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자칼럼]

[오피니언타임스=김선구] 미국 재무장관을 역임한 루빈의 회고록을 12년전 공동으로 번역해 출간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는 시점에 미국 재무장관으로 어떻게 대처했는지 회고록에 언급되어 흥미롭기도 하고, 민간 금융회사에서만 오랜 기간 일하며 잘 나갔던 그가 정부에 가서 장관직을 역임한 특이한 이력으로 인해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나에게 특별한 관심으로 다가왔다.

게을러 자기발전을 소홀히 한다고 비난하던 아내가 어느날 루빈회고록을 번역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평소대로 귀찮은 생각에 기한이 얼마나 주어지냐를 먼저 물었다. 퇴근 후와 주말 밖에는 할 시간이 없으니 시간이 촉박해 못한다는 답을 주기 위한 질문이었으나 아내는 그러면 다른 공동 번역자 한명을 불러오겠으니 절반이라도 번역을 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래서 마지막 핑계로 손으로 쓰느 게 힘들어 어렵다 했더니 아내는 나더러 번역해 우리말로 구술하면 자기가 노트북에 동시에 입력해주겠다고까지 나오는 바람에 번역을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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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대부분 전문작가가 인터뷰를 통해 줄거리를 듣고서 전문적인 글쓰기 솜씨를 거쳐 세상에 나온다. 루빈회고록도 회고록을 집필한 작가가 따로 있고 얼마나 루빈의 진술에 충실하게 쓰여졌는지를 보여주는 작업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대통령은 물론 웬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연설문을 써주는 전문인력을 두고 있다.

중요한 연설문이라면 작성전 방향을 주고 초안을 보며 독회도 여러차례 하며 가다듬어 가지만 그 반대로 연설문 작성에 본인의 생각은 아무 것도 집어넣지않고 그냥 읽기만 하는 경우도 보아왔다.

자신의 생각이 담겨진 대필이야 그런대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대독은 꼴불견이다.

일반적으로 대독하는 사람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자신의 이름으로 하지 못하고,그런 대독이 읽히는 지도 모를 아주 높은 분의 이름으로 읽혀지는 대독을 듣고 있다보면 마치 우린 대독 공화국에 산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대독하러 와서도 행사에는 얼굴만 비치고 더 높은 분 연설문만 읽어주고는 바쁘다는 핑계로 행사가 시작되면 곧 자리를 뜨기 십상이다.

자신의 이름이 걸리거나 자신의 연설문이 발표되는 행사라면 본인이 참석해야 진정한 소통이 이뤄진다.그래야 사회의 두꺼운 벽도 얇아진다.

행사나 연설문에서도 실명제를 적극 검토해보면 어떨는지.

아무리 높은 사람의 이름을 걸더라도 몸도 마음도 오지않는 그 분의 이름을 팔기만 하는 주최측이 되지 말고, 그보다는 격이 떨어지더라도 진정성있는 분의 열성적인 참석을 높게 사는 문화가 생겨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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