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건의 드라이펜]

[오피니언타임스=임종건] 사정기관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공기업 사장을 바꿀 필요가 있을 때 정부가 쓰는 방법은 다양하나 기본적으로 두 가지다. 사장 개인 비리와 경영 비리를 조사하는 것이다. 비리 조사에 앞서 정부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경영진 교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애드벌룬 식의 언론 보도가 나가기도 한다.

웬만한 사장들은 그 보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차리고 보따리를 싼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모르는 공기업 사장은 없다. 애드벌룬의 효과가 없을 때 발동되는 것이 비리 조사이다.

두 가지 조사가 동시에 착수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먼저 개인비리 조사부터 시작한다. 첫 단계가 미행이다. 출퇴근길은 물론 웬만한 동선에 본인이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수상쩍은 미행 차가 따라붙는다. 가족들의 동선에도 따라 붙는 경우도 있다. 사장 승용차 운행일지에 대한 조사도 벌인다.

이와 함께 금융거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생필품을 사는 데 법인카드가 쓰였는지부터, 해외여행, 선물, 식사 등 온갖 지출행위에도 위법이 없는지 들여다본다. 이 단계에서도 버틴다면 쇠고랑까지 각오해야 한다.

다음 단계가 경영비리 조사다. 적자를 냈던지 기관평가에서 낮게 평가됐다면 해임 사유로 그만이다. 흑자를 냈더라도 회계의 적정성 등에서 비리 혐의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인사와 경영상의 비리도 캔다. 사장과의 거래에서 얻은 게 있는 사람도 있지만 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적들이 내부는 물론 외부에 널려 있게 마련이다.

이처럼 촘촘한 몰아내기 그물을 통과할 공기업 사장은 없다.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사장 교체가 순조롭게(?) 이뤄지는 배경에는 이처럼 횡포에 다름 아닌 공권력의 개입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공기업 가운데 예외가 공영방송이다. 지금 KBS와 MBC에서 전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과 이사진의 사퇴를 요구하는 노조의 총파업이 진행 중이다. 두 회사의 사장들은 임기보장이 공정방송의 기초라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두 사람의 버티기는 2008년 KBS 정연주 사장의 버티기와 닮은꼴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사퇴압박에 대해 정 사장도 공정언론의 수호를 명분으로 사퇴를 거부했다. 정부는 시민단체를 동원해 감사청구를 신청하게 하고, 감사원이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결과에 따른 검찰의 배임혐의에 대한 수사로 그는 구속 기소됐으며 재판을 받았다.

MBC 김장겸 사장에 대해서는 노조의 불법노동행위에 대한 고발에 따라 고용노동부가 조사를 하고 있다. KBS 고대영 사장에 대해서는 공권력의 직접적인 개입이 없이 노조가 사퇴압박을 가하고 있다. 노조는 이사진의 개편이 사장 해임의 지름길이라고 보고 구정권 임명 이사들의 직장과 자택으로 몰려가 사퇴를 촉구하는 전례 없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KBS 정 사장에 대한 수사에서 공기업 사장으로는 매우 드물게 개인 비리가 적발되지 않았다. 평소 흠 잡힐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론자유 수호라는 대의명분 외에도 자신의 결백에 대한 자부심이 사퇴거부의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 사장에 대한 배임혐의는 KBS와 국세청 간의 세금협상과 관련된 것으로 공공기관 간의 거래에서 발생한 결과를 범죄로 봤다는 점에서 혐의 자체가 무리였고, 해임 사유로 잡은 것은 더욱 그랬다. 무리가 무리를 낳은 그의 혐의는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됐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2012년 토크쇼에 출연해 강제해임 관련 심경을 밝히고 있다.

당시 정 사장의 잔여임기는 지금의 고대영 사장처럼 1년여 쯤 되었다. 그 기간을 참지 못하고 몰아내려고 무리를 했고, 지금 정권도 똑같은 무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MBC 김장겸 사장은 잔여임기가 2년 이상 남아 있다. 그가 사장임기를 채우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지난다는 점에서 여권은 좀 더 초조해 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재판 와중에 임기가 시작된 마당에 지난 정권을 위해 무슨 부역을 했단 말이냐고 항변한다.

두 사람에게서 치명적인 개인 비리가 적발됐다면 두 사람은 자리를 유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그들이 버티는 힘도 정 사장처럼 나의 비리를 캘 테면 캐보라는 결백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듯하다. 결백하면 저항할 수 있다. 정연주 효과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임종건

 한국일보 서울경제 기자 및 부장/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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