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의 코리아 프리미엄 프로젝트]

[오피니언타임스=이영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에 의하면 지구에 출현했던 수많은 종(種)들 가운데 진사회성(eusociality)을 획득한 종은 벌과 개미,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해 고작 20종에 불과하다고 한다. 진사회성이란 여러 세대가 함께 살면서 후손을 돌보고 분업을 바탕으로 이타적으로 협력하는 속성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윌슨은 자신의 저서 『지구의 정복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사회성으로 향하는 경로는 ‘집단 내 개인들의 상대적인 성공을 토대로 한 선택’ 대 ‘집단들 사이의 상대적인 성공을 토대로 한 선택’ 사이의 경쟁을 통해 도출되었다. 이 게임의 전략들은 세밀하게 조정되는 이타성, 협력, 경쟁, 지배, 호혜성, 변절, 기만의 복잡한 혼합물이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개체 수준의 자연선택과 집단 수준의 자연선택의 절묘한 조화를 바탕으로 진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다른 모든 종을 제치고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곧 이기심과 이타심의 조화는 개인의 발전과 사회의 발전을 위한 불가결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지만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기심은 개체 수준의 자연선택을, 이타심은 집단 수준의 자연선택을 추동하는 원리이다. 여기서 <이기심=사익, 이타심=공익>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기에 어떤 도덕적인 기준에서도 비난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익은 잘 정의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개념적 혼란도 발생하지 않는다. 예컨대 소비자가 소비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고,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데는 어떤 모호함도 없다.

그런데 공익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선 공익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랜덤하우스(Random House) 사전에 의하면 “공익이란 일반대중의 복지 또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정의 자체가 상당히 모호하기에 누구든 입만 열면 공익을 위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나아가 공익을 추구한다는 것이 사전적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후적으로 이를 검증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 또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목적이 뚜렷한 사익에 비해 공익은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다. ©픽사베이

현실을 돌아보자. 비중은 다르지만 모든 시장경제는 시장과 정부로 구성되어 있다. 대체로 시장은 사익을 추구하는 영역이고 정부는 공익을 추구하는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익의 추구와 공익의 추구가 상충적인가 아니면 상보적인가 하는 점이다. 만일 사익 추구가 자연스럽게 공익의 증진으로 이어진다면 이들 간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라 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 “보이지 않는 손”은 이런 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정부의 규모를 최소로 하면서 시장을 더욱 경쟁적으로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이다.

