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안의 동행]

[오피니언타임스=최선희] “보험 들어 놨다”라는 표현은 만약을 대비하여 차선책을 마련해 두었다는 식의 관용적 표현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 같은 정의는 바뀌어야 한다. 보험을 들어놨다는 것은 ‘내가 예치한 보험금으로 보험회사 직원 월급을 주고 뭇사람들에게 지급되며, 나는 현금지급기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작 내가 아파서 보험금을 받거나 대비책으로 가입을 하려면 온갖 수치심과 모욕을 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픽사베이

최근 필자는 실비보험에 가입을 요청했다 거부당했다. 2017넌 8월 3일에 디스크 시술을 받은 이력이 발목을 잡았다. 보험설계사와 상담원은 ‘가입 불가’ 이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한마디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가입 불가 판정은 다소 억울한 일이었다. 지난 8월 디스크 시술을 받았으나 병원에서는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면 치료 가능하다”고 말한 터였다. 이런 내용을 보험사 측에 알렸음에도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무엇보다 내가 분노한 이유는 상담원의 태도 때문이었다.

‘ㅁ’보험사의 상담사 정모씨는 상담하는 내내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내가 말하고 있는데 중간에 말꼬리를 자르고 들어와 자꾸 안 된다고만 했다. 그동안 디스크가 심하지 않았으며 아팠던 기억이라곤 고등학생 당시 목이 아파 엑스레이 찍은 게 전부라고 설명해도 믿지 않았다. 엑스레이 결과 일자목 판정을 받았으나 효과도 없는 물리치료 몇 번 받고 이건 아니다싶어서 그만 두었다고 말했더니 옳다구나! 싶었는지 “10년 전부터 아프셨네요? 그럼 안 돼요. 그것도 치료받은 것이죠”라며 신이 나서 말했다. 디스크 시술이라 3~6개월이면 낫는다고 항변해도 “어디 완치 진단서 떼어올 수 있으면 떼어와 봐라”며 어찌나 유아적인 태도로 대하는지 나중에는 울컥할 정도였다.

최근 디스크 시술을 받은 게 문제가 되어 가입불가 판정을 받았다고 치자.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복수의 보험상담사들은 치료가 끝난 “6개월 후에 재심사를 넣어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 아팠던 이력이 있는 사람들은 보험 혜택에서 영영 제외되야 하는 것인가? 가난하고 아픈 것도 서러운데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에서조차 외면당해야만 할까?

위의 사건을 계기로 필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글을 썼다. 다음 날 아침 금감원에서 전화가 왔고 통화를 했다. 이후 민원이 보건복지부로 이송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의아해 다시 심평원에 글을 썼다. 그제야 심평원 측에서 겨우 연락이 오더니 그 문제는 자기 소관이 아니란다. 계주도 아니고 지켜보는 사람만 지친다. 버뮤다 삼각지대인가?

이는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험은 만약에 대비한 수단이지만, 정작 돈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실비보험 가입 평가기준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 아팠던 사람이라면 가입이 거부되거나, 훨씬 비싼 보험료를 물어야 한다. 물론 민간기업이 이윤 추구를 위해 사람을 가려받는 건 알겠지만, 이런 식이라면 보험의 원래 취지는 어디로 간 것인가.

실비 보험은 그동안 진입장벽을 꾸준히 높여왔다. 일부 위조 병원진단서 등의 허위 병력을 제출해 보험금을 타는 사람들이나, 보험사기범 관련 소식이 전해질때마다 가입자 평가 기준을 높여 대처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 ‘일부’ 때문에 평범하고 빈곤한 환자까지 복지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최수안

 오피니언타임스 청년칼럼니스트

 건축회사 웹디자인 파트에서 근무 중인 습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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