳에 공원들이 퍼져있는데, 아사쿠사 근처 우에노공원, 도쿄 타워 인근 시바공원, 지브리뮤지엄으로 유명한 키치죠지 이노카시라공원 등이다. 도심지임에도 나무가 무성한 공원들이 참 많고, 도쿄 사람들은 공원을 기분좋게 즐기며 살아가는 느낌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의 에도가와 공원도 그렇다.

도심 한복판에 펼쳐진 공원과 야구장 ©이지완

평일 낮에도 공원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느릿하게 산책을 하거나 강아지와 잔디밭에서 놀이를 즐긴다. 아이들이 학교가 끝난 오후 4~5시의 공원은 조금 더 북적인다. 아이들이 비지땀을 흘리며 연못에서 작은 물고기들을 잡고 공원 이곳저곳을 분주히 뛰어다닌다. 주말의 공원은 정말 즐겁다. 일단 시간대별로 자그마한 야구경기가 이어지고 공원 한 편 캠핑장에선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들이 있다. 잔디밭 위에는 캐치볼 하는 중년부부가 보이고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친구들이 조용히 앉아 쉬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찬찬히 보면서 공원을 거닐다보면 정말 당연하게 ‘여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느낌이다. 느끼고 싶지 않아도 이 곳의 모든 것들이 여유를 만들고 있다.

무언가 선진국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그들을 보면 괜히 심통이 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동네에서는 ‘여유’나 ‘쉼’은 낯선 느낌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너희가 우리나라 나무를 다 베어가서 공원이랑 나무가 드물잖아!’같은 꼬투리를 잡아가면서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여유에 대해 책임전가하는 심통을 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논리도 없는, 너무나 어린애같은 심보인 것을 안다. 역사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일본의 잘못이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기형적이고 각박한 현실은 과거 우리나라가 만들고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온 것이니까. 여유 없는 현실같은 것은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삶 그자체이니까.

여유가 느껴지는 이노카시라 공원. ©이지완

지하철을 타면 일본의 직장인들을 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잠들어 있는 사람이나, 땀을 닦으며 지친 얼굴로 서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들의 삶도 우리와 특별히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출근하고, 가족을 책임지고, 직장 내에서 쓴소리 듣고, 야근도 하는. 학생들은 입시준비에 시달리고, 미래를 고민하고 그런 일상들을 똑같이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문득 ‘이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할까?’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경제 상황은 한동안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일하고 싶어도 취업이 안되고, 매일 숨 가쁘게 달리지만 조금도 앞서가지 못하고 쳇바퀴 도는 삶을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여유로운 것인지. 그런 현실 속에서도 주말에 공원을 거닐고 캐치볼을 하는지, 햇살 좋은 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지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쉴 수 있는 지도, 조심스럽게…

일정이 없는 날 아침, 한국보다 낮은 느낌의 하늘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때도 하늘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아마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다시 바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엔 하늘을 볼 시간에 신경써야 할 다른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한국, 서울, 견디는 것. 아마 한국에선 모든 일을 끝내고 1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쉬어볼까? 하늘을 볼까?’라는 생각보단, ‘시간이 남았네, 미리 조금 더 해놔야겠다. 그래야지 나중에 숨통이 트여.’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 ‘나중’이, 언제 올 지도 모른 채.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멈춰 서서 여유를 즐기는 방법을 잊은 지도 모르겠다.

 이지완

 여행, 영화, 글을 좋아하는 쌀벌레 글쟁이.
 글을 공부하고, 일상을 공부합니다.
 뛰지 않아도 되는 삶을 지향합니다.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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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완  qhdqhd10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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