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전원일기]

[오피니언타임스=동이] 텃밭은 완연한 가을입니다.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서둘러 후세를 남기려는 몸짓들로 분주합니다. 하나 둘 결실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맺돌호박 전 ©동이

올봄 모종으로 사다 심은 맷돌호박입니다. 텃밭 퇴비더미 옆에 심었더니 주목(朱木)을 올라타고 내려와 말그대로 맷돌만한 호박을 달았습니다. 토종호박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크죠. 모종 하나로 이만한 호박을 얻었으니 이문남는 장사한 셈입니다. 토종호박처럼 죽을 쒀먹어도, 말려서 호박고자리를 해먹어도 됩니다.

맺돌호박 후 ©동이

그런데 어느날 주목가지에 잘 달려있던 맷돌호박이 꼭지가 잘린 채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너무 커서 언젠가 주목의 가지가 버티지 못해 부러질 거라 생각했는데, 거꾸로 호박이 제 꼭지를 자른 것이었습니다. 자랄만큼 자랐으니 주목과의 상생(相生)차원에서 스스로 영양공급을 차단하고 이소(移巢)했음이 분명했습니다.

주목과 상생을 택한 단호박 ©동이

단호박 생태도 비슷합니다. 주목 주변의 평지로 뻗어갈 걸로 예상했으나 주목을 휘감아 꼭대기에 새끼를 쳤습니다. 만져보니 단단하게도 달아놨습니다. 주목으로서도 가지보다는 줄기 끝에 달린 게 그나마 부담이 덜할 겁니다. 단호박과 주목의 ‘상생노력’이 엿보이죠.

박과식물은 대개 열매맺는 공간이 일정합니다. 땅 위에서 맺기도 하지만 넝쿨을 이용해 볕이 잘 들고 공기가 잘 통하는 다소 높은 공간, 그러면서도 눈에 잘 안띄는 곳에 열매를 답니다. 결실이 잘 되게 벌을 유인하면서 살아가려는 생존방식이 아닌가 합니다.

조롱박 ©동이

텃밭 옆 죽은 매실나무 아래엔 조롱박을 심었습니다. 예상대로 매실나무를 지지대삼아 새끼를 주렁주렁 달았습니다. 이파리들은 햇빛을 향해 펼치고 잎그늘 밑에 후세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조롱박은 플라스틱에 밀려 바가지로도 쓸 일이 없어 점차 밀려나는 토종작물이죠. 그러나 관상용으론 아직 한몫 하기에 매년 씨를 받습니다.

호박이나 고구마처럼 수확물을 가져다 주는 넝쿨식물도 있지만 작물성장에 저해하는 것도 텃밭엔 많습니다.

이 녀석은 이제 쪽(藍)을 감기 시작했습니다.

쪽을 감고 있는 새삼덩쿨 ©동이

검색해보니 이름이 새삼덩굴. 한번 붙으면 이리저리 ‘스카이콩콩’ 튀듯이 옮겨 다닙니다. 어찌나 찰싹 붙어있는지 떼어내기 조차 힘들죠. 한번 감기면 그 자리에서 씨를 맺고는 뿌리없이 날아가 번집니다. 가지밭으로도, 고구마밭으로도. 마치 유령식물같습니다. 문제는 이 덩굴의 열매가 귀한 보약으로도 쓰인다고 하니 이 놈을 키워야 할 지 헷갈립니다. 여하간 작물성장엔 '적'이죠.

칡과 덩굴식물, 박주가리 ©동이

바람 결엔가 칡도 날라왔습니다. 칡도 위세가 보통 아니죠. 사진(맨위)에 보듯 칡덩쿨이 동이네 텃밭 옆 침엽수를 아예 덮었습니다. 칡(葛)과 등나무(藤)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감아올리기 때문에 얼키고 설킨다해서 갈등(葛藤)이라는 단어도 탄생했다죠. 한번 휘감으면 광합성에 지장을 받아 큰 나무조차 말라죽어갑니다. 가시덩굴이나 나팔꽃 같은 덩굴식물도 식물성장에 지장을 주는 텃밭잡초들이죠. 교등(交藤)이라 불리는 박주가리(사진 맨 아래)도 뱅글뱅글 비비꼬아가며 나무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텃밭식물도 상생하는 것이 있는 반면 칡이나 새삼덩굴처럼 상대를 고사시킬 기세로 갈등을 유발하는 식물이 있습니다. 한쪽에선 상생하고 다른 한편에선 갈등하는 모양새가 우리사회를 꼭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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