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의 전원일기]

[오피니언타임스=동이] 간만에 텃밭에 나가보니 김장무가 제법 올라왔습니다. 무 잎파리 여기저기 청벌레와 달팽이들이 붙어있긴 했지만 이 녀석들 공세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달팽이와 청벌레 ©동이

청벌레와 달팽이는 무 이파리를 먹습니다. 하루종일 잎에 붙어서 갉아먹기 때문에 무가 어릴 때는 성장에 치명적입니다. 물론 씨알이 들기 시작하면 이파리를 갉아먹는 속도가 자라는 속도에 미치질 못해 성장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때그때 견즉필살(見卽必殺), 잡아주는 게 상책이죠.

그런데 ‘김장전선’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점뿌림한 무와 흩뿌림한 무가 성장에 큰 차이를 보이는 겁니다.

흩뿌림 무 ©동이
점뿌림 무 ©동이

사진에서 보듯 점뿌림한 무는 김장무로 써도 될만큼 알이 차 갑니다. 반면 흩뿌림한 무는 지속적으로 솎아줬음에도 점뿌림한 무에 비해 성장이 더딥니다. 같은 시기에 파종하고 퇴비와 물주기를 같이 했는데도 성장은 천양지차(天壤之差)입니다. 씨와 씨뿌림 방식의 차이에서 온 게 아닌가 추측됩니다. 묶은 씨를 흩뿌림한 밭의 무가 현저히 부실하니까요.

흩뿌림 무를 어릴 때 왕창 솎았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막상 싹들이 나오니 생육상태를 봐가며 솎게 돼 이 또한 쉽지 않더군요.

흩뿌림한 무밭에서 촘촘히 들어서 있는 놈들을 또 한차례 솎아야 했습니다.

솎아놓은 무 ©동이

일단 솎았지만 무솎음 처리도 당장 고민으로 떠오릅니다.

동이: 여보~이 무 솎은 것들을 어떻게 하지?
동이네: 웬 무가 이렇게 많아?
동이: 농자재상 사장이 씨흩뿌리고 올라오면 솎아먹으라고 해서 다 뿌려봤지~
동이네: 그래도 그렇지...뭔 씨를 그렇게나 많이? 이걸 어떻하나~

아내는 골칫거리 만난 듯한 표정입니다. 애초 동이생각이 맞았던 겁니다. “작은 포장으로 된 무씨 없냐?”고 농자재 사장에게 물었을 때 사장님이 “다 뿌리고 솎아먹으라”고 답변했지만 사실 그럴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흩뿌림한 무의 씨알이 작아 서리 오기 전에 제대로 알이 들까 걱정됩니다. 그러나 엎어진 물. 가을 햇살은 하루하루 짧아지는데 이 녀석들은 고만고만하게 자라고 있으니... 늦둥이 키우는 심정이 이럴까 싶습니다. 애써 키운 거 버리기도 죄스럽고...

작은 포장의 무씨가 있었다면 이 고생 안하고 간단히 끝났을 일을...후회막급입니다. 재미없는 상황을 맞은 것이죠.

저런 생육상태라면 물건이 안될 게 불보듯 뻔합니다. 내년엔 씨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점뿌림하겠노라 다짐해봅니다. 텃밭이니 망정이지 씨발아 유효기간만 믿고 한해 묶은 씨 넓은 밭에 뿌렸다면 큰 낭패볼 뻔했습니다.

솎은 무 처리는 시래기로 말려볼까 생각해봤습니다. 조상들은 김장철에 무를 잘라 갈무리하고 무청은 짚으로 엮어 처마에 매달았습니다. 바람결에 말린 시래기를 정월 대보름에 삶아 먹곤했습니다. 채소가 나지 않는 계절에 몸에 부족한 영양소를 시래기로 보충했던 조상들의 지혜죠.

그러나 솎은 무청은 아직 연해 시래기로도 부적절해보였습니다. 시골여행을 같이 다니는 지인에게 고민(?)을 얘기했더니 당장 싸갖고 오랍니다. ‘가을 무청김치가 얼마나 좋은건데?’하면서... 그래서 바리바리 싸들고 갔습니다.

그렇게 무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나마 무청김치라도 건진 게 위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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