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따듯한세상]

[오피니언타임스=김연수] 지난 여름 가족끼리 휴가를 다녀왔다. 맛있는 것도 먹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특히 간만에 하는 물놀이에 다들 신이 났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라 중학생인 동생에게 매달려 있었다. 계속해서 매달려도 동생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동생의 목을 만졌는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불룩 튀어 나와 있었다. 목젖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누르며 동생에게 아프냐고 물었고 동생은 분명 아프지 않다고 답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때쯤 동생을 데리고 큰 병원에 찾아갔다. 온갖 검사를 한 뒤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선생님은 나만 진료실로 불렀다. 동생은 멀뚱한 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를 쳐다봤다. 갑상선암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malignancy’라는 단어가 진료 차트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 단어의 뜻을 알고 있기에 더 아찔했다. 악성종양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더 많은 검사를 해야 했다.

갑상선 암은 40~50대에 주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이 걸리는 병이다. 동생은 남자이고 이제 겨우 열 넷이었다. 갓 입힌 교복을 벗기고 병원복을 입힐 생각을 하니 억울하고 분했다. 의사선생님은 아직 성장기인 만큼 암 성장속도도 빠를 수 있다고 당부했다. 또한 사춘기이니 암이라는 사실은 동생에게 밝히지 않기로 결정지었다. 왜 하필 내 동생일까. 탓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었다. 문 밖에서는 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삼켰다. 억지로 울음을 참아서 목구멍이 아팠다.

©픽사베이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자 동생이 내 눈치를 살폈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오늘 고생했으니 맛있는 걸 먹자고 말했다. 그러자 동생이 기운없는 척을 하며 오늘 학원을 빠져도 되냐고 물었다. 자신을 빼놓고 진료실에 들어갔으니 나쁜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슬쩍 떠본 것이다. 내가 그 수를 모를 리 없다. 약한 척하지 말라며 저녁을 먹이고 학원에 보냈다. 그랬더니 싱긋 웃었다. 학원을 보내는 걸 보니 별 일 아니구나 싶어 안심한 모양이었다. 동생은 긴장이 풀렸는지 계속 실없이 웃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보다 큰 동생을 가만히 눈으로 훑어볼 뿐이었다.

동생이 처음 생겼을 때 나는 마냥 좋았다. 자그마치 7년을 외동으로 살았는데 난 해마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이면 선물로 동생을 달라고 빌었을 정도였다. 어린 날의 나는 동생이 생기면 머리도 땋아주고 아끼던 색칠공부도 같이 하고 싶었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동생이 태어났다. 너무 작아서 나는 동생이 손가락만 움직여도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어려서 나와 함께 놀 수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몇 해가 지난 후에도 동생은 맨날 미니카만 손에 쥐고 놀았다. 같이 놀 수는 없어 아쉬웠지만 착하고 순한 아이라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남들은 본인의 동생이 그냥 웬수 같을 지 몰라도 나는 다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챙겨줄 게 많았다. 엄마는 타지에서 일하고 아빠는 출장이 잦아서 동생과 함께 한 시간이 내 유년시절과 사춘기의 전부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졸업 전이라 날마다 알림장 검사를 하고 준비물을 챙기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동생이 아프다보니 일상생활이 힘들었다. 통학을 할 때도 교수님이 강의를 할 때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특히 재학 중인 학교 주변에 중고등학교가 많아 하교 시간과 겹칠 때면 견디기 더 힘들었다. 교복을 입은 수많은 아이들 사이를 걸어야 할 때마다 애써 눌렀던 감정이 울컥거렸다.

©픽사베이

‘가족들 모두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여름휴가를 가서 다행이다. 휴가를 갔으니 아픈 걸 발견할 수 있었어. 병원을 미루지 않고 찾아가서 더 나빠지기 전에 알았으니 모두 다 괜찮아 질 거야.’

주문을 걸 듯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동생이 워낙 몸이 약하고 암 성장 속도가 빠르며 동생이 성장기라 변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갑상선암이라고 해도 가장 완치율이 높으니 수술 이후 저염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경과를 지켜보면 된다.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는 나는 요즘 다이어트를 핑계로 동생과 건강식, 저염식 위주로 식사를 챙겨 먹고 있다. 이번 주에는 동생과 다시 한 번 병원을 찾아갔다. 피를 뽑고 또 다른 검사도 했다. 동생은 엄청 두꺼운 바늘을 팔에 꽂으면서도 내게 웃어보였다. 저도 남자라고 이 정도 바늘은 하나도 안 무섭다며 반대편 팔로 알통을 만들어 힘자랑을 했다.

“누나는 이렇게 굵은 주사 바늘 무서워서 못 맞지?”
동생이 놀리듯 장난스럽게 내게 물었다.
“야, 당연하지. 누나는 주사 맞기도 전에 복도에서 데굴데굴 구르면서 울었지.”

내가 익살맞은 표정으로 겁난다는 듯 받아치자 동생이 더 크게 웃었다. 처음 동생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하염없이 울었고 아빠는 동생 침대에 누워 종일 내려올 생각을 안했다. 평생을 함께 한 나의 가족을 잃으면 어떡하나 무섭고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레 겁을 먹고 울어대기에는 내 동생이 너무 씩씩하다.

©픽사베이

나는 담배를 끊었다. 한동안 다니지 않던 성당도 온가족이 함께 다녔다. 지난 봄 연인과의 이별 후 흡연량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이었다. 말은 쉽지만 금연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내가 담배를 끊으면 동생에게도 별 탈이 없을 거라는 나 혼자만의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주위 친구들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니 나를 보며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수차례의 검사 이후 동생 목에 있는 종양이 느린 속도지만 작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영화 속 주인공에게나 벌어지는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안간힘을 써도 내 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사소한 것만 바라봐도 웃음이 난다. 무의미하다고 느낀 부분들이 때때로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다. 우리는 오늘을 내일보다 더 소중히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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