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현의 웃는 한국] It’s populism, stupid!

[오피니언타임스=서용현, Jose] 베네수엘라의 경제 파탄을 보았다. 세계 석유매장량 1위 국가지만 소용없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이래 무상주택,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대대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실시한 결과였다. 역시 공짜는 없다. 특히 포퓰리즘(인기영합) 정치인이 던지는 화려한 미끼에는 독(毒)이 있다. 베네수엘라인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진 것이다. 치명적 유혹(fatal attraction, 1987년작 섬뜩한 미국 불륜·공포 영화)이다.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다 경제 파탄에 이른 베네수엘라 ©픽사베이

우린 어떤가? 베네수엘라에서 배우고 있는가? 의문이다. 우린 거시적인 시야를 갖고 중장기적 복지정책을 수립하는가? 복지정책이 공약(公約) 등 포퓰리즘에 좌우되지 않는가? 복지 ‘재원’의 조달에 대한 중장기 전략이 있는가? 먼저 먹는 놈이 임자 아닌가? 우리 복지 예산은 늘고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에 따른 각 부문별 욕구는 더 빨리 늘고 있다. 정치인들은 남의 돈 가지고 ‘선심 쓰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최대의 복지 수요처가 될 수 있는 ‘국민연금’이 아직은 흑자지만 만약 적자로 돌아선다면? 이건 재앙이다.

물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다가 배가 침몰해서는 안 된다. 다 죽는다. 우리의 복지는 배(전체 경제)를 침몰시키지 않는 ‘생산적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일하는 기회를 주고, 의욕을 고무시켜, 보다 많은 생산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참여 복지’다. “국가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개념이다. 신청만 하면 나오는 복지로는 근로의욕과 신바람을 자극하기 어렵다. “복지는 세금이 아닌 고(高)생산성에서 나온다”는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의 말은 이를 지칭한다. 최고의 복지는 ‘일 하는 복지’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사람들은 스칸디나비아의 복지제도를 최고라고 한다. 부럽긴 부럽다. 그러나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첫째, 우리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보다 국방비 부담이 훨씬 많다. 둘째, 이들 나라들은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적다. 그러나 우리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최대의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 교육이 개판’이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퍼주는 복지 대신 좋은 교육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픽사베이

한국의 젊은이들은 컴퓨터에 다 있는 지식을 암기하고, 금방 잊는다. 생각을 안 한다. 그러니 창의력이 없는 돌대가리가 된다. 죽도록 영어 공부를 하고 외국인에게 입도 못 뗀다. 대학진학률 세계 최고이고 박사가 널려 있는데 노벨상도 못 탄다. 경직된 시험위주 암기교육에 매달려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 ‘자유로운 교육,’ ‘행복한 교육’을 받은 핀란드 학생과 상대가 안 된다. 더구나 핀란드 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직업”을 고른다. 즐겁게 일한다. 당연히 생산성이 높다. 한국 학생들은 “남들이 좋아하는 직업”을 고른다. 죽지 못해 일한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좌절한다. 일하는 의욕이나 생산성이 있을 수 없다. 이런 나라가 복지하면 금방 펑크 난다. 최선의 복지정책은 ‘좋은 교육’이다. 이것이 궁극적인 일자리 대책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최악이다. 되겠는가? (자세한 내용은 <서용현의 교육혁명 시리즈> 참조).

왜 우린 복지정책하면 ‘푼돈 나눠주기’식 복지만 연상하는가? 이건 바로 차베스가 실패했던 포퓰리즘 복지, 퍼 주기 복지 아닌가? ‘밑 빠진 독’ 복지 아닌가? 진짜 복지는 ‘지속가능한 복지’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한 경제, 효율적인 경제가 필수다. 강한 경제는 ‘일하는 사기·의욕’과 ‘생산성’에 달려있다. 그런데 우리 복지정책은 이러한 측면에 신경을 쓰는가? 담당 부처가 달라서? ‘복지’라는 파이(pie)를 나누어 먹는 데 골몰하기 때문에?

“공무원을 늘려서 일자리를 만든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 칼럼(<일자리 추경, 대안은 없는가>)에서 상세히 다루었다. 두 가지만 지적하자. 첫째, 공무원을 증원하면 일자리가 늘어날까? 공공부문의 생산성(生産性)이 낮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공무원 증원은 국가 예산을 생산성 있는 민간부문에서 생산성 없는 공공부문으로 돌리는 것이다. 더 많은 학생들을 낭비적인 공무원 시험 준비로 내모는 것이다. 더 많은 재수생을 만드는 것이다. 더 치명적인 것은 민간경제로 갈 예산이 줄어듬에 따라 민간 부문에서 고용의 감소가 초래될 가능성이다. 그러면 일자리 만들기는 도루묵 아닌가? 이런 식의 일자리 만들기가 가능하다면, 모든 정부가 실업자를 생산성 없는 저소득 공무원으로 만들면 되지 않는가? 이것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시도한 것이다. 그들은 비참하게 실패했다.

나아가 공무원 과잉은 불필요한 ‘규제’와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예: 교육부의 규제 때문에 학교 교사가 과도한 행정업무 부담을 지는 것을 보라). 공무원은 할 일이 없으면 규제를 만든다. 그런데 공무원을 늘려서 ‘규제’와 ‘비효율’을 늘리겠다고? 맙소사! 증원 대상이 될 일자리는 공무원이 고른다 한다. 우린 이런 문제에 관해 공무원을 신뢰하는가? 옛날에 농민들이 농업 당국의 말을 듣고 경작할 작물을 선택하면 십중팔구 망했다. 이러한 ‘경제적 선택’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성장을 하려면 복지를 희생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주장에는 반대한다. 차베스가 보여주었듯이 ‘복지만’을 추구하면 실패한다. 반면에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성장을 추구한다고 성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행복하지 않으면 생산도 안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상호의존의 시대’다. 서로 돕고 함께 일하지 않으면 생산도 안 된다. 사람은 꼭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과 보람이 더 중요하다. 관건은 사기와 신바람이다. 국민이 신이 나서 일하면, 성장과 복지의 두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우리 이 방향으로 가자.

 서용현, Jose

 30년 외교관 생활(반기문 전 UN사무총장 speech writer 등 역임) 후, 10년간 전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중.

 저서 <시저의 귀환>, <소통은 마음으로 한다> 등. 

‘서용현, Jose’는 한국이름 서용현과 Sir Jose라는 스페인어 이름의 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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