그렇다면 사익의 추구와 공익의 추구는 상충적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위대한 전환』에서 자유방임시장을 “악마의 맷돌”에 비유한 것은 사익이 공익을 침해한다는 의미에서 이들 간의 관계가 상충적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들 간의 관계는 공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공익의 증진에 기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효율에만 집착한 결과 불평등이 악화된다면 이들 간에 상충적인 관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용인(容忍)할 수 있는 불평등의 정도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기에 문제가 복잡하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한다면 사익과 공익 간의 관계에 대해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사익과 공익에 관한 논의를 단순화하는 방법은 개인적인 선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즉 이기심과 사익, 이타심과 공익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악의 경우는 공익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공익은 실종되고 사익만이 활개 칠 것이다. 만약 한 사회의 권력을 장악한 파워엘리트들이 이런 의도를 감추고 정책을 집행한다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트라우마를 유발해 국민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정신적 피해를 입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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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로 구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로 재탄생하던 과정을 살펴보자. 월스트리트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한 금융 컨설턴트 산드라 나비디(Sandra Navidi)의 저서 『슈퍼 허브』에 의하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개인 재산이 대략 2000억 달러(약 226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막대한 재산은 러시아가 시장경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국유재산을 헐값으로 불하받아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는 그 이상일 것이므로 푸틴은 세계 제일의 부호인 빌 게이츠보다 몇 배 재산이 더 많은 실질적인 세계 제일의 부호인 셈이다. 또한 푸틴을 추종하는 세력이 러시아 경제를 장악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국민들이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것은 공익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사익을 추구한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이와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것은 사회적 차원에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는 것 외에도 사회통합을 방해하고 국민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그야말로 반국가적인 행위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는 사회 해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도 이런 지경 직전까지 갔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고 안도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최악의 상황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시스템이 갖춰진 경우에만 안심할 수 있는데 그러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시장과 같은 사적 영역에서 활동하든 정부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것을 전제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을 장악한 파워엘리트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익을 앞세우면서 사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의혹을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세간에서 거론되고 있는 각종 비리의혹은 모두 공익을 앞세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비롯된 것이다.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정비하지 않는다면 적폐청산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적폐청산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파워엘리트들에게 내재적 동기부여(intrinsic motivation)와 외재적 동기부여(extrinsic motivation)를 유발하는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해 이것을 준수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4대강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정부는 홍수 예방과 물 부족 문제 해결 등 공익을 내세워 이 사업을 추진하려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당시 파워엘리트들이 공익을 앞세워 사익을 추구하려 했다고 의심할만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4대강사업을 동시에 추진한 것이 그것이다. 또한 추진 과정에서 사업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널려있다. 진정 공익을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면 가장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강 하나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진행했어야 한다. 그렇게 경제효과가 확인된 이후에 다른 강들로 사업 확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순리였다.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공익을 앞세워 사익을 추구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공익 증진을 위한 공공사업에 대한 평가는 사후적인 측면보다는 사전적인 측면에 더 많은 비중을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요즘 4대강사업 이전보다 강의 수질이 더 나빠졌고 녹조가 더 많이 낀다는 이유로 4대강사업을 비판하는 논리가 우세하다. 물론 사후 평가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관련된 변수들이 많은 경우 사후적 평가만으로는 공공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사전평가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4대강사업을 동시에 졸속으로 추진한 것은 공익을 앞세우는 가운데 사익을 추구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널리 알려진 일화로서 장자(莊子)가 쓴 『장자』의 4편 <인간세>에 공자와 제자 안회가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안회는 위나라의 젊은 왕이 폭정을 일삼아 백성의 삶이 피폐했으니 자신이 나아가 정치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공자는 이런 저런 질문을 하면서 안회가 현실 정치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는다. 공자의 모든 질문에 안회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답하지만 공자는 “심재(心齋)”를 언급하면서 출사하지 말라고 권한다. 심재는 보통 “마음 굶김”이라고 해석되는데 여기서의 논의와 관련해 간단히 말하자면 공직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마음 자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즉 공익을 위해 진심으로 사익을 버릴 수 있는 마음 자세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파워엘리트 가운데 심재를 좌우명으로 삼고 공직에서 일해 온 사람들이 과연 몇이니 될지 궁금하다. 전직 대통령들과 이들의 주변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저질렀던 각종 비리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오히려 심재와는 정반대의 마음 자세로 일했다는 의혹을 떨치기 어렵다. 이들 파워엘리트들은 모호한 공익을 앞세우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마치 당연한 권리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지난 일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앞으로는 공익을 빙자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사후적인 평가보다는 사전적인 예방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로 국회의원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국회의원 숫자는 인구를 감안할 때 지나치게 많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책무에 비해 혜택과 특권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매번 총선 때 마다 깜냥도 안 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려고 안달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다.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누리는 혜택과 특권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관과는 무관하게 욕심이 앞서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국회의원 선거 및 재직과 관련된 시스템 자체가 공익을 최우선하거나 책무에 적합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탐욕스럽고 계산에 능한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는 공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런 의미에서 현행 시스템은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를 부여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잘못된 시스템이야말로 반복적으로 적폐를 양산하는 바탕이 된다. 국회의원들 중에서 대권에 도전하려는 후보가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를 대폭 줄이고 책무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명예를 존중하고 공익을 최우선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더 많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려고 할 것이다. 과도하게 사익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국회의원직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도록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더 이상 공익을 빙자해 사익을 추구하는 반국가적인 행위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촛불의 힘을 가진 국민이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이영환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이사

  미시경제학 등 다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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