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소중한 사람]

[오피니언타임스=이수진] 나는 오늘부로 다시는 단골 가게에 갈 수 없게 되었다.

그곳은 맛있는 식사를 호젓하게 할 수 있는 곳이었고, 거의 모든 종류의 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며, 정해진 용량의 두 세배 쯤 되는 생크림과 미니깍두기도 마구마구 퍼주던 소중한 곳이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 직원의 친절함은 또 어땠는가? “자주 오시니까...”라고 언제나 말끝을 흐리며 내 컵 위로 웃돈 없는 생크림을 정량의 두 배가 넘도록 항상 퍼올려주지 않았던가? 고용되어 있는 그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혹시나 그가 난처해질까 싶어 이에 대한 돈을 더 지불하려고 해도 “이 정도는 제가 그냥...” 또 한번 말끝을 흐리며 사양하던 다정한 직원이었다. 그는 요청하지 않아도 생선까스 접시 너머로 비어가는 깍두기 그릇을 슬쩍 채워주고,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물 잔도 소리 없이 채워주고는 검은 앞치마 자락을 휘익~ 날리며 쿨하게 카운터로 돌아가곤 했었다. 그런데 나는 서비스정신 투철한 이 훌륭한 서버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픽사베이

나는 오피니언타임스 단체카톡방에 공유된 ‘친한 길냥이가 죽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 있었다. 아기 길고양이의 죽음이 어찌나 슬프던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그걸 손바닥으로 연신 훔쳐냈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속눈썹에 발라놓은 검정 마스카라가 눈물과 함께 번져 새까만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양 검지손가락으로 눈두덩이의 눈물을 말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눈 앞을 보니 하얀 냅킨이 테이블 위에 짠하고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이 훌륭한 직원이 또 슬쩍 놓고 간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길 한 복판에서 죽어간 아기고양이와 그 고양이가 살던 동네로 가득 차있던, 그리고 고양이의 사료 값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노동, 나의 점심식사 비용을 막 비교하기 시작한 머릿속에 ‘눈물 범벅이 된 나의 겉모습은 지금 어떤가?’라는 질문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그 질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용량이 얼마 되지 않는 나의 뇌를 완전히 잠식하고야 말았다.

하필이면 양 볼 빵빵하게 밀어 넣은 밥알을 입 안 가득 삼키지도 못하고 울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나는 냅킨을 쭉 펴서 입안을 가리고 밥을 씹었다. 사실 눈물 콧물이 흐르는데 입을 벌릴 수가 없으니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또 다시 고양이와 그 동네 생각이 나 눈물이 그치질 않아서, 밥을 우물우물 씹으면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겨우 진정돼 ‘울어서 민망하지만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진 않겠지’라며 식사를 마치려던 찰나였다.

그때 단톡방에 올라온 카톡 하나가 나를 주저앉혔다. 나를 꼭 집어 타이밍 좋게 농담을 한 것이다. 그것도 매우 재치있는 말투라서 나는 그만 모든 것을 잊고 빵 터졌다. 입안에 삼키지 못한 밥알이 튀어나갈까봐 입을 가린 냅킨을 부여잡고 정말 이상한 숨소리를 내며 웃었다. “끅끅, 끽끽”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 흐르던 눈물은 볼따구니 어디쯤 매달려 있었다.

한참 울다가 한참 웃었으니 얼마나 이상해보일까. 순간 아기 고양이의 죽음도, 이야기 속 감동도 모두 잊었다. 어떻게든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계산을 하려면 일어나야 할텐데, 어떡하지?… 게다가 콧물까지 나오는 것 같아’

그러다 아뿔싸!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부지불식간에 벌떡 일어난 나는 고지를 앞둔 돌격대원처럼 빠르게 계산대로 돌진했다. 한쪽 볼이 여전히 빵빵한 입을 냅킨으로 가리고 고개를 한껏 숙인 채 카드를 내밀었다. 직원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겠지. ‘밥 먹다 펑펑 눈물 + 갑자기 한참 웃음 = 완전 이상한 여자.’ 결제하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사무실 근처 카페이자 식당인 그 가게와 인연을 맺은 건 손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 식구들은 붐비는 가게와 붐비지 않는 곳이 있으면, 주로 한산한 가게로 들어가곤 했다. 할머니는 평범한 맛의 음식점을 가서도 늘상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대체 왜 손님이 없는 거냐고 작은 목소리로 남의 가게 걱정을 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손님이 없어 텅 비어있는 테이블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짠해 먹어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첫 방문에 밥도 시키고 마실 것도 시켰다. 혼자 방문했음에도 큰 테이블로 안내하고, 생크림을 얹어달랬더니 다른 곳의 2배쯤 주고, 음식들도 입맛에 맞아서 단골이 됐다. 무엇보다 직업 특성상 늦은 점심을 먹는 나와 한차례 전쟁이 끝나고 혼자서 홀을 지키는 직원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은 못 갈 모양이다. 이 창피함을 극복할만한 대안이 내게는 없다. 언제나 사건은 갑자기 벌어지는 법. 아! 이별이다.

다만 내가 밥을 먹으며 책을 보면, 본인도 틈틈이 뭔가를 읽던 그 청년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항상 친절하고 열심히 일하던 직원의 노력이 결실을 맺길, 점심 이후 한가하던 식당에도 손님이 많아지길 빌어본다.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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