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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황홀해서 서럽다[최수안의 동행]
최수안 | 승인 2017.10.10 15:22

<또 다시>

가을바람은 그냥 스쳐가지 않는다.
밤별들을 못 견디게 빛나게 하고
가난한 연인들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헤매는 거리의 비명과 한숨을 몰고 와
어느 썰렁한 자취방에 슬며시 내려앉는다.

그리고 생각나게 한다.
지난여름을, 덧없이 보낸 밤들을
못다 한 말들과 망설였던 이유들을
성은 없고 이름만 남은 사람들을

낡은 앨범 먼지를 헤치고 까마득한 사연들이 튀어 나온다.
가을바람 소리는 속절없는 세월에 감금된 이의
벗이 되었다. 연인이 되었다.
안주가 되었다.

가을바람은 재난이다.

『가을바람 - 최영미』

[논객닷컴=최수안] 늦은 저녁 창문을 열었고 찬바람을 맞아버렸다. 얼굴보다 가슴이 시리다. 시련을 견디기에는 여름이 좋았다. 가을은 황홀해서 서럽다. 여름에 끝내야 했다. 또 그렇게 뒤에서 날아온 화살을 맞은 듯 아프다. 많은 것을 더위 탓으로 돌리고, 더위에 집중해 다른 것들을 잊고, 여름에는 크게 마음을 내주지 않아도 되었기에 담담하게 여름에 끝내야할 것을 이 계절까지 가져온 것이다.

계절처럼 다시 돌아오는 것은 잃어버린 것들이 아니라 마음속에 반성문을 쓰며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하는 시간들이다. 구름이 가려주었던 현실이 말간 하늘에서는 또렷하게 보이고 죄책감이 양떼처럼 몰려온다. 구름이 모두 마음 안으로 들어왔는지 독한 담배 연기처럼 가슴이 먹먹 답답하다. 먹구름이 되어 눈물로 쏟아지거나,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전화처럼 애타게 하는, 가을의 무음을 견딜 수 없어 한숨으로 뱉어낸다.

©픽사베이

가을의 고독과 정취를 이야기하기에는 두 가지의 사실이 앞을 가로 막는다. 별로 한 일도 없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과 또 한 해가 오늘 해가 지듯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라는데 하늘처럼 손에 닿지 않는 이상은 너무도 높고, 빚더미 같은 무거운 짐은 마음을 짓눌러 한걸음 떼기에도 벅차게 한다. 모래주머니를 찬 듯 둔한 발걸음 내딛다 보면 어느새 모래주머니를 내려놓는 날 괴로움 속에서도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건지.

“힘내”라는 말도, “잘 될 거야”라는 말도 상대의 진심인 것을 알아도 한숨으로 뒤바뀌어 나온다. 작더라도 손에 잡힐 수 있는 희망이 간절하다. 손에서 자꾸만 놓칠 것만 같은, 끊어질 듯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간신히 힘주어 잡고 있다. 매일 밤 불안을 덮고 “이게 맞는 걸까? 잘 될까?”라는 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들로 잠을 설친다. 인생을 사용한 만큼 나이는 요금처럼 무겁게 쌓여만 가는데, 젊은이들의 지구는 값싼 말이 되어버린 열정으로 온난화를 겪고 있다. 폭염으로 덮인 여름을 겨우 버텨내고 무르고 주저앉아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쓸데없이 날씨만 좋네.”
“그러게.” 
“힘들었겠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잘 지내?”
“그럭저럭… 그냥 그렇지 뭐.”
“나도ㅋㅋㅋ”

풍요로운 계절에 빈곤한 대화가 오간다. 푸르게 뻗어가야 할 청년들은 취업에 좌절하고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온몸에 멍이 든다. 가을의 짧은 햇빛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눈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아름다운 계절에 동화돼 소소한 행복을 즐기고 싶지만 그 기쁨의 시간마저 참고 견뎌 완연한 내가 되어야 한다는 욕심이 죄책감을 안긴다.

우리는 빠르게 모든 것을 갖추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젊어서 모든 것은 갖추는 것은 사치다. 젊음은 서툴고, 어설프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아직은 부족한 것이 당연하다. 명품 대신 헤진 옷을 입어도 젊다는 그자체로 멋지고 예쁘다. 충분히 빛날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은 안정을 꿈꾸게 한다.

서울의 한 도서관에서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10대에서 40대까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시생들은 뉴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전한 곳을 지향하는 그들이 위험해 보였다. “불빛에 우르르 몰려가는 불나방 같아. 저러다 타 죽을 텐데.” 이 말끝에 이어 덧붙여진 말은 이랬다. “타 죽더라도 한 번 가보고 싶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직업은 공무원으로 갖고, 하고 싶은 일은 취미로 하는 것이 어떨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 혼자가 되기도 한다. 독하게 살겠다며 외로움을 앓고 사람을 앓으면서도 시간과 바꾸어 지낸다. 편안한 삶에 안주한다고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각에서 바라보지만 그들도 각자의 열정과 꿈이 있다. 늘 도전하고 실패를 반복하며 성장통을 겪고 있다. 다만 모든 것이 숨겨져 있을 뿐이다.

싸게 사서 입고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처럼 곧 버려지는 인턴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다. 포기하려 했지만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아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다. 적은 돈을 받고, 일이 고되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해서 행복하다는 젊음들도 있다. 포기하려다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아 꿈을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각각의 삶은 다 가치가 있는데 이른 시기에 그들의 삶을 평가하고 판단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히려 누군가 꾸는 꿈이 이상하다 느껴진다면 무엇이 그들에게 그런 꿈을 강요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야 공평하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해가며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입을 굳게 닫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단 네 가지의 일만이 존재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 못 할 일이라는 것은 없다. 이 글의 끝에 희망고문일지 모르지만 늘 꿈꾸게 하는 물리학자 이휘소의 말을 붙인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었다면 자연이 애초에 우리를 꿈꾸게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선희

 논객닷컴 청년칼럼니스트

 건축회사 웹디자인 파트에서 근무 중인 습작생. 

논객닷컴은 다양한 의견과 자유로운 논쟁이 오고가는 열린 광장입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수안  sooahn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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