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임스 창간 6주년 특별기획…외로움, 그 끝까지 가다

자화상 ©변시지, 클릭하면 더 확대된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고독감, 이상향을 향한 그리움의 정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이고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것이다. 내 작품의 감상자들이 그런 정서를 공유하며 위안 받았으면 한다.”

- 화가의 글에서

그림으로 들어가기

화가인 루치안 프로이트는 “ 나는 그림이 내게서 나오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에게서 나오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림에 있는 모델들이며 또한 그를 듣는 화가 자신이기도 합니다. 변시지 화가의 그림 속 모델들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러니 다음의 그림들에 들어가서 그림 속 모델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변시지

토속적 민화 같은 이 그림, 단색화 같기는 한데 세련된 요즘 추상화가와는 너무 다르죠?
그래서 말을 그리는 텁수룩한 남자와 남자의 그림을 보는 말로 친근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친구 같군요. 초가를 싸고 도는 바람이 되어 이 둘의 대화를 들어보시죠.

©변시지

으윽- 그림만 봐도 숨이 막힐 것 같습니다. 뒤집힐 것 같은 불안한 구도. 그림으로 들어가면 하늘을 덮은 검은 폭풍이 우-웅 귀를 때리고 차가운 바닷물과 돌 가루가 날리는 속에서, 초가집은 곧 무너질 듯하고 생명들은 안간힘으로 버팁니다.

©변시지

“춥고 무섭다. 우리 이렇게 갇힌 거지?”
“이렇게 평생 가야 한다는 게 더 무섭다마씸.”
“그런데…… 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린 비바리들은 벌써 갇힌 삶의 숙명을 말하고 있네요.

이대로 가는 길 ©변시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됐던 그림 ‘이대로 가는 길’은 세 존재의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남자는 소나무에 막혀 바다와 배가 잘 보이지 않는 구도입니다. 의문이 듭니다. 말은 배를 보는 걸까 아니면 남자를 기다리는 걸까? 남자는 말을 따라 가는 걸까 아니면 자기 길을 가는 걸까? 배는 무슨 길을 가는 걸까?

폭풍으로 들어간 화가

위 그림을 그린 변시지는 ‘폭풍의화가’, ‘제주화의 완성자’, ‘빛과 바람의 순례자’로 불립니다.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독특한 위상을 가지는 화가입니다.

자기 색을 찾아 치열했던 고독인

1926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태어난 화가는 6살에 일본으로 가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중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됩니다. 그 후 엄청난 노력을 하여 나이 20대에 이미 일본 화단에서 각종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주목 받는 화가가 됩니다. 해방 후 한국에 서울대 미대 교수로 초대되어 왔다가 나이 51세에 고향 제주도로 홀연히 떠났습니다. 이후 약 40년을 제주도에 칩거하면서 자기 존재의 색과 화풍을 탐구했습니다.

화가는 90년대에 당시 세계 최대 포탈이었던 야후 (Yahoo)가 선정한 세계 100대 예술가로 선정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에는 미국의 Best Price Art.com, www.inter-art.com, 프랑스의 www.ifrance.com 인터넷 사이트 등을 통해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한국 화가가 해외 전시회를 통해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변시지 화가처럼 인터넷을 통해서 알려진 경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2006년, 생존 동양인 현대화가로는 유일하게 미국 워싱턴 소재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난무’, ‘이대로 가는 길’ 그림 두 점이 소장되어 한국화의 세계성을 먼저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이태리의 미술 평론가 레나토 시벨로( Renato Civello )는 이태리 로마 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화가의 그림을 보고, “바다의 초가집 앞에 있는 말 등은 우연과 주관에 의한 유효성의 열매만이 아닌 상상력의 세련됨을 증명해 준다. 양 어깨 위에는 영화로움과 찬란한 빛이 함께 있는 천 년의 문화가 있다. 그러나 그 문화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깊은 결백성을 배반하지 않을 노력과, 악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게 하려는 의무를 고집스럽게 지려는 것이 함께 있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글은 특히 화가의 그림에 대한 적절한 평이라고 생각됩니다.

스스로를 폭풍 속으로 던지는 외로운 길을 선택한 화가는 말년에 개인전 주제를 ‘나를 따르지 마라’로 정했습니다. 아마 먼저 뚫고 간 폭풍의 현실이 고통스러웠나 봅니다. 시대에 치이고 세상에 치여 보통의 우리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던 사람, 자기 존재의 색을 찾아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 외로움의 끝까지 갔던 사람. 그래서 끝까지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오피니언타임스=황인선, 변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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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은 변시지 그림을 소유한 시지아트재단과 황인선 작가와 협의 후 게재하는 것입니다. 본문 안에 포함된 사진을 따로 퍼가거나 임의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에 저촉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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