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호의 멍멍멍] 콜센터 상담사 괴롭히는 악성 고객은 이상한 사람들일까?

[오피니언타임스=이광호] 콜센터 상담사를 힘들게 하는 건 욕설보단 매뉴얼에 조금이라도 벗어난 요구나 질문에 연신 ‘죄송합니다’만 반복하며 고개 숙이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성희롱은 물론 찾아가서 죽이겠다는 협박, 이름을 대며 더 이상 일 못하게 만들겠다는 둥 어떤 이야기를 해도 상담사가 할 수 있는 건 ‘죄송합니다’ 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친절을 유지해야 하고, 먼저 전화를 끊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를 어기면 점수가 깎이고 점수가 깎이면 월급도 깎인다. 당하는 쪽에선 속수무책이다. 상담사라는 직업은 어쩔 수 없는 걸까.

픽사베이

진상 고객보다 나쁜 건 “무조건 사과” 강요하는 시스템

고객의 요구가 규정, 약관에 맞지 않더라도 콜센터에서는 당장 들어온 민원을 해결해야만 한다. 통화가 너무 길어지면 상담 대기자가 늘어난다. 전화가 밀리는 건 비상상황이나 마찬가지다. 팀장들은 후처리(상담 후 전산작업)를 빨리 끝내라고 닦달하고, 통화가 길어지는 악성 고객에겐 사은품을 주거나 환불을 해주며 달랜다. 상담사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고객의 전화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리자들에겐 흔히 말하는 ‘진상 고객’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큰 소리 내고 윗사람에게 항의하면 된다는 말도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이쯤되면 대부분의 고객은 수긍하고 상담을 종료하지만 ‘아까는 안 된다고 하더니 왜 이제는 되냐’고 따지며 특정 상담사의 퇴사나 사과를 요구하는 고객도 있다. 그럼 팀장부터 해서 상담을 했던 상담사들이 줄줄이 호출돼 상담을 잘못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해야만 한다. 규정대로 상담을 진행한 상담사는 욕먹다가 사과까지 해야 한다. 전화를 건 고객이 악질이라서가 아니라 콜센터의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무조건 친절해야 한다는 딜레마는 이들을 코너로 내몬다.

갑질하는 사람들도 알고보면 ‘을’

갑질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거나 특이한 사람일 거라는 건 편견이다. 자신이 유리한 위치에 서있다면, 힘을 휘둘러도 되는 상황이라면 휘둘러보는 게 사람이다. 평소 을이었던 사람이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을의 입장이었던 적이 있기에 을은 당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걸 더 잘 안다.

저도 (버스 운전기사) 일하면서 스트레스 쌓이면 쉬는 날 그런데(콜센터)에 화풀이를 했어요. 스트레스 엄청 쌓입니다. 우리도 / 네. 거기다 화풀이를 해요. 내가 손님들한테 받은 / 나도 손님들이... 나한테 무척 공격을 합니다. 그러면 나도 찍소리 못하고 당해요. 어떤 사람은 심지어 욕하는 사람도 있어요.

KBS <추적 60분> 3월 29일에 방영된 <고객만족 실태보고 2부작. 어느 콜센터의 비극 - 누가 그들을 죽였나> 편에서 진행된 고 이OO 씨 아버지의 인터뷰 중 일부다. 그는 버스기사라는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일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콜센터에 화풀이하곤 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후회스러운 거예요. 우리 아들 이렇게 근무하는 줄 몰랐으니까요. / 우리 아들이 이런 직장에 일했다는 걸 아니까 지금은 후회스럽죠. 지금은 (콜센터 상담사들에게) 잘해줍니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고 이OO 씨의 아버지는 지금은 후회한다고, 상담사에게 잘해준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들도 같은 입장이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 혹은 나의 가족, 나의 주변 사람이 언제라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안다면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

이를 활용해 GS칼텍스는 통화연결음에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와 같은 멘트를 실제 상담원 가족의 목소리로 녹음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후 상담원들의 스트레스는 54.2% 감소했고, 친절한 한마디는 8%, 존중받는 느낌은 25% 증가했다고 한다.

GS칼텍스 ‘마음 이음 연결음’ 캠페인. 클릭하면 영상으로 연결됩니다. ©유튜브

인식의 변화는 시작일 뿐

상담사들의 입장을 이해하자는 취지의 시도는 좋지만,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딸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상담사의 입장을 헤아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직도 가족에 머무른다는 점은 아쉽다. 또한 인식의 전환이 매뉴얼대로 반복되는 상담, 오랜 대기시간,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의 결함들로 인한 고객들의 불만을 해결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개인의 감정에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 상담에 관련된 제도적 개선도 함께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객은 화를 내고 상담사는 묵묵히 사과를 반복하는 구조는 변할 수 없다.

실제 기업이나 상품에 대한 불만이 해결되지 않아 악성 민원으로 발전된 경우도 많다. 이것은 고객이 상담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상담원이 잘못된 안내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기업의 개선 의지 없이는 해결 불가능한 일이다. 고객센터는 기업 혹은 상품 자체의 문제로 생긴 불만과 고객의 의견을 듣고 개선하거나 해결하는 곳이어야 한다. 고객센터가 상담원의 인내와 고객의 이해만을 요구하며 눈 앞의 문제를 무마시키는 곳으로 머물지 않길 바란다.

 이광호

 스틱은 5B, 맥주는 OB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